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사만타 슈웨블린 “소설 한 편이 바꿀 수 있는 것”
『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이메일 인터뷰
소설 한 편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명의 독자, 또는 다수 독자의 시선을 바꿀 수는 있지요. 문학은 느리지만 강력하니까요. (2021.03.26)
『피버 드림』은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이자 국내 첫 출간작이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피버 드림』 외에도 소설집 『입속의 새』와 장편 『켄투키』(영어판 『작은 눈들』)가 2019년과 2020년 이례적으로 2년 연속해서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르는 등 주요 작품 3권이 모두 영어로 번역되어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젊은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대표 작가이다. 국내 첫 출간을 맞아, 사만타 슈웨블린 작가와 이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카를라와 아만다의 모성은 어딘가 뒤틀려 있고 병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입속의 새 Pájaros en la boca』(2022년 국내 출간 예정)에 수록된 단편 「저장물Conservas」에서도 엄마 되기를 두려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요. ‘모성’과 ‘공포’를 연결하는 지점은 무엇인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모성’이란 어떤 것인가요?
제게 문학은 항상 저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글을 읽을 때나 쓸 때나 마찬가지예요. 문학은 저를 놀라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거나 걱정시키는 모든 것에 심오한 방식으로 다가가는 공간이고, 실생활에서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방식으로 그러한 것들에 저 자신을 노출시키는 공간입니다. 『피버 드림』을 썼을 때 제 나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는데 당시엔 제가 엄마가 되길 원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잃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과연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이 순조롭더라도 모든 형태의 사랑은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이 책은 제가 이런 질문들을 가로지르도록, 저 자신의 공포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삶에 꼭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실생활로 돌아오도록 해주었습니다. 경이롭지 않나요? 그것이 문학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와 같은 일을 해내는 그토록 성능이 뛰어나고 효과적인 연장은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비드는 때로 아만다가 보는 환각처럼, 때로 이미 죽은 유령처럼 암시됩니다.(“죽는 게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여기에서 저는 오리, 개, 말과 함께 있어요.”—오리, 개, 말은 이미 죽은 동물들) 그게 끝까지 너무 궁금했는데, 당신의 머릿속에서만큼은 어떤 쪽으로든 정해져 있었을까요? 아니면 애초에 다비드를 모호한 존재로 설정하셨나요? 다비드는 누구고 왜 그렇게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모호하다’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설이 제대로 답을 하지 않는다는 느낌, 아니면 저 자신이 다비드가 누구인지 정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줄 테니까요. 제 의도는 정반대였습니다. 저의 의도는 가능한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보다 신비적이고 유령 이야기 같은 선(스토리라인)을 따라갑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믿음, 두려움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모든 환영을 동원하면서 말입니다. 이 선상에서 다비드는 이미 죽음을 겪었으며 정보를 갖고 돌아와, 주인공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그녀를 돕는 존재일 겁니다. 그러나 다른 선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지요. 다비드는 글리포세이트1)라는 재앙 때문에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우리 아르헨티나 북부지역의 많은 어린이 중 한 명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역시 인간이건 동물이건 자기와 똑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모든 존재를 마지막 순간까지 도와주고 보호하려고 하는,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다른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 대규모 농업의 농약 남용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피버 드림』을 어떻게 쓰시게 되었는지, 그리고 집필 과정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세요.
네, 아르헨티나 시민으로서 저는 우리의 들판과 먹을거리에 살포되는 농약의 무시무시한 영향이 걱정되었고, 지금도 계속 걱정됩니다. 농약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농약 사용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규제 해제, 심지어 이 모든 것을 둘러싼 비리가 말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비리가 사람을 죽입니다. 그리고 비리는 농약뿐만 아니라 죽이기 위한 많은 방법을 찾아냅니다. 이 소설이 이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이 배경에서 들리기를, 항상 존재하는 배경음처럼 들리기를 바랐습니다.
인간이 망쳐놓은 환경의 역습이라는 면에서, 이 소설을 전 지구적 기후재난과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읽는 건 더 섬뜩하고 특별한 경험 같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벌벌 떨다가 현실로 돌아오니 더 큰 공포가 펼쳐져 있는 거죠. 평소에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가요? 소설이 인류가 직면한 이 위기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보시나요?
소설 한 편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명의 독자, 또는 다수 독자의 시선을 바꿀 수는 있지요. 이런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많이 읽다 보면, 다른 의식을 생성할 수 있을 겁니다. 문학은 느리지만 강력하니까요.
