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정현주의 그래도 서점
[정현주의 그래도, 서점] 클럽하우스와 서점
<월간 채널예스> 2021년 3월호
“독자들이 활발해서 놀랐어요.” 북토크에 오신 저자분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2021.03.04)
“시인님. 어서 오세요. 책에 보니까 손이 필요한 그림책 서점이 있으면 불러달라. 서점원으로 일하며 돕고 싶다고 쓰셨더라고요. 여기 그림책 서점 대표님 와 계세요. 사슴책방 대표님, 김소연 시인님과 인사하세요.”
대학시절에는 부지런한 소개팅 주선자였다. 서점주인이 되고는 잊었던 주선자 기능을 꺼내 쓸 일이 많아졌다. 책과 사람을 소개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서점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서점 리스본, 여기 진짜 유럽이에요?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게 왜 이리 자연스럽죠?”
서점 막 열었을 때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단골1이 왔다. 대화 중에 단골2가 온다.
정서점 : “이쪽은 연남동 사시고, 정세랑 작가를 좋아하고 독서실 멤버예요.”
단골1 : “안녕하세요” (라며 단골 2를 보고 어색하게 웃는다)
정서점 : “동네주민이네요. 이 분은 연희동 살고 파란색 책만 사는 특이한 분이에요.”
단골2 : (단골1을 보고 씩씩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파란 책만 사는 사람입니다)
머지않아 두 사람은 서점행사에서 마주쳤다. 이제는 서점주인 없이도 인사를 나눈다.
단골2 : “안녕하세요. 정세랑 작가 팬분. 맞죠?”
단골1 : “아! 파란색 책만 사는 분!”
연애하는 사람도 생겼다.
남자 : “정서점님, 제가 장기여행을 가는데 고양이 좀 맡아주실래요? 호텔비 절반 드릴게요”
정서점 : “제가 고양이를 좋아는 하는데 알러지가 심해서 같이는 못 살아요. 아! 저기 000씨!”
여자 : (서가 앞에서 책을 보다 돌아본다) “저요?!” (정서점 쪽으로 다가온다)정서점 : “고양이 키우죠?”
여자 : “어떻게 아셨어요?”
정서점 : “만날 옷에 하얗고 긴 고양이털 묻히고 오는데 모를까. 이 분이 장기 여행 가는데 고양이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대요. 호텔비 절반도 준대요.”
여자 : “좋아요. 우리 고양이랑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네요.” (남자를 보고 웃는다)
2주 뒤 손잡고 찾아온 두 사람 : “저희 사귀기로 했어요. 제일 먼저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클럽하우스를 시작했다. 음성 기반 뉴미디어라니, 20년 라디오맨으로 살았던 서점 주인이 지나칠 리 없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히 매혹적이다. 초보 작가들은 오프닝에 어떤 말을 할까를 고민한다. 베테랑 작가는 어떤 말을 쓰면 청취자들이 응답할까부터 그려본다. 손편지와 팩스와 전화의 시절을 거쳐 PC통신을 넘어 인터넷 청취자 게시판을 지나 문자와 톡에 이르기까지 청취자와 최대한 이어져 있으려고 매일 노력했다. 툭하면 청취자들을 스튜디오로 불렀다.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부터 DJ에게 토크 지분을 나눠주게 하는 것까지 모두가 제작진의 몫이다. 서점 주인이 되니 DJ 대신 스스로 말해야 할 일이 자주 생겼다. 독서실도 진행하고 가끔은 북토크도 진행한다. 입을 열기까지 망설임이 많았지만 일단 시작해보니 손으로 쓰던 대본을 말로 할 뿐이구나 싶었다. 적절한 질문을 하고 잘 들으면 된다. 클럽하우스 모더레이터가 되어보니 서점에서 하던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스피커는 따로 있다. 운영자는 모더레이터로서 스피커가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맥락을 잡아간다. 라디오랑 같은데? 흥미가 새긴다. ‘클럽하우스로 북토크 해도 되겠는데?!’ 싶었다. 누군가는 생각할 때 누군가는 행동한다. 1시간도 되지 않아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 – 북토크’ 방을 발견했다. 일론 머스크 덕분에 떠오른 SNS답게 클럽하우스에선 사업하는 사람들이 발빠르게 움직인다. 빠를 필요야 있나, 잘 사용하면 된다. 떨어져서도 이어져 있고 싶은 독자들을 클럽 하우스로 모아보면 어떨까. 줌을 사용해봤지만 북토크용으로 불편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화면을 켜기도 뭐하고 꺼두면 자기몫의 까만 화면이 답답하기도 하단다. 언제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라이브는 댓글창이 있지만 일방적 소통 느낌이 강하다. 클럽하우스라면 나아질까?
“독자들이 활발해서 놀랐어요.” 북토크에 오신 저자 분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서점 리스본에 모이는 독자들이 유난히 아름다워요.”라는 말도 들었다.
라디오 제작 방식을 서점으로 옮겨왔다. 좋은 DJ는 잘 듣는 사람이고 주인은 청취자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매일 새기던 말이다. 좋은 서점 주인은 손님들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야 하고, 그들이 편안히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람이다 – 라고 내 멋대로 정했다.
이제 서점 리스본 단골들은 둥그렇게 모여앉아 수평적으로 대화하는데 익숙하다. 작가, 스피커, 연장자에 대해 존중은 있지만 관계를 상하로 나눠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북토크가 열리면 작가의 말에 리액션이 솔직하고 궁금하면 번쩍 손들고 질문도 한다. 저자에게 농담을 걸기도 한다. ‘들으러 오는 건지, 말하러 오는 건지’ 하면서 행사에 참여한 단골들을 놀리기도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을 때 말하는 그들이 좋다. 살아서 반짝거리니 저자 분들에겐 당연히 예뻐 보이겠다.
평생 혼자 책 읽다가 서점 독서실을 열고 모여앉아 읽는 즐거움을 알았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평가하지 않았다. “독서실을 못하니까 금단현상 와요. 마음 안에 답답한 게 풀어지질 않아요. 빨리 독서실 모임을 하고 싶어요.” 서점을 찾아온 독서실 멤버들에게 매일 듣는 말이다. 줌 독서실을 열어봤다. 독서용 ASMR 틀어놓고 책 읽다가 컴퓨터 앞에 모여서 그날 읽은 내용을 얘기하다보니 새벽 1시였다. 우리는 아쉽게 헤어졌고 웃으며 잠들었다. 단잠이었다고들 했다.
클럽하우스에 서점 키워드로 룸을 열었더니 전국 서점 주인들이 들어왔다. 작가님들도 속속. 우리는 나란히 수다를 떨었고 좋아하는 작가님이 입장하실 때는 심장이 쿵했다. 아날로그 서점주인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만나고 통했고 같이 웃고 좋은 걸 나눴다. 거기 사람이 있으면 아날로그 아닌가? 되묻고 싶다. 통로가 무엇이든 제대로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 책 읽는 사람들에게 뉴미디어는 무엇일 수 있는가, 즐거운 상상을 시작한다.
추천기사
관련태그: 예스24, 채널예스, 정현주의 그래도 서점, 월간 채널예스 3월호, 클럽하우스, 서점, 북토크
서울 연남동에서 서점 리스본과 포르투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