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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의 언어는 권력이다] 세대 : 세대를 호명하는 말은 과연 세대를 가리키는가

‘이라영의 언어는 권력이다’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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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학번이세요?”라는 질문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잘 반영한다. 학번을 묻는 습관은 한국 사회의 연령주의가 학력주의와 결합하여 나타난 결과다. (2021.02.16)

언스플래쉬잃어버린 세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는 말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년 출간)의 서문에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차를 빨리 고치지 못하는 젊은 정비 기사에게 사장이 “너희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génération perdue)야”라고 소리치는 걸 보고, 이 말을 헤밍웨이에게 이렇게 전한다. “당신들이 바로 그 잃어버린 세대다. 전쟁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모두 잃어버린 세대다.”

스타인이 처음 정비소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정황을 고려하면 ‘잃어버린 세대’라는 번역보다 ‘실패한 세대’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어는 항상 출발할 때와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으며, 듣는 사람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수용되기에 ‘잃어버린 세대’라는 의미도 가능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많은 미국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파리에서 활동했다. 1874년 생인 거트루드 스타인도 그중 한 명으로, 당시 파리에서 젊은 미국인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상당히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전후 세대와 예술가들’이라는 배경 속에서, 스타인은 프랑스 정비소에서 들은 말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세대’는 1차 세계대전 후 (이전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경제활동을 하는 주로 1880년~1900년에 태어난 이들, 육체적인 부상과 정서적인 상실감을 겪고 방황하는 미국의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이에 속한다.

즉, 1920년대에 ‘상실’을 드러내는 이 ‘세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실은 중산층 백인 남성의 기준에 가깝다. 이 시기는 여성들에게는 ‘신여성’이 등장하는 상징적인 때였으며, 흑인들에게는 남부에서 북부로의 ‘1차 대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전쟁으로 많은 젊은 남성이 유럽으로 떠나 자동차, 철도산업, 각종 제조업의 인력이 부족할 때, 흑인들의 저렴한 노동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 북부 대도시에 흑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20년대 뉴욕의 할렘이 흑인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고, 그곳에 ‘할렘 르네상스’가 번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oo 세대’를 가리키는 말은 사실상 계층, 인종, 지역, 젠더를 교차시켜보면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마치 보편적인 세대를 아우르는 말처럼 쓰이곤 한다. 주로 중산층 남성의 관점인데, 그 중산층 남성이 ‘보편적인 세대’의 개념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86학번, X세대… 계층의 언어는 어떻게 세대의 언어로 둔갑하는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특성화고 졸업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던 상황을 소개한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저자가 바로 상고를 나왔지만 그는 특성화고 졸업생을 ‘본 적이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으레 대학을 나왔으리라 생각한 탓이다. 저자인 은유 작가를 만났을 때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실제로 무례하거나 불쾌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충분히 가능하다. 단지 그 상대방은 정말 특성화고 졸업생을 본 적이 없을 뿐이다. 대졸자가 아닌 사람이 드러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90년대 생이 오고, 70년대 생이 울어도, 대체로 대졸자만 보인다.

“몇 학번이세요?”라는 질문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잘 반영한다. 학번을 묻는 습관은 한국 사회의 연령주의가 학력주의와 결합하여 나타난 결과다. 학력 자본을 가진 사람이 나이를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에둘러 묻는 완곡어법이다. 표면적으로는 완곡어법을 통해 나이를 묻지만, 이러한 질문을 주고받아도 되는 계층의 언어를 습득한 자신의 위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질문이다. 그러면서 조심해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학번을 물어도 되는 ‘좁은 세계’에 산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류의 언어는 빠르게 체화된다. ‘요즘 대학 안 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고졸은 없는데’, ‘나는 특성화고 나온 사람을 한 번도 못 봤어’라는 말들은 비대졸자의 보이지 않음을 정상화한다. 대학 진학률은 95년에 처음으로 50%를 넘겼다. 다시 말해 현재 40대 중반 이상의 사람들 중에는 비대졸자가 더 많다.

86세대라는 호명처럼, 스스럼없이 학번과 세대를 동일시하는 오류는 정치와 언론의 장에서 여론주도층을 누구로 여기는지에 대한 태도에서 들통난다. 보수 언론과 정치가 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이나 상위 계층의 목소리를 전한다면, 진보 언론은 상대적으로 제도와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럼에도 ‘나름의 엘리트주의’를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2017년 5월 <한겨레 21> 1161호에 실린 기사는 상당히 좋은 사례다. 당시 탄핵과 촛불 시위로 새로 들어설 정권을 진단하며 두 개의 대담을 마련했다. 하나는 (남성들로만 구성된) 전문가 대담이며 다른 하나는 ”386세대의 맏형인 ‘80학번’ 대담”이다. 편집장은 이 대담을 소개하며 “1990년대 중반 학번으로 한때 ‘X세대’라 불렸던 저”라며 자신의 위치도 소개한다. 이처럼 세대와 학번은 제도권의 언어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한겨레>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성추행으로 제명된 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에 대해 “86세대의 마지막이면서 새로운 세대 시작임을 자부했던 그”였기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었다고 했다. 맏형에서 마지막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아우르는 그 세대는 어디까지나 서울에서 대학 다닌 남성에 불과하다. 과잉대표는 다른 시각에서 보면 ‘거대한 박탈’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초반에는 유니폼을 입고 커피를 타는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X세대가 거론되자 심보람(박혜수)은 질문한다. “대학 안 나와도 X세대 할 수 있어?” 그들은 모두 상고를 나왔다. ‘oo 세대’라는 명명이 실은 계층의 언어임을 지적하는 한 문장이다. X세대는 단지 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가리키지 않는다.


언스플래쉬

학번 없는 자들의 언어: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은 누가 대표하는가? 

80년대에 대학진학률은 20% 후반에서 38% 사이를 오갔다.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 중 ‘386’에 해당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고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한 후 노동현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은 ‘세대’에서 배제된다. 1960년에 태어나 1981년에 한국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용접사가 된 김진숙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해고 노동자이다. 그는 86세대 ‘맏형’들과 같은 세대이지만 결코 같은 세대로 불리지 않는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2월 7일 청와대 앞에서의 김진숙 발언이다. 이 유령들은 다양한 정체성으로 오늘도 곳곳에서 발화를 실천한다.

“고졸 일자리 보장! 정부가 나서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의 구호다. 이들은 2020년 11월 15일 서울 전태일다리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행진했다.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는 권력을 얻었을지 몰라도, 전태일의 친구들은 여전히 유령으로 살아간다. 21대 국회는 100% 대졸자이다. 그것도 2년제 졸업자가 1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4년제 대졸 이상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은 누가 대표하는가. 정치에서 대표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는 의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들린다. 생존을 갈구하는 수많은 언어들은 오늘도 여전히 거리의 피켓 위에 새겨져 있다. 시위나 거리 행진, 장소 점거라는 형식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드러냄으로써 공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를 알리는 데 기여한다. 정치의 소비자가 아닌 말하는 생산자가 되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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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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