이 작품의 스페인어판과 영어판 그리고 한국어판을 비교해보면 당신의 작품은 다른 언어로 변환될 때 유실되는 의미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현저히 적습니다. 아마 당신의 문체가 그만큼 간결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시나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문화권에서 생활한 경험이 당신의 문체나 작품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나요?
저는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시(市)가 아닌 부에노스아이레스주(州) 출신입니다. 초창기에 작품들을 발표했을 때부터 이미 저는 약간의 의구심과 더불어 제 보다 중립적인 글쓰기 방식에 대한 지적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제 문체와 관련된 얘기겠죠. 저는 복합적이되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정말 복합적인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지금 읽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생각하게끔 해야 합니다. 이 말은 한 문장 또는 한 단락을 통해 작가가 말을 할 뿐만 아니라 독자도 자기 머릿속에 마치 총탄처럼 날아오는 정보를 총동원하여 읽는다는 뜻입니다. 작가가 글을 쓸 때는 종이 위에 쓸 뿐만 아니라 독자의 머릿속에도 씁니다. 그러면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나죠. 두 화자가 함께 이야기하니까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작품이 종이 위에서가 아니라 독자의 머릿속에서 복합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대학에서 영화와 시각미디어를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영상 관련 일을 하지 않고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한편으로 당신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영화처럼 강렬한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지는데요, 전공이 소설 쓰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저는 항상 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문학이 첫 번째였습니다. 심지어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전에도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곤 적어달라고 했죠. 사실 청소년기 동안 저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읽던 책들은 모두 남자 작가들이 썼고, 그 남자들은 모두 이미 죽은 뒤였죠. 누가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겠어요? 전공을 선택해야 했던 때에 저는 한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실용적인 접근법이라고 생각해 영화를 택했습니다.
이 작품의 넷플릭스 영화 각색 작업에 직접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는 소설과 어떤 부분이 다르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살짝 먼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는 소설을 매우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각색에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언어가 이미지와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이 영화가 소설의 섬세한 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도전은 아만다와 다비드 간의 대화를 유지하는 일이었어요. 그게 책 전체를 이끌어가는 수단이니까요. ‘보이스오버’는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면 관객이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위험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종 결과물을 보았고 그 결과물에 굉장히 만족합니다.
2020년은 팬데믹으로 인해 전세계 사람들에게 혹독한 시기였습니다. 당신은 한해를 무엇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보내셨나요? 그리고 2021년을 맞이하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코로나19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을 때 저는 많은 도서 축제와 박람회를 돌아다녀서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물론 저는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제 갓 서커스에 도착한 우리 같은 작가에게조차 빡빡한 도서전 일정과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홍보는 정말 고됩니다. 그래서 전세계가 멈추었을 때 제게 주어진 건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쓸 시간, 생각할 시간, 저 자신과 다시 연결될 시간.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동할 수 없으니, 아르헨티나에 있는 제 가족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가족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러나 생산성이라는 면에서는 알찬 한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될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책은 책 자체로 독자에게 이르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서문도, 머리말도 없이요. 그래서 혹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여기 독자로서의 제 방식만 남깁니다. 실존적이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않는 글은 아무것도 읽지 마십시오. 뛰어난 책은 너무나 많습니다. 나쁜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면 좋은 책을 읽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여 읽으세요. 리베카 솔닛이 말하길, 한권의 책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서 뛰는 심장과 같습니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독자는 한권의 책에서 일어나는 마법의 절반에 대해 책임이 있으니까요.
1) 1974년 미국의 농업생명공학 기업 몬산토가 개발한 제초제 ‘라운드업’의 주요 성분으로, 동물 및 인체에 직접 접촉될 경우 다양한 독성 작용을 일으킨다. 라운드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농약 중 하나로, 최근에는 발암 가능성을 인정하는 판례들이 나오고 있다.
197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2010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예지 [그랜타]에서 꼽은 ‘35세 이하 최고의 스페인어권 작가 22인’에 선정되는 등 일찍부터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카사데라스아메리카스상을 수상하고 2019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른 단편집 『입속의 새』(2009), 티그레후안상과 셜리잭슨상을 수상하고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중편 『피버 드림』(2014), 2020년 다시 한번 같은 상 후보에 오른 장편 『켄투키』(2018) 등이 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활동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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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사만타 슈웨블린> 저/<조혜진> 역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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