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자’ 프로젝트의 기록
『제로 웨이스트 키친』 류지현 저자 인터뷰
익숙한 습관을 깨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하나의 식재료로 시작해 보세요. 그 하나의 실천이 이어져 또 다른 습관을 만들어줍니다. (2021.04.13)
『제로 웨이스트 키친』의 류지현 저자는 오랫동안 냉장고를 최소화하고 식재료를 장기 보관하는 법을 실천해왔다.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먹기도 하고 식재료 부산물을 요리에 활용하면서 버리는 것이 없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식재료를 함부로 버리거나 낭비하지 않고 영양의 손실 없이 오랫동안 먹는 저자의 노하우가 상세히 담겨있다. 사실 식재료 보관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먹거리를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식습관을 관찰해야 한다. 식재료를 소비하는 방식을 파악하면 관리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전작 이후 오랜만에 책을 내셨습니다. 신작 『제로 웨이스트 키친』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로 웨이스트 키친』은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자 (save food from the fridge)’프로젝트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인 식재료는 각각의 특성이 달라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상하거나 그 안에 보관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어요. 냉장고에 넣어두다가 잊어버려서 썩혀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자’ 프로젝트는 그런 식재료를 옛 전통 음식 보관 지식을 이용해 상온에서 보관하며 스스로 관리해서 먹는 식생활을 제안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전작 『사람의 부엌』에서는 프로젝트의 철학과 함께 자연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여러 사람의 부엌을 소개했다면 『제로 웨이스트 키친』은 그 과정에서 배운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을 저희 부엌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분들이 각자의 부엌에서 새로운 식생활을 직접 실천해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작가님은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자'는 슬로건으로 계속 활동해오고 계신데요. 어떤 계기로 냉장고를 최소화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유학 시절,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같이 살 때, 많은 양의 식재료가 그냥 버려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저녁에 해먹을 요량으로 애호박을 사왔는데 사실 냉장고 안에서는 친구의 애호박이 물러가는 식이었죠. 고기덩어리가 아직 신선해 보이는데 유통기한이 하루가 지났기 때문에 포장째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했고요. 한 번 희생된 생명이 다시 버려지는 상황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먹거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요.
냉장고와 유통기한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어떻게 식재료를 보관했을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냉장고처럼 온도가 낮은 환경에서 오히려 상태가 안 좋아지는 식재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먹거리를 잘 보관해서 건강하게 먹으려고 이용하는 냉장고인데 전기를 써가며 식재료의 맛과 영양을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은 앞 뒤가 맞지 않죠. 식재료가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며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기도 하고요. 지구의 한쪽에서는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 어느 한쪽에서는 음식을 먹지도 않고 버린다니 모순적인 상황이죠.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디자이너로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시도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 전까지 '대세는 밀키트'라고 할 정도로 반조리음식에 대한 트렌드가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제로웨이스트를 표방하며 껍데기 없는 상품을 팔거나 리필하는 샵들도 많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이런 트렌드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반조리 음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편리하고 요리가 어려운 분들에게는 많은 고민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밀키트 자체가 아니라 밀키트를 배송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양의 포장재가 더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자르거나 손질한 후의 식재료는 보관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포장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면서 밀키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지 포장재뿐만 아니라 서비스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수록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더 높아지므로 제로 웨이스트 트렌드의 성장은 반가운 일입니다. 이런 트렌드가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해 트렌드로만 남지 않고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작가님은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계시는 데요. 한국에서 생겨나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 리필샵 같은 상점이 이탈리아에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제로 웨이스트 키친'은 어떤지도 궁금해요.
이탈리아에서 제로 웨이스트 리필샵은 꽤 오래 전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그렇다고 매우 대중적이지는 않고 여전히 한국에서처럼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이 이용해요. 한국에서는 하나의 운동으로 시작해서 관심을 빨리 모아가고 있는 듯한데요. 이곳에서는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조용한 시장으로 보입니다.
네덜란드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오랜 유럽 생활을 하며 눈에 띈 점은 환경 운동이 열정적인 이벤트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정책이나 습관으로 스며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나 네덜란드 사람들 개개인이 모두 특별히 환경 보호에 적극적이라고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라와 도시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유럽 사회 전반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라 보고 있습니다. 환경 관련 정책이나 규정이 많고 자세하며 그것들을 시행할 때 사회 전반적으로 수용률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오래 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음식물 쓰레기에 관련해서는 냉장고에 의존하는 식생활을 갖고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의 가정이든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거의 남기지 않습니다. 음식을 해준 요리사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만든 음식을 버리지 않고 먹는다는 마음가짐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기지 않을 만큼 시키게 되죠. 혹시라도 음식을 남기게 되면 식당 직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식당들은 남은 음식을 싸갈 수 있는 용기를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이번 책에는 식재료를 오래 먹고 버리지 않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와있는데요. 이것들을 실천하다 보면 내가 식재료를 어떻게 먹는지에 대한 습관 같은 것도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그럼요. 식재료의 성격에 따라 냉장고나 상온에 보관하면서 관리하다 보면 스스로의 식생활이 보이게 됩니다. 식재료를 스스로 관리하는 것 자체가 식생활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그 습관에 맞춰 장을 보고 식재료를 보관하면서 습관을 또 조정해 나가는 실험이 필요해요. 새로운 것을 배우면 익숙해질 때깍지 연습을 해야 하잖아요. 새로운 식생활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키친』이 그 실험과 연습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재료 저장법 중에 모래를 이용한 보관법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손을 넣어 찾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보관법들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으시나요?
음식 보관법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합니다. 농장이나 어르신들의 부엌을 방문해서 냉장고 없이 살던 시절의 이야기나 현재 부엌의 모습을 보고 들으며 관찰합니다. 시장 상인분들이 어떻게 식재료를 관리하며 판매하는지도 눈여겨보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지식을 배우기도 하죠. 과거 요리책이나 실용서, 신문 등도 훌륭한 자료입니다. 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지식을 나눠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배운 지식들을 스스로 실험해보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지식들도 있죠.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여겨질 수 있는 지식이라 언제 어디서나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습니다.
, 이 책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클릭 한 번으로 장을 볼 수 있고, 맘만 먹으면 농부 직거래 장터나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장기 저장 음식에 의존하던 100~200년 이전의 방식 만을 따를 필요도, 냉장고를 조왕신처럼 모시기 시작한 50년 전처럼 살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각 방식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취할 것은 취하되 버릴 것은 버리며 그 어느 때의 관습이 아닌 지금에 맞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익숙한 습관을 깨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하나의 식재료로 시작해 보세요. 그 하나의 실천이 이어져 또 다른 습관을 만들어줍니다. 새로운 습관이 익숙해지면 그건 또 하나의 삶의 방식, 나아가 삶의 철학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똑같은 습관은 그 문화의 전통이 될 수도 있죠.
냉장고가 20세기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21세기에는 버리지 않는 부엌이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적 성장만을 보고 달려왔던 과거에서 나아가 나와 우리 가족, 나아가 지구 전체가 함께 건강한 삶은 우리의 부엌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류지현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거점으로 다양한 시도와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고, 네덜란드의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Man&Humanity 과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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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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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않는 식탁 부엌은 차가운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뜨거운 불로 익혀 먹는 공간만이 아니다. 다른 생명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몸으로 들어올 생명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그 성격을 이해하고, 어떻게 다루는지를 배우고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몸과 지구 모두에게 건강한 부엌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