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재수, 시인 오은 "우리 책 한 권 만들어 볼까?"
그림시집 『마음의 일』
청소년기가 아주 유쾌하지만은 않죠. 어려운 것도 많고, ‘다 힘든데 너만 힘드냐’고 말하는 어른 때문에 더 힘들고. 그런 ‘마음의 일’을 떠올리면서 써 내려갔던 것 같아요. (2021.01.27)
동갑내기 친구가 만나 전에 없던 형식의 그림시집이 탄생했다. 다람이 이모티콘과 『재수의 연습장』으로 유명한 만화가 재수가 그림을 그리고,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이자 말놀이가 특기인 시인 오은이 시를 썼다. 글과 그림을 넘나드는 창의적인 연출로 청소년뿐만 아니라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은 모두를 사로잡는다.
만화가 재수는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모베러 블루스』(글/그림) 『감정코치 K 1·2』(그림) 『천적 1』(그림) 『재수의 연습장-그림이 힘이 되는 순간』(글/그림) 등을 펴냈다. 페이스북, 트위터에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는 <재수의 연습장>은 현재 약 28만 명이 구독하고 있는 인기 연재물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똘망똘망 다람이’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4주』 『다리 위 차차』 등을 연재하고 출간했다.
시인 오은은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와 산문집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3년 전 “나중에 우리 같이 책 한 권 만들까?” 하면서 시작된 책이라고요.
재수: 네, 치밀하게 계획해서 나온 게 아니고, 우연히 만들어진 거예요. 평소에도 작업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제 그림을 보내주면, 오은은 그걸 보고 글을 쓰고, 또 제가 다시 그림을 그리고. 그게 일상이에요.
오은: 실제로 몇 편의 시를 재수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쓰기도 했어요. 마침, 제가 청소년시집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자연스럽게 “나 시집 내는데, 같이 작업해 볼까?” 제안했죠. 그래서 『마음의 일』이 청소년 시선 시리즈 시집, 재수와 함께 만든 그림시집 이렇게 두 권으로 나왔어요.
이 조합 너무 칭찬합니다!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났나요?
재수: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이 신촌에 있던 시절, 유희경 시인을 보러 자주 갔었거든요. 어느 날 같이 밥을 먹는데 이 친구가 옆에 있더라고요.
오은: 유희경 시인은 저희 성격을 다 알잖아요. 둘이 성격이 정반대인데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대요. 재수는 일할 때 정말 똑부러지는 성격이에요. 저는 퉁 치고 넘어가는 편이고요. (웃음)
첫인상은 어땠어요?
재수: 재미없는 사람. 저 사람이랑 말 섞을 일은 없겠다.(웃음) 근데 입을 여니까 그 순간 첫인상이 바뀌더라고요. 어라, 의외다 했죠.
오은: 야!(웃음) 사실 재수를 처음 만난 날, 서점에서 『재수의 연습장』을 사서 읽었어요. 인상은 딱딱해 보였는데, 책이 너무 발상이 뛰어나고 재미있는 거예요. 둘 다 말놀이에 관심 있으니까, 서로의 작품을 좋아할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오은 시인님은 평소에 말수가 많은 편이신데 글을 보면 차분하고, 재수 작가님은 지금은 진중한데 만화를 보면 위트가 엄청나요.
재수: 저는 온라인 수다쟁이거든요. 반대로 오은은 SNS에서 진중한데 실제로 만나면 쾌활하고요. 서로 각자 균형을 맞추고 있나 싶었어요.
오은: 그래서 재수를 온라인에서 만나면 저를 보는 것 같아요. SNS로 저를 안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당황하기도 해요.
책을 열자마자 목차 대신 프롤로그가 펼쳐져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재수: 시 하나하나 다 다른 형식으로 그렸기 때문에, 어떻게 통일감을 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프롤로그에 힘을 줬어요. 첫 장면부터 대사도 없는데 그림이 이어지잖아요. 교문에서 창문으로 이어지고, 소년이 책을 펼치면 수많은 문이 나오고요. 영화적 연출인 거죠.
에필로그에서 재수 작가님이 “만화책도 아닌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한” 새로운 책을 내고 싶었다고 썼어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었나요?
재수: 단순히 시에 삽화가 붙은 책을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시를 한 편 한 편 성실하게 정면승부해서 그림으로 그려내야 저한테도 의미가 있겠더라고요.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마지막까지 궁금했어요. 시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책을 내면, 시에 익숙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 같은 형태의 ‘그림시집’을 제안한 거예요. 편집자님도 불안했을 거예요. 저도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기분이었으니까요.
책의 물성을 고려해서 연출한 느낌이 들어요. 연필 선이 주는 질감도 있고, 글자가 흐릿해지는 효과도 나오고요.
재수: 요즘 시대에 책을 만들려면 책에서만 할 수 있는 걸 계속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책이 아니어도 되는 형식이면 다른 매체여도 되잖아요. 기왕 책 작업을 하기로 했다면, 책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싶은 거죠.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면서 가장 걱정한 부분이 있었나요?
