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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인문 MD 손민규 추천] 미지가 무지가 되지 않도록, 고고학의 쓸모

『테라 인코그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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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들이 고대사를 공부하며 눈을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다. 논리도 없고 근본도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말이다. (2021.03.10)

언스플래쉬

중학교 3학년 시절, 내 주위에는 빡빡머리에 여드름투성이 남학생뿐이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테란 저그 프로토스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학교가 끝나고는 피시방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런 무리에 끼지 않은 한 명이 기억난다. 그때는 없던 단어였는데, 지금이라면 아마 역덕으로 불렸을 청년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역사 책을, 점심시간에도 역사 책을 읽었다. 역사 수업 시간에도 유일하게 질문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관심사는 고대사였다. 수업 시간 발표할 때였나, 아니면 쉬는 시간 잡담할 때였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고대사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만주가 우리 땅인 걸 분명히 밝힐 거야.”  



고고학자 강인욱 경희대 교수가 쓴 『테라 인코그니타』를 읽으며 그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를 제외하고라도 동급생들이 고대사를 공부하며 눈을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다. 고조선의 영역 표시나,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를 표시할 때.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더 넓었을 테고, 인구밀도는 더 낮을 거고, 지금의 부동산 가격도 조금은 더 싸지 않을까, 그렇다면 왕버들나무를 심어야 할 일도 없을 텐데, 하는 논리도 없고 근본도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말이다. 

이 책은 고대사에 관한 책이다. ‘테라 인코그니타’ 는 라틴어로 미지의 땅이라는 의미다. 기록이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고대사는 우리에게는 물론 전공자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고고학자인 강인욱 교수는 여러 유물과 연구 결과를 검토해서 미지의 영역에 ‘앎’ 을 채워 넣는다. 다만, 그 지식은 몽골 제국과 로마 제국이 전성기 때 얼마나 넓었는지와 같은 영토 문제는 아니다. 영토 문제보다 훨씬 재밌는 이야기를 담았다. 최신 고고학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그간 잘 안 알려졌거나 오해했던 고대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한반도와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등 여러 공간을 횡단하며 재미난 사연을 소개했다. 그 재미난 사연을 관통하는 단어는 ‘기원’ 이다.

4대 문명, 식인종, 북아메리카 원주민, 일본인 등등의 기원에 관해 소개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의심해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서구 제국주의가 정립하고 유포한 4대 문명설이 나온 맥락과 백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문명화되지 않은 식인종이라는 개념을 의심해보자고. 북아메리카에 원래 살던 사람이 누구인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식인 풍습은 미개함과 관련이 없다. 식민지를 만들고 대량학살을 했던 근대를 거쳐 산업사회로 오면서 더욱 잔혹하고 교묘하게 식인 풍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잇다. 살을 베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베어내는 지금이 더욱 잔인한 식인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72쪽)


수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관련 있음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20세기 초중반 세계를 휩쓸던 극단적 전파론이 있디. 그 영향으로 전체 사회구조, 시간과 공간의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부 유물의 양식이나 조각품의 유사성에만 주목한 다양한 가설들이 난무했다. (41쪽)


전체적인 고대문화의 네트워크를 밝힐 수 있는 단초를 어설프게 엮는 것은 연구에 장애가 된다. 궁극적으로 신대륙이라는 고대문화를 연구함에 있어 ‘미지의 땅’ 을  ‘무지의 땅’ 이 되지 않게 하려면 선입견 없는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 (46쪽)


일본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와 오호츠크 문화인의 현재 처우를 생각하며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저질러진 폭력도 되새겨봐야 한다. 공자를 동이족으로 삼으려 한다거나, 홍산문화를 둘러싼 현대인들의 위험한 역사 인식에도 주의를 요한다. 한편 신라와 흉노의 관계, 고려 이전까지 외국인에게 개방적이었던 분위기, 실크로드를 따라 퍼져간 온돌 등 우리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는 장도 여럿 있다.   

우리가 먹는 만두가 적의 머리를 사냥하던 중국의 고대 풍속에서 온 단어라는 살벌하면서 흥미 있는 에피소드도 간간이 등장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줄곧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말한다. 기원에 관한 논쟁은 자칫 폭력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국들이 침략을 감행할 때 든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고토 회복이었다. 

영광스러운-증명되지 않은-과거를 불러내며 영토 분쟁을 일삼고, 타자를 혐오하는 데 역사가 이용되어선 안 된다. 좋은 역사책이란 균형 잡힌 시선으로 과거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테라 인코그니타』는 좋은 역사책이다. 



테라 인코그니타
테라 인코그니타
강인욱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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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테라 인코그니타

<강인욱> 저16,2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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