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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의 하루] 맥시멀리스트의 변명 – 이수연

에세이스트의 하루 6편 –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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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시멀리스트에게 원룸은 너무나도 가혹한 공간이다.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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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시멀리스트에게 원룸은 너무나도 가혹한 공간이다. 서울에 자취를 시작한 동생은 옷이나 식기류 같은 것보다도 자기가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장과 어렵게 구한 인디밴드의 1집 앨범을 소중히 챙겼다. 뒤이어 내가 가져간 것은 친구들의 편지와 아끼는 소설책이었다. 처음 우리가 같이 산 집은 다섯 평짜리 원룸이었고 맥시멀리스트 두 명이 살기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발을 제대로 뻗고 자기도 힘들었다.

추억에 빚진 물건들은 점점 늘어났다. 영화 포스터와 전시회 팸플렛, 여행지에서 사 온 진열하기 곤란한 기념품, 사은품으로 받아온 텀블러와 에코백, 매년 사서 반도 못 채운 다이어리. 그리고 읽고 싶은 신간은 왜 이렇게 많은지. 다 읽지도 않은 책 위에 또 다른 책이 쌓여갔다. 다 읽은 책은 읽어서 놓치기 싫은 문장이 많아서, 다 읽지 못한 책은 읽지도 못하고 놓치는 문장이 생길까 봐 쉽게 버리지 못했다.

‘만약’과 ‘혹시’를 대비한 물건들도 넘쳐났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종이백이나 비닐봉지, 버리기 아까운 예쁜 노끈, 각종 화장품 샘플, 살이 쪄서 입지 못하는 옷까지. ‘만약’을 위한 물건이 ‘만약’의 상황에 잘 쓰일 때의 쾌감을 아는 사람은 물건을 더더욱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애매한 크기의 물건을 전해야 할 때 자로 잰듯한 종이백에 쏙 들어갈 때의 기쁨.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더 많고 다양한 것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놔야 했다. ‘만약’의 상황이 틀어지면 마음이 초조해졌다.

공연 티켓이나 해외에서 받은 영수증(잉크가 거의 날아가서 보이지도 않는), 손으로 쓴 포스트잇 따위는 쓸모를 따지기 무색해진다. 처음부터 버렸으면 몰랐을 물건들을 마주하면 또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버리기 더 어려워졌다.

즐겁게 본 공연은 다음번에 또 보면 되고 지나간 여행은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으면 된다. 내가 기념하는 것들은 대부분 그때 누렸던 순간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행복했던 순간이 없어져 버릴까 봐 붙들고 싶은 것들을 자꾸만 버리지 못하고 모으게 된다. 빛바랜 영수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지워야 할 것은 지워야만 한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 자체가 위로되는 물건도 있다. 초등학생 조카에게 선물 받은 포켓몬스터 카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다. 서울에 취직해서 부산을 떠날 때 조카는 포켓몬이 이모를 지켜줄 거라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선물했다. 나는 덕분에 무탈하게 서울 생활을 견디고 있다. 그런 마음은 도통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동거인이 맥시멀리스트라는 건 행운이자 불행이다. 서로가 가진 물건에 대한 애착을 이해하면서도 자꾸만 발 디딜 틈이 사라지는 이 물리적인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집이 조금만이라도 더 넓으면 이런 고민을 좀 더 내려놓을 수도 있을 텐데. 괜히 나의 가난을 탓해본다. 맥시멀리스트는 오늘도 추억으로 좁은 집에서 달게 잔다.



*이수연

부산에서 상경해 동생과 불편한 동거 중.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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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수연(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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