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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 안희경 “씨앗을 나누는 일이 시작이다”

『식물이라는 우주』 안희경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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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에게는 식물 키우는 온실이 꼭 필요한데, 상상하시는 것처럼 엄청나게 큰 공간은 아닙니다. 작은 사무실만 한 공간에 선반을 짜서 식물을 키우기도 하고, 냉장고처럼 생긴 체임버에 키우기도 해요. 다만 형광등이 선반마다 달려 있어서 엄청 환하답니다. (2021.03.30)


매일 씨를 심어 때맞춰 물을 주고, 떡잎이 난 식물을 하나하나 분갈이하는 현장 식물학자의 일상이 어우러진 식물 탐구 일지, 『식물이라는 우주』. 식물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그 시간을 오롯이 지켜보는 식물학자들의 앎을 향한 열의까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우리 주변의 식물은 늘 같은 자리에서 푸르름으로 안정감을 선사하니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볕이 너무 따갑거나 날씨가 춥다고 해서 이동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식물은 때때로 달라지는 환경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동물과 전혀 다르게 생을 이어가는, 가만한 식물의 생동감 넘치는 활약이 경이롭다.




식물학자의 출근 일상이 궁금합니다. 

식물학자의 연구실은 다른 연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식물은 모두 온실에서 키우기 때문에 실험실 안에서 식물을 키우지는 않거든요. 실험에 쓰는 식물만 실험실로 가져오기 때문에 실험실 공간 자체는 그다지 초록(?)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식물세포 안에 있는 단백질을 주로 연구합니다. 그래서 첫 실험은 거의 대부분 식물 잎을 액체질소에 넣어 얼린 채로 갈아 녹즙을 내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아침 일찍 해야,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출근하자마자 시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른 분야와 달리 식물을 키울 마당도, 온실도 필요할 것 같아요. 연구서 구조를 소개해주세요.

식물학자에게는 식물 키우는 온실이 꼭 필요한데, 상상하시는 것처럼 엄청나게 큰 공간은 아닙니다. 작은 사무실만 한 공간에 선반을 짜서 식물을 키우기도 하고, 냉장고처럼 생긴 체임버에 키우기도 해요. 다만 형광등이 선반마다 달려 있어서 엄청 환하답니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도 실험할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건 식물학자들이 주로 연구하는 애기장대가 매우 작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학 연구소는 주로 도심 한가운데보다는 외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옥수수, 토마토, 과수 작물을 연구하는 데서 시작되어서 넓은 경작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지요.

요즘 반려식물을 기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식물학자만의 가드닝 비법이 있을까요?

저도 가드닝은 꽝이라 별로 드릴 말씀이 없는데요, 집 마당에 키우는 식물은 판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키운답니다. 제가 실험할 때 키우는 애기장대나 벤사미아나는 모두 실내 온실에서 빛의 세기, 빛을 쬐는 시간, 온도, 습도 등이 모두 맞춤한 환경에서 키웁니다. 그래서 연중 언제든 키울 수 있고, 항상 비슷하게 자라요. 어떤 식물체든 항상 똑같은 조건에서 자라야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람 불고, 비가 오고, 갑자기 서리가 내리는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가드닝은 저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랍니다.

최근 식물학의 연구 방식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타 생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최첨단 기술을 모두 사용해서 연구가 진행됩니다. 세포 안에 있는 단백질 하나하나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을 이용한 실험도 진행하고요, 식물 안에 있는 단백질을 뽑아서 그 모양을 전자현미경으로 찍는 방법도 동원됩니다. 이렇게 식물세포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분석하는 실험들이 활발히 진행 중이랍니다. 하나의 표현형을 하나의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멘델 시대에 비해 지금은 알려진 유전자가 수없이 많아졌어요. 이들이 동시에 세포 내에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 복잡한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문이 시스템생물학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생물학은 본질적으로 유전자 혹은 단백질 등 분자를 단위로 생물을 연구하게 되는데요, 오늘날 식물학도 그와 같은 흐름을 함께 해서 분자식물학라는 분과학문이 생기게 되었지요.

식물학자의 연구 과정을 가설을 세우는 단계부터 한번 짚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과학 분야가 그렇겠지만, 식물학 연구 과정도 ‘관찰’에서 시작합니다. 식물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에 답할 가설을 세우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질문을 갖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질문 속에 연구 방향이 들어 있거든요.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최적의 방식은 동료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료들의 논문을 읽는 일도 매우 중요하답니다. 이때 동료는 식물학자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식물, 동물, 미생물 분야에 상관없이 분자 단위로 생물을 연구하는 모든 연구가 자신의 연구법을 세우는 자료가 됩니다. 여러 분야의 연구 결과와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독창적인 방법을 세울 수 있게 되거든요.

식물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식물만의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식물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정적인 존재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밤낮에 따라 잎의 방향, 꽃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빛을 감지하면 몇 분 이내로 생장이 멈추는 등 식물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에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답니다. 병원균을 감지한 후에는 24시간 이내에 감염된 식물세포만 선택적으로 괴사되기도 해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느 생명들처럼 역동적이고 활발하죠. 

식물이 자라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무수히 많은 개체를 길러내야 하는 식물학자들의 공동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식물학자의 경우, 공동 연구의 시작은 ‘씨앗’을 나누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돌연변이나 실험에 필요한 식물체를 키우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를 나누는 것이죠. 애기장대의 경우, 특히 많은 이들이 연구하는 종자의 경우에는 아예 종자은행에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연구소 내에서도 다양한 협업이 이루어집니다. 한 예로, 제가 있는 연구소에는 원예팀이 있습니다. 원예팀 분들께서 식물을 키워주시죠. 모종을 옮겨 심는 것부터 물 주기, 그리고 각종 병해충 방제까지 도맡아 해주십니다. 오랜 경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서 한눈에 바로 문제를 찾아내는 진정한 전문가 분들이세요. 이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라고 늘 생각해요.




*안희경

식물학자. 연세대학교에서 시스템생물학을 공부했다. 동 대학원에서 식물의 생장에 단백질 접힘 현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부터 영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중이며, 식물이 세포 안으로 들어온 병원균 신호를 인식하고 그에 저항성을 띠는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큰 틀에서 식물세포가 스스로를 유지하면서도 다양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반응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201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 ‘초록으로 본 세상’을 운영하고 있다. 식물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와, 식물이 살아가는 방법 등을 다룬다. 또한 2019년부터는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에 동료 재외 한인 여성 과학자들과 함께 ‘과학 하는 여자들의 글로벌 이야기’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2021년 현재, 남편, 딸과 함께 영국 노리치에 살고 있다.



식물이라는 우주
식물이라는 우주
안희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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