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4월 우수상 - 1달러의 용기
내 인생의 롤모델
목숨의 위협을 받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 그 용기를 가진 그녀가 멋있었다. (2021.04.06)
20여 년 전 일이다. 그분은 회사 내 유일한 여자 임원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유럽계 건설장비 기업이었고 주 고객들은 거친 환경에서 일하는 거친 사내들이 많았다. 외국인 사장을 포함해 임원은 총 10명, 그중 가장 젊었으며 유일한 여자가 그분이었다.
“5분 늦은 거 알죠?”
첫 출근 날, 인사팀장이셨던 그분이 내게 말했다. 시크하게 자판을 두드리며 시계를 보지 않아도 너의 근태 정도는 알고 있다는 날카로운 그 첫마디가 마음에 들었다. 난 팀장님과 친해지고 싶어 팀장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하면 조건 없이 도왔다. 노조와의 갈등으로 점심식사를 하지 않으시면 도시락을 사다 책상 위에 올려놓았고 바쁜 일정으로 회의 자료를 준비 못하실 것 같으면 내가 미리 PT자료를 만들어 드렸다. 고객 행사로 쓰일 천막이 필요하다는 팀장님의 다급한 전화에 나는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청계천으로 달려가 난생처음 시장 상인들과 가격을 흥정했고 원하는 천막을 가져왔다.
그렇게 일한 지 1년 정도가 되었을 때 팀장님과 함께 캄보디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는 밤 비행기뿐이었고 팀장님과 난 모두 아침형 인간이라 밤 비행기는 쥐약이었다. 거기다 한국 여행객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비행기 안 이라기보다는 동네 시장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기내 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시끄러운 주변 환경에 지친 우리는 졸린 눈을 치켜뜨며 협소한 이코노미 석에 몸을 구겨 넣고 어서 빨리 씨엠립 공항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5시간의 비행시간을 견디고 새벽 1시쯤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는지 우리를 제외한 여행객들은 여행사 가이드의 통솔 아래 단체로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제일 먼저 가방을 찾아 입국 심사대 앞에 서게 되었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쳐다본 공항 풍경은 낯설었다. 공항 안에는 장총으로 무장한 군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입국 심사를 하는 직원들도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충혈된 눈과 싸늘한 표정으로 여행객들을 쳐다보며 공항에 무거운 침묵을 흐르게 했다.
나는 준비한 여권과 비자를 입국 심사관 군인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여권을 가져간 군인은 우리를 한번 쳐다보더니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팀장님과 나를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팀장님은 최대한 쉬운 영어로 군인에게 질문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한국에서 비자를 받아왔는데 왜 통과시켜주지 않느냐?’ 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입국 심사대 맨 앞에 있었고 심사대는 한 곳뿐이어서 우리가 통과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뒷줄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다리던 여행사 가이드 청년이 다가왔다. 그 청년 말에 의하면 비자 외에 공항 서비스 요금으로 1인당 1달러를 지불해야 통과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권이나 비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1달러를 지불하고 있지 않아 군인들도 당황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난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밤 비행기와 시끄러운 여행객들의 소음 그리고 쏟아지는 잠으로 길바닥이라도 누울 판이었다. 나는 팀장님께 그냥 1달러씩 내고 어서 나가자고 했다.
“노 웨이(No way)”
팀장님은 군인을 향해 말도 안 된다면서 공항 어디에도 서비스 요금을 내야 한다는 안내문도 없고 캄보디아대사관에서도 그런 내용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대한 서비스 요금인지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팀장님은 군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조목조목 질문했고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는 공항 안에서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였다. 물론 1달러는 지불하지 않았다. 공항 밖에는 우리를 픽업 나온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나와 있었다. 도착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상황을 설명하자 캄보디아는 부정부패가 심각해 공항에서 그렇게 부당요금을 청구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라면서 여차하면 총을 발사할 수 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얘기해주셨다.
숙소에 도착해 도대체 그런 용기가 어떻게 나왔는지 물었다. 그리고 다음번엔 1달러를 지불하자고 말씀드렸다. 팀장님께서는 1달러가 문제가 아니라 부당한 요구를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1달러밖에 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면 부당한 것은 어느 순간 정당한 것이 되고 우리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시며 좀 전과 같은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똑같이 행동할거라고 하셨다.
저런 용기를 가졌기에 거친 근무 환경에서도 누구보다 당당히 일하고 계신 거겠지. 불의에 맞서 표현하고 항의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실천하는 건 아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 그 용기를 가진 그녀가 멋있었다.
그때의 팀장님과 비슷한 나이를 가진 지금의 나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과 연륜으로 팀장님의 용기 그 언저리 어딘가를 향해 무던히 할 말은 하며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도 팀장님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단언할 순 없지만 한 번은 꼭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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