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노블 특집] 박주현이라는 새 그림체 - 『빛 뒤에 선 아이』 박주현
<월간 채널예스> 2021년 3월호
외모가 조금 다를 뿐인데, 알비노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작품에 담고 싶었고, 작지만 선한 영향력이 발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작업하게 됐어요.(2021.03.11)
첫 번째 그림책 『그레그와 병아리』에 이런 장면이 있다. 슬픔으로 온몸에 눈물이 차오른 그레그의 발목을 병아리가 쪼아주자 눈물이 빠져나가면서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 이제 막 첫 번째 그래픽노블을 펴낸 박주현의 재능과 욕심에 대한 메타포로 읽히는 장면이다.
2018년 펴낸 첫 그림책 『그레그와 병아리』가 상하이 국제도서전, 멕시코 과달라하라 국제도서전 전시작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데뷔작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얼떨떨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웃음) 사실 입시 준비할 때 만든 그림책인데,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인연이 닿은 출판사가 국제도서전에 지원한 결과였어요. ‘책 내는 데 의의를 두자’ 정도였는데, 좋은 결과까지 얻으니 자신감도 붙고 작업할 동력도 생겼어요.
그림책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첫 번째 그래픽노블 『빛 뒤에 선 아이』를 펴냈어요. 다 계획이 있었던 건가요?
고2 때 홍대 근처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피부색이 하얀 외국인이 배낭을 메고 지도를 든 채 걸어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분이 알비노였어요. 사전적 지식만 가지고 있다가 실제로 보게 됐는데, 막연하게 일러스트로 작업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 후 여러 가지 자료도 보고 공부도 하면서 충격적인 내용을 확인하게 됐어요. 외모가 조금 다를 뿐인데, 알비노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작품에 담고 싶었고, 작지만 선한 영향력이 발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작업하게 됐어요.
백색증을 앓는 주인공 유진이 겪는 두 계절(여름과 가을)을 담담하게 그렸어요.
스토리를 쓰는 과정에서 알비노 청소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계절이 여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체육 활동에도 제약이 많고, 시력 저하도 생기고, 실제로 화상을 입기도 하고요. 저도 비슷한 고충이 있는데, 햇빛 알러지가 심해 체육 시간에 늘 열외인 아이였거든요. 가을까지 다룬 건, 그런 주인공이 여름의 고통을 넘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백색증을 앓는 주인공이 등장하면 독자들은 관성적으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의 강도에 주목하고 뭔가 극적인 스토리를 떠올릴 법한데, 주인공 유진의 일상은 무료하다 싶을 정도로 담백하게 다루고 있어요.
이야기를 쓸 때, 충격적이거나 극적인 흥미를 돋우기 위한 장치를 잘 쓰지 않는 편이에요. 유혹이 없진 않지만, 저한테는 담담하고 내면적인 스토리를 1인칭으로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주인공 유진이 감정이입을 하는 검은 고양이 맥스와 핑크 돌고래가 등장합니다.
서양에선 검은고양이를 악마화하거나 안 좋은 의미로 본다고 해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보호소에 더 많이 들어오고 입양률이 낮다고 하고요. 털 색깔로 생명의 가치를 정하고 차별하는 게 유진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돌고래 중에도 알비노 핑크 돌고래가 있는데, 피부암을 앓는 상황인데도 동물원에서 쇼를 시킨다고 하더라고요. 외모 특성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유진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책 속에서 유독 ‘꿈에서 본 바다’(140쪽), ‘주인공 유진과 눈을 맞추는 핑크 돌고래’(164쪽)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그려져 있어요.
그 두 컷이 제일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 컷이었어요. 주인공에게 상처를 안겨준 사람들이 건넨 유혹적인 제안, 그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 주인공 유진이 핑크 돌고래와 눈 맞추며 어떤 결심을 하는 터닝 포인트인 셈인데, 꽤나 시간과 공을 들여 그렸어요.
첫 번째 그래픽노블인데, 작품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나요?
에피소드가 좀 더 들어가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메시지 넣는 것에 급급해 일상적인 재미 요소를 조금 부족하게 넣은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래픽노블 장르에 입문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꽤 좋아했어요. 다 그렇듯 디즈니, 픽사, 지브리?. 그러다 그래픽노블 장르를 알게 됐는데 한동안 외국 작품만 있는 줄 알았어요. 우연히 홍대 서점에서 한국 그래픽노블이 있다는 걸 알고 관심을 더 갖게 됐어요.
좋아하는 그래픽노블 작가가 궁금하네요.
유럽, 한국, 일본 등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 제일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대면』과 『초속 5000킬로미터』를 그린 마누엘레 피오르, 『아들의 땅』을 그린 지피예요. 공교롭게 둘 다 이탈리아 작가네요. 두 작가의 작품에는 큰 사건이나 뒤통수를 때리는 상황이 등장하지 않아요. 제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닮아서인지 유독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진짜 그래픽노블을 해봐야지 마음먹었을 때 만난 작가들입니다.
준비 혹은 구상 중인 차기작에 대해 귀띔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토리를 다듬는 중인데 아동학대에 관한 내용이에요. 진행 과정에서 엎을 수도 있지만, 『그레그와 병아리』처럼 ‘감정’을 다룬 그래픽노블 스토리로 진행하고 싶어요.
박주현 지음 | 우리나비
“그림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전체 원고를 수작업으로 진행했어요. 컴퓨터 보정 없이 100%. 그래픽노블 자체가 시각적이라 욕심이 있었거든요. 소재와 주제도 지금까지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에요. 상업적이진 않지만,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어요.”
“프랑스, 이탈리아 영화, 한국 독립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래픽노블 컷을 연습할 때, 영화 스틸 컷을 많이 활용한 건 그런 이유가 컸어요. 크로키를 하기도 하고, 사진처럼 정교하게 옮기기도 하면서 스킬이 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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