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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의 언어는 권력이다] 억울함: 억울함은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가

‘이라영의 언어는 권력이다’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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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기반으로 폭력적 진화를 하는 인물이 있는 반면 억울함을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한 언론사가 2019년을 마감하며 올해의 인물로 ‘세상을 바꾼 엄마들’을 선정했었다. (2020.02.02)

언스플래쉬

억울함을 밝히려 하지 말라고요?

불교 경전 <보왕삼매론>에는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라는 구절이 있다. <보왕삼매론> 중에서 내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엄마는 가장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나는 엄마가 이 구절을 인용할 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족들이 이에 동의할 때면 속으로 ‘웃기고 있네’라고 생각한다. 난 그러기 싫은데? 억울함을 왜 당하고 살아? 난 밝히고 살 거야! 그렇게 보살 흉내 내고 사니까 못된 인간들이 설치는 거야! 라고 외친다. ‘쿨’한 척은 질색이다. 그럼에도 사사로운 인간관계에서 억울한 마음은 번역되기 어려워 차라리 침묵을 택한다. 내가 차라리 말을 말지.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인 “할많하않 할말하않”이라는 인터넷 조어는 바로 억울함에 대처하는 일상적 수행자의 자세이다.

몇 년 전 한 스님의 법문을 접한 이후, <보왕삼매론>에서 언급한 이 ‘억울함’에 대해 비로소 이해했다. 억울한 일을 그냥 당하라고요? 왜 밝히지 말라고 합니까? 난 불교의 이런 태평한 태도가 싫어요. 나처럼 생각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친절히 이를 해석해준 스님의 법문을 보며 알았다. 인간관계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억울함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 이를 밝히려 할수록 자기 억울함에만 집중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그렇다고 당하고 살라는 뜻이 아니다, 밝히려 하지 않아도 다 밝혀지기 때문이다, 라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는 흔히 듣는 말이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단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내 억울함을 밝히지 않아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억울함을 당할 일이 생긴다면 이때는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억울한 일을 겪도록 돕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자기연민에 휩싸인 자와 투쟁하는 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우리 현실에서 보면 대체로 억울함을 대하는 방식은 이와는 반대로 움직인다. 사사로운 억울함을 밝히겠다고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데 여념이 없는 하면, 정작 다른 사람도 억울해질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방관한다. 예를 들어 백인이어서 잠재적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겨지거나, 남성이라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여겨진다며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닌데, 왜 나를 의심하느냐며 몹시 분노하고 억울해한다. 이런 억울함은 굳이 밝히려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감정은 자신의 위치가 만들어낸 권력을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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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

억울함을 기반으로 폭력적 진화를 하는 인물이 있는 반면 억울함을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한 언론사가 2019년을 마감하며 올해의 인물로 ‘세상을 바꾼 엄마들’을 선정했었다. 자식을 억울하게 떠나보낸 후에 ‘싸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인물들. 나는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용균 재단 대표 김미숙 씨를 보며, 그리고 ‘민식이 법’을 비롯해 자식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싸우는 부모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싸워도 돌아올 수 없는 자식의 이름을 들고 싸운다.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은 법안이 만들어진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죽은 사람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못하므로. 그럼에도 싸운다.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억울함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싸운다.


“내 새끼는 못 지켰지만, 더는 저희 같은 고통 속에 절망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현장실습 중 사망한 김동준의 어머니 강석경)


“저는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김용균 재단 이사장 김미숙)


“우리가 만나서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는 우리 아이들 같은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더는’ 혹은 ‘다시는’이라는 언어에서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공적 사안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산업재해 유가족 연대 이름이 ‘산재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2년을 싸우고도 진전이 없자, 김미숙 이사장은 급기야 한 겨울에 거리에서 곡기를 끊고 온 몸으로 호소했다. 굶어본 적이 없어 잘 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하면서도 그 결연한 단식은 29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교묘하게 기업의 처벌을 최소화하며, 그 이름에서도 ‘기업’을 없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공식 이름이다. ‘기업’은 정작 책임져야 할 순간에는 그 이름이 사라진다.

 

권력은 억울함을 오역한다

한자사전에서 (억울)抑鬱은 억제(抑制)를 받아 답답함, 애먼 일을 당해서 원통(寃痛)하여 가슴이 답답하다는 뜻이다.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내 잘못이 아닌 일로 피해를 입었으나 이 고통을 들어주지 않아 원통한 마음이다.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으나 억울함을 영어로 옮기면 ‘unfairness(불공정)’ 혹은 ‘resentment(분노)’라고도 한다. 억울함은 다소 억울하게도 정확하게 번역되기 어렵다. 그러나 억울함은 공통적으로 ‘불공정에 따른 고통’이라는 감정이 담긴다. 지난 몇 년 간 한국 사회의 화두인 ‘공정’은 바로 억울함을 바탕으로 싹을 틔웠고, 다른 누군가의 억울함을 밟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언어는 정치의 장이며 정치는 언어의 장이다. 공적 발화를 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억울함을 번역할 권력을 가진다. 그들은 위치에 따라 자신들의 억울함을 ‘공정’이라는 개념으로 번역하는 동시에 타인의 억울함을 묵살했다. 누구의 억울함을 번역할 것인가. 종부세 ‘폭탄’을 맞아 억울한 사람들? 가사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주면 등골이 휜다고 이 법안을 두고 ‘조선족 보호법’이라고 호명하는 사람들? 공공의대 설립이 억울한 ‘전교 1등’ 출신 의사들?

권력은 억울함을 오역한다. 그렇기에 어떤 억울함이 더 잘 보이고 어떤 억울함이 은폐되는지, 억울함의 위계를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나의 분노와 억울함이 증오와 냉소로 향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생각의 길잡이들이 많다. 아마르티아 센은 내게 그 중 한 사람이다. 『정의의 아이디어』에서 센은 ‘완벽한 정의’에 대한 인식보다는 “우리 주변에 분명히 바로잡을 수 있는 부정의가 존재하며 그것을 없애고 싶다는 인식”을 강조하며 글을 연다. 존 론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을 많이 참고하면서 동시에 센의 비판적 시각도 곁들였다.

대체로 ‘완벽한 정의’를 갈망하다가 제 억울함에 함몰되어 냉소하거나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명백한 부정의’를 희미하게 바라본다. 현재 공정이라는 언어는 명백한 부정의를 짓누르고 있다. 윤리를 상실한 ‘능력주의’를 내세운다. ‘그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한’ 신분과 그렇지 않은 신분으로 나누려 한다. 억울함과 원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내가 진짜 열심히 했다’에 집착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겨워서 열심히 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만’ 열심히 사는 게 아니다.

설탕 제거 작업을 하다가 설탕에 깔려 사망한 노동자, 한겨울에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이주 노동자, 평택 물류센터에서 추락사한 중국 동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억울하게 죽었다. 능력과 노력에 바탕을 둔 공정에 도달하려는 억울함이 아니라 ‘다시는’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억울함의 실체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의의 아이디어
정의의 아이디어
아마르티아 센 저 | 이규원 역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공정으로서의 정의 : 재서술
공정으로서의 정의 : 재서술
존 롤즈 저 | 에린 켈리 편 | 김주휘 역
이학사
도덕감정론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저 | 김광수 역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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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사회학 연구자. 모든 종류의 예술을 사랑한다. 미술과 예술 경영을 공부한 후 문화 기획과 문화 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개별의 작품보다 작품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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