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목표를 이뤘지만 방황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72회) 『5번 레인』, 『살아 있다는 건』, 『머나먼 섬들의 지도』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1.01.28)
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는 ‘목표를 이뤘지만 방황하는 사람에게’예요. 주제를 고민하던 중에 <책읽아웃> 팬카페와 네이버오디오클립에 댓글로 주제를 제안주신 청취자 분들이 계셔서 덕분에 행복한 고민을 했죠.
캘리: 맞아요, 정말 감사드려요! 모든 주제가 다 한참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었어요.
은소홀 저 /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데요. 이런 심사평이 있어요. “정직한 육체성에 대한 깨달음, 장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두려움을 이겨 내는 경험. 건강하고 당당한 여성 아동 주체가 탄생했다.” 표지를 보면 아시겠지만 수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5번 레인이라 뭉클했어요.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보통 4번 레인에서 수영을 하고요. 그 다음이 3번 레인, 그 다음이 5번 레인이에요. 주인공 ‘강나루’는 이제 막 6학년이 된 수영선수인데요. 어릴 때는 늘 금메달을 땄고, 늘 4번 레인에서 경기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5번 레인에서 경기를 하게 돼요. 1등을 하겠다는 목표는 이루었고, 수영은 여전히 재미있지만 이후 자꾸 2등, 3등을 하게 되면서 좌절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겪는 여러 이야기가 펼쳐져요.
나루 앞에 ‘김초희’라는 선수가 나타나요. 처음에는 나루보다 수영을 못했는데 어느 순간 기량이 성장해서 이제는 도저히 나루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차이를 벌리면서 금메달을 따요. 나루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도 않는데 단축되지 않는 기록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요. 그러다 경기 영상을 모니터 하는데 초희의 수영복이 달라 보이는 거죠. 이후 한 수영장에서 함께 연습을 하게 되고, 나루는 탈의실에서 자기도 모르게 초희의 수영복을 갖고 나오게 돼요.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물들이 어른의 조언 없이 스스로 성장한다는 점이었는데요. 나루는 고민을 하다가 초희의 학교에 찾아가서 수영복을 가져갔다고 고백하고요. 초희는 냉담해지고, 연락도 하지 않죠.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만났는데 초희는 기록도 안 좋아지고, 그 수영복도 입고 나오지 않은 거예요. 둘은 결국 결승에서 만나죠. 초희는 4번 레인, 나루는 5번 레인에서요.
이 책은 강나루뿐 아니라 다른 수영부 친구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어요. 그들도 저마다 목표가 있을 거예요. 그 목표의 달성 여부와 상관 없이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마음의 일까지 다루고 있어서 참 좋았어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물 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느끼는 가뿐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난 항상 네 편이야. 혹시 네가 네 편이 아닐 때에도. 알았지? 힘내.”
다니카와 슌타로 글 / 오카모토 요시로 그림 / 권남희 역 | 비룡소
오은 시인님처럼 일본에서 사랑 받고 있는 시인이죠.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책이에요. 저는 슌타로의 글을 아주 많이 보진 못했지만 볼 때마다 인생을 멀리 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 주제에 『살아 있다는 건』을 가져온 것은 지난 시간에 『오늘의 인생2』를 소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뭔가를 이뤘는데 방황을 한다는 건 더 힘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다만 그 시기를 건너갈 때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조금이라도 내적 성장이 있을 수 있다면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고요.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시는 원래 1971년에 슌타로가 「살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시였는데요. 일본의 한 출판사 편집자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한 초등학교에 갔다가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는 어느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생각해서 슌타로의 시로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살아 있다는 건, 지금 살아 있다는 건
목이 마르다는 거야.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거고
문득 어떤 멜로디가 떠오르거나
재채기를 하는 것.
(중략)
그리고 감춰진 나쁜 마음을 조심스레 막아내는 것이지.
지금 살아 있다는 건
울 수도 있고 웃을 수 있다는 거야.
저는 목표를 이루고 방황하는 분에게 ‘살아 있다는 건 방황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살아 있기 때문에 방황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3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내가 지금 하는 이 고민을 50-60대에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중고등학생, 대학생 때 심하게 방황하는 친구들을 볼 때도 차라리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고요. 일찍 방황을 하고,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결정되면 성인이 됐을 때 툴툴 털고 나아갈 수 있는 면도 많은 것 같아요. 방황도 내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살고 싶기 때문에 하는 거잖아요. 살아 있어서 방황하는구나, 어떤 것에 자극 받기 때문에 방황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주변의 장면에 관심 갖다 보면 언젠가 시간이 정말 해결해주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쁜 마음, 힘든 마음이 들면 조심스레 막아내면서 지내시면 좋겠고요.
유디트 샬란스키 저 / 권상희 역 | 눌와
저자는 유디트 샬란스키라는 독일의 작가이자 북디자이너예요. 소설도 쓰고, 북디자인도 하는 멋진 분이에요. 이 책은 독일 부흐쿤스트재단이 발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독일 책'에 선정된 적도 있는데요. 찾아보니 원서와 똑같은 북디자인으로 한국에서도 출간이 되었더라고요. 구입한지 조금 지나서 표지 색이 약간 달라졌는데요. 각자 자기만의 책을 가질 수 있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도 했어요. 이 책은 섬에 관한 지도책이에요.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지도책을 좋아했다고 해요. 1980년생이고, 통일 전 동독에서 태어나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지도책으로 여행하는 게 어렸을 적 취미였다고 해요.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오거든요. “모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지도 안에 못 들어가는 섬들이 여럿 있다. 보통 이런 섬들은 별도의 작은 상자에 들어가고, 본토의 각추 취급을 받고, 없어도 별 상관없는 곳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훨씬 흥미로운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도저히 인간이 갈 수 없는 척박한 섬도 있고요. 몇 무리의 인간이 들어가 자기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한 섬도 있고, 영화에서 많이 보는 표류기 사연을 담고 있는 섬도 있어요.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이 정말 담백하고, 아름다워요. 읽고 있으면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요. 방황하고 있을 때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나를 잊어버리는 순간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책을 읽으면서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내용이 이렇잖아요. 페덱스 직원인 주인공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돼요. 그곳에서 4년을 생존해 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목표’를 갖고 지내죠. 실제로 그 목표를 이루고요. 마침내 집에 돌아가는데 사실은 갈 곳이 없어요. 다들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주인공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큰 교차로 한 가운데 서서 묘한 표정을 짓고 끝나거든요. 그리고 이때 표정이 막막함이나 외로운 느낌이 아니에요. 햇빛도 너무 좋고, 부드럽게 바람도 부는데 이 사람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암시를 주죠. 호기심을 품은 표정으로 영화가 끝나거든요. 책과 함께 영화를 영업하고 싶은데요. 목표를 이룬 후에도 삶은 진행되고요. 또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 우선은 무리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하루를 살면서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자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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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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