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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가끔은 좋은 일도 있다] 생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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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어 근육은 중요하다. 내게 의욕이 있건 말건, 기운이 있건 말건, 앉으나 서나, 낮에도 밤에도 코어는 중요하다. 그래서 운동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2021.05.03)


나는 운동이 싫었다. 어릴 때부터 싫었다. 

땀이 나는 것도, 숨이 차는 것도, 집중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특히 공놀이가 제일 싫었다. 농구 드리블 시험과 배구 토스 시험이 최악이었는데, 단 한 번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험은 꼭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명씩 한다. 내가 못하는 걸 이미 아니까 긴장하고, 공은 역시 엉뚱한 데로 날아가고, 허겁지겁 주워 오고, 다시 실패하고, 다시 주워 오고… 선생님의 냉정한 한마디. 오지은 0개. 다음. 

아침 해 뜰 때까지 술집에 구겨져 있다가 집에 돌아가서 구겨져 자고, 어영부영 일어나서 구겨져 일하고, 뮤지션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변 음악인들이 하나 둘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무슨 직업이든 오래 일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아침마다 조깅을 하고 요가를 한다는데 한국의 인디맨인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맨날 누워만 있나.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수영을 배워보았다. 심폐 기능이 좋아진다는 점이 좋았고 고요한 물속에서 혼자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에 달을 보며 헤엄을 쳐보고 싶었다. 몸에 물이 감기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움직여보고 싶었다. (내 나이 마흔 하나, 물가에 갈 땐 꼭 튜브를 들고 갔다) 가벼운 샤워를 하고 젖어있는 타일 위를 종종종 걸어갈 때까지 좋았다. 수영장 특유의 묘한 사운드와 소독약 냄새도 좋았다. 하지만.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코가 물속에 있었다. 음-파-를 하려면 코가 밖에 있어야 한다. 허나 그게 잘 안 되지 않았다. 다음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몸에 힘을 더 빼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공포심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몸을 자꾸 무겁게 했다. 같이 수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진즉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민폐 학생이 되는 느낌에 결국 그만두었다. 

슬프게도 세상에는 재능이라는 것이 있다. 약간의 연습으로 드리블이 되고, 음-파- 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이 노력해야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악기의 음은 맞출 수 있어도 물속에서 힘을 빼는 건 잘 안되는 사람이었다. 얄궂은 점은 그걸 극복하려면 노력을 해야하는데, 노력을 하려면 기운이 필요하고, 수업을 지속하려면 돈도 필요하고, 될 때까지 투자할 시간도 필요하고, 끌고 나갈 의지도 필요하다는 것. 맙소사. 이걸 어찌 다 갖추나.

그래도 꾸준히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다. 나도 건강하고 생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동네 요가 학원에 갔다. 비좁은 방 안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누워 낑낑거렸다. 이름은 요가였지만 내용은 유산소와 근력 운동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선생님은 소리쳤다. 그렇게 해서는 살이 안 빠져요!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관뒀다. 다음은 필라테스 개인 교습. 고가라서 큰 결심이 필요했다. 선생님은 방학 때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체대생 느낌이었는데, 말하자면 몸 엘리트였다. 그런 분은 체력장 최하 점수의 마음을 모른다. 그는 자주 한숨을 쉬었는데 그때마다 나도 같이 쉬고 싶었다. 결국 필라테스도 아웃. 기세 좋게 들어갔던 발레 초급 수업에서는 전공자 아이들의 기세에 눌려 또 아웃. 

하지만 코어 근육은 중요하다. 내게 의욕이 있건 말건, 기운이 있건 말건, 앉으나 서나, 낮에도 밤에도 코어는 중요하다. 그래서 운동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뭘 하기 전에 꼭 책을 산다) 혹시 나 같은 사람도 바뀔 수 있을까? 새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책은 드라마틱했다. 몇 분도 뛰지 못했다는 사람이 중반부터 막 마라톤을 뛴다. 그런 내용이니까 책이 되었겠지. 저 사람은 희귀하게도 잘 풀렸지만, 나에겐 적용이 안 될 거야. 실패가 반복되면 마음이 굳는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마음이었는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친하지도 않은 모 작가님이 올린 무용 수업에 대한 만화를 보고 홀린 듯 쪽지를 보낸 것이다. 정신 차려보니 한 댄스 연습실이었다. 선생님도 작가님도 그날 처음 만났다. 어색한 시간을 잠시 가지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음악을 틀었다. 엘라 피츠 제럴드의 목소리가 스피커 가득 흘러나왔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몸을 움직여본 것은 처음이었다. 따뜻한 카페 모카를 마시는 기분으로 근육을 늘이고, 골반을 열고, 등 근육을 내리고, 천천히 움직였다.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능하면 조금만 더, 잘했어요. 수업은 두 시간이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생님에 대한 미움 없이, 아니 약간의 사랑을 안은 채로 집에 돌아왔다. 그 후로 3일간 굉장한 통증이 있었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다음 수업을 빼먹으려고 꾀를 내지 않았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보상은 중요하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뛸 수 있게 되면 뿌듯하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진다. 실력이 느는 기분은 근사하다. 지난주에는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이런 감각이 처음이라 너무 귀하다. 아, 이제 무용 안 할래,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마 오겠지) 운동 맛이 무슨 맛인지 알았으니 다음 순간을 찾아 계속 다리를 찢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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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지은(작가, 음악가)

작가, 음악가. 책 <익숙한 새벽 세시>, 앨범 <3>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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