재수: 시마다 다른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걸 한 사람으로 통일해야 하나 여러 명을 등장시켜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결국 여러 인물을 택해서, 책을 덮고 나면, 한 명이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 달랐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오은: 맞아요. 한 명의 캐릭터로 밀고 나가면 통일성은 있겠지만, 청소년 시절을 떠올려보면 각자 다른 이유로 힘들잖아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마음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등장인물을 다 달리 해봤어요. 이 시집에 나오는 인물들은 나일 수도 있고, 내 주변의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요.
모두가 주인공이네요!
오은: 그렇죠. 「교실에 내리는 눈」에 학생들의 뒷모습만 보이는 교실 장면이 나오거든요. 책 맨 끝에서 같은 장면을 앞에서 보여주는 그림을 넣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시집에 등장한 친구들의 얼굴이 짠 하고 모이는 거죠. 이 작업 자체가 뒷모습만 보이는 친구들의 입을 열어주고 각자 사연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을까 해요.
재수: 그런데 시에 등장하는 한 친구가 시골에 살아서 그 장면을 못 썼지.
오은: 전학을 왔어야 했어! 그러면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재수: 아, 아니야. 이대로 괜찮은 것 같아.(웃음)
『마음의 일』은 처음에 청소년 시집으로 나왔잖아요.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를 쓸 때 차이점이 있나요?
오은: ‘청소년 시집’ 하면 흔히 교육적인 메시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저도 청소년기에 그런 글을 읽었으면 싫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냥 그 시기, 우리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어요. 청소년기가 아주 유쾌하지만은 않죠. 어려운 것도 많고, ‘다 힘든데 너만 힘드냐’고 말하는 어른 때문에 더 힘들고. 그런 ‘마음의 일’을 떠올리면서 써 내려갔던 것 같아요.
오은 시인님의 산문집 『다독임』에도 아이들을 관찰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오은: 늘 관심이 많아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너무 재밌기도 하고요. 제가 종종 중학교에 가서 시 강연을 해요. 학생들에게 “어떤 시가 가장 좋니” 물어보면, 다 달라요. 각자 처한 상황이나 감정이 다 다르니까요.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나서 한 교실을 이루고 있는 거예요. 그럼 세 개까지 꼽아봐 하면, 많이 말하는 시가 「삼킨 말들」이에요. ‘아파요, 힘들어요, 모르겠어요’라는 정말 단순한 말들로 이뤄진 시거든요. 아이들이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고 삼켰던 말들인 거예요. 저도 청소년기에 사회적 자아를 만들면서 여러 감정을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 친구들도 똑같구나 싶었죠.
두 분이 함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쓴 시도 있다고요.
오은: 「네가 떠나고」가 그렇게 나온 시예요. 세월호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재수가 그 칼럼을 읽고 그림을 그린 거예요.
재수: 그리고 제 그림을 보고, 오은이 시를 쓴 거죠.
오은: 솔직히 저는 찰나의 영감을 믿는 사람은 아니에요. 일상을 살아가다가 주위를 관찰하고, 자극이 오면 그 감각을 쓰는 건데, 재수의 반응이 그중 하나인 거죠. 제 글이 그림이 되고 다시 시가 되는 걸 보면서, 우리 작업이 선순환되고 있구나 느꼈어요. 그래서 그림은 온전히 재수가 그렸지만, 이 책은 같이 쓴 듯한 느낌이 들어요.
재수: 평소에도 메시지를 많이 주고받아요. ‘이거 어때’ 하고 아이디어를 던지면 상대방이 ‘어, 나도 그런 생각 했는데!’ 답할 때도 있고, 바로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오은 시인님의 글에 자주 나오는 말이 ‘장래희망’이에요. 두 분의 현재 장래희망은 뭔가요?
오은: 지방에 가서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쳐주는 게 꿈이에요. 몇 년 동안 지역 강연을 다니면서 보면 확실히 모든 기회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강의를 가면, 아이들이 굉장히 신나서 듣거든요. 보내온 감상문을 읽으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상적인 말에서 시작해서 재미있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재수: 오은에 비하면 전 너무 속물적인데요? 저는 더 나은 하루를 사는 것!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야 제가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갈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근사한 작업실을 꾸려서 작업을 해나가고 싶네요.
오은: 『마음의 일』 했으니까, 우리의 다음 작업은 ‘마음의 이’! 하하.
*재수 만화가, 이모티콘 제작자. 펴낸 책으로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모베러 블루스』(글/그림) 『감정코치 K 1·2』(그림) 『천적 1』(그림) 『재수의 연습장-그림이 힘이 되는 순간』(글/그림) 등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에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는 <재수의 연습장>은 현재 약 28만 명이 구독하고 있는 인기 연재물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똘망똘망 다람이’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4주』 『다리 위 차차』 등을 연재하고 출간했다. *오은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항상’의 세계 속에서 ‘이따금’의 출현을 기다린다. ‘가만하다’라는 형용사와 ‘법석이다’라는 동사를 동시에 좋아한다. 마음을 잘 읽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와 산문집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란(作亂) 동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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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현대시>로 등단한 오은 시인의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에는 음악처럼 무의식적인 감각과 리듬이 넘쳐 난다. 이 속에서 넘쳐 흐르는 그의 말놀이 본능은 다국적 인물, 다양한 문화적 코드, 음악, 영화,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까지 시 속에서 놀게 하는가 하면, 자본 문명 안에 존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