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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디판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빚은 오락용 음악
쿤디판다(Khundi Panda) <Modm : Original Saga>
신선한 콘셉트와 흐트러짐 없는 견인력으로 탈출구를 고안했다. 근면한 행보만큼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난 당당한 퀘스트 클리어다. (2021.06.16)
쿤디판다는 최근 힙합 신에서 가장 돋보이는 행보를 보이는 래퍼다. 1997년생 젊은 뮤지션임에도 몇 년 사이 집적한 확고한 커리어로 슈퍼 루키 이상의 존재가 됐다. 올해 시상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 역시 정규 앨범 <가로사옥>으로 호평받은 그의 차지였다. 매년 믹스테이프와 컴필레이션 작품을 발매하는, <쇼미더머니 9> 출연 직후에도 서리의 <The Frost On Your Kids>에 참여하는 성실함도 성실함이지만, 지지를 사는 이유는 무엇보다 실력에 있다. 그의 확실한 개성과 탄탄한 기본기에 리스너들은 반응한다.
첫 EP <Modm : Original Saga>는 전작만큼의 깊이를 배제한 한결 경량화된 작품이다. 흥미로운 콘셉트에서부터 '오락용 음악'이라는 아티스트의 첨언을 이해한다. '게임'을 주제로 가상 캐릭터 '소모즈(Somozu)'를 낳아 자신을 투영했고, 비디오 게임 해설을 연상하게 하는 피치 업 보컬과 조밀한 효과음으로 전자오락의 현장감을 소환했다. 프로듀서 야간캠프와 디제이 웨건(DJ Wegun) 등을 주축으로 주조된 프로덕션 역시 큰 부피를 그리기보다 자글거리는 샘플과 전자음을 가깝게 들리도록 배치해 직관성에 뜻을 두고, '원시의 힘'에서 드러나는 돌출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그의 지향점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촘촘하게 쪼개진 래핑은 자신의 역량을 강조하는 데에 강수를 둔다. 그의 레이블 데자부 그룹이 소개한 대로 과연 '랩 도장 깨기'다. 특유의 곤두선 하이 톤을 몰아치는 강성의 플로우와 타격감 있는 발음, 안정적인 라이밍이 작정하고 단어들을 귀에 내리꽂는다. 두 곡을 이어놓은 듯 전위적인 'Somozu combat'의 한 구절 '정공법은 안 통해 / 내가 다 갖고 있거든 클래식함도'가 납득되는 이유다.
듣는 맛 이상의 팀워크를 다지는 정상급 래퍼들의 가세도 막강 캐릭터들이 뭉친 파티다. 'Yucked up clan!'에서 버무린 버벌진트와 최엘비, 퍼프대희의 한국 힙합 크루 양상에 대한 조소적인 시선에 베이고 나면 '원시의 힘'의 화나와 개코에게서 세 래퍼 색깔이 균형적으로 섞이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팀원의 맹활약 속에서도 자기 맞춤형 비트 덕에 쿤디판다의 주객 양보는 없다. 그레이와 넉살이 각각 참여한 '메인풀'과 'Rarebreed'에서도 백미는 쿤디판다의 고감도 훅(Hook)이다.
소위 말하는 '빡센 랩'을 밀어붙이는 음반이지만 그 감상은 부담스럽지 않다. 자칫하면 청취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긴박하고 자극적인 스타일에도 랩 실력 너머의 신선한 콘셉트와 흐트러짐 없는 견인력으로 탈출구를 고안했다. 근면한 행보만큼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난 당당한 퀘스트 클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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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