[예스24 소설/시 MD 김소정 추천] 고독함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여자들
『술과 바닐라』
각기 다른 고독과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걷혔다. 정답처럼 정해져 있을 것만 같던 미래가 흐릿해졌고 자연스럽게 이전에 보지 못한 가능성들을 발견했다. (2021.06.16)
결혼과 출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유도 없이 불안해졌다. 결혼을 하면 당장이라도 내 인생이 끝장날 것처럼 굴었다. 가지 않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나 자신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 같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서 결혼의 '결'자만 나와도 애써 피하곤 했다. 결혼?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너무 먼 이야기죠, 하면서. 물론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여러 간접적인 경험이 있지만 말이다.
『술과 바닐라』는 정한아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작가의 삶의 궤적과 조응하며 피어난 이번 단편소설들은 주로 아이를 키우는 직업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혼 여성들의 다채로운 삶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모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잉글리시 하운드 독」에서 미연은 남편과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지만 어딘가 모를 결핍에 시달리고 「술과 바닐라」에서 ‘나’는 드라마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쫓느라 바쁜 나머지 자신의 아이조차 낯설게 느낀다.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에서는 반복되는 결혼과 이혼으로 아이에게 부채감을 느끼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렇듯 정한아 소설 속 여성들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여기서 '포기'라는 말을 써도 되는 걸까. 왜 항상 여성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까. '엄마 되기'와 '나 되기'는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엄마들의 삶에 균열이 일어나고 그 틈새로 불안감과 죄의식이 기어 나온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일을 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이를 위해 나를 내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중에서
그럼에도 정한아는 자기 몫의 행복을 찾아 부단히 나아가는 여성들의 삶에 집중한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선택이 여성의 삶에 '장애물'이 될지언정 그 자체로 '게임 오버'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오히려 '엄마 되기'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는 것에 가깝다. 대담에서 정한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로서의 나는 이렇게 소모되고 착취당하고 있어, 라는 뉘앙스가 굳어진 정서가 될까 봐 두렵기도 하거든요. 엄마가 됨으로써 얻어지는 새로운 감각- 관계 맺음을 통한 시야의 확장, 유연함이라는 무기, 물리적 삶의 극복이라는 측면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각기 다른 고독과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걷혔다. 정답처럼 정해져 있을 것만 같던 미래가 흐릿해졌고 자연스럽게 이전에 보지 못한 가능성들을 발견했다. 기혼 여성이 겪게 될 삶의 면면들, 그중 대부분은 고달프고 별 볼 일 없고 지지부진한 날일 테지만 그 안에 각자의 빛나는 순간과 눈부신 성장이 있을 것이다. 가정과 아이가 있어도 조금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라도 같이 가보자고 곁에서 발맞춰 걸어주는 소설이다.
"나 자신이 되는 기분,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었다."
- 「술과 바닐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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