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없는 '과학고' 국어 수업, 왜 특별했을까
『우리들의 문학시간』 하고운 작가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수업 준비를 할 때 교사들은 교재연구라는 걸 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개별 작품에만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주로 교과서 속 작품을 분석하고,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연구하는 데 비해, 저는 그 영역을 삶의 전반으로 확장하는 연습을 한 것 같아요. (2021.01.18)
수학과 과학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과학고, 입시에서 비중이 적은 국어수업, 과학고의 ‘천생 이과’ 학생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천생 문과’ 국어교사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국어교사인 하고운 작가는 일반고에서 과학고를 자리를 옮겨 5년을 보냈고, 그중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같은 학생들을 가르친 3년의 시간을 책으로 옮겼다. 단순한 수업기록을 넘어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관계의 깊이를 더해간 성장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이미 독립출판물로 출간되어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우리들의 문학시간』을 정식 출간한 하고운 작가를 겨울방학 기간에 만나보았다.
‘과학고 국어수업 3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아무래도 눈길을 끄는데요. 과학고 수업이라서 달랐던 점, 과학고 학생이라서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국어가 입시에서 조금은 자유롭다는 점이었어요. 일반고에서는 수능 대비를 어느 정도 해줘야 하는데, 과학고는 학생들이 대부분 수시로 진학하거든요. 그래서 좀 더 자유롭게 커리큘럼을 짤 수 있었고, 학생들도 큰 거부감 없이 잘 따라와준 것 같아요. 처음엔 너무 똑똑한 학생들이면 어쩌나, 긴장을 많이 했는데, 수학·과학 능력이 탁월하긴 하지만 열일곱은 열일곱이더라고요. 또래 아이들처럼 급식실 갈 때마다 뛰고, 많이 웃고, 성적 고민과 친구 고민을 해요. 그리고 대부분 지적 호기심이 뛰어난 편이라 국어수업에도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었습니다.
일반고에서 과학고로 옮기셨다면, 다르게 느끼셨겠네요. 그런데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나요?
우연히 독립서점에서 『쓰기의 말들』을 읽고 은유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좋아하는 서점에 ‘은유의 글쓰기 수업’ 공지가 올라왔어요. ‘이건 운명이다!’ 싶어서 바로 신청하고 1년 동안 글쓰기 수업을 들었어요. 그동안 블로그(//blog.naver.com/gilly71)에 조금씩 수업일기를 써오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은 아니었어요.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내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걸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를 배워나갔죠. 그러다 보니 글이 더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글쓰기 수업에서 매주 글쓰기 과제를 낼 때, 주로 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를 써 갔어요. 그때 은유 선생님이 해준, “고운씨는 학교 이야기를 계속 쓰면 좋겠다”라는 말이 일종의 격려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최지혜)와 둘이서 독립출판을 해보자고 작당을 했고, 친구가 과학고 수업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제게 책으로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3년 동안 같은 학생들을 따라가면서 커리큘럼을 만드는 재미도 있었고, 수업이 잘됐을 때나 망했을 때 블로그에 기록을 해왔기 때문에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이 목차를 상의하고, 서로 원고를 검토해주면서 결국 책을 쓰고 독립출판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무척 재밌고 행복했습니다.
과학고에서 다양을 수업을 하는 동안 작가님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수업 준비를 할 때 교사들은 교재연구라는 걸 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개별 작품에만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주로 교과서 속 작품을 분석하고,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연구하는 데 비해, 저는 그 영역을 삶의 전반으로 확장하는 연습을 한 것 같아요. 교과서가 없으니까 텍스트를 제가 정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경험하는 모든 책, 영화, 전시 등이 예비 텍스트가 되는 거죠.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것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후 수업으로 펼쳐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도 큰 공부였어요. 제가 절실하게 느꼈던 어떤 지점들이 아이들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죠. 함부로 접근해서 실패한 경우도 물론 있었지만, 아이들과 계속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더 좋은 수업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어요.
국어시간에 문학만 다루는 것이 아닌데, 제목을 ‘우리들의 문학시간’으로 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 제자들이 군입대를 앞두고 저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중 한 친구가 책을 선물했는데, 앞장에 짧은 편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문학에 선생님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그 아이들과 2학년 문학 수업을 했었는데 박완서의 『나목』, 이강백의 『파수꾼』, 이성복의 『서해』 같은 작품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었지요. 학생은 아마 그때 배운 작품들이 크게 인상에 남았나 봐요. 편지의 ‘우리들의 문학’이라는 구절을 보고 갑자기 신촌 길거리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요.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문학이구나 싶었어요. 소설가 위화의 “문학은 헤어진 후에도 서로 사랑하게 합니다”라는 문장도 생각이 났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보낸 3년의 국어시간 또한 어쩌면 일종의 문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제목을 ‘우리들의 문학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라디오 드라마도 만들고, 시낭송도 해보고, 영화를 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어 수업을 하셨잖아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을 꼽아주신다면요?
글쓰기와 합평 수업이에요. 학교에서 글쓰기를 하면 주로 학생이 과제로 써오고, 교사가 평가하는 식으로 수업이 이뤄지거든요. 그런데 저는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같이 합평하는 것이 얼마나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었어요. 이 방식을 교실 안으로 가져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책상을 둥그렇게 배치하고 모두가 동등한 관계에서 글을 읽고 합평을 했는데요, 아이들의 글이 정말 솔직하고 또 가슴이 떨릴 정도로 좋았어요. 글을 낭독하고, 서로 귀기울여 들어주고, 정성스럽게 글에 대해 평가해주던 그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우리들의 문학시간』에도 ‘과학고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있잖아요. 지금은 과학고를 떠나셨다고 했는데, 과학고에서의 경험이 일반고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이 되는지요.
과학고에서 5년을 근무한 후 일반고로 돌아왔지만 수업방식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작년에도 아이들과 시 경험 쓰기와 책 대화 수업을 했습니다. 교과서 작품들도 물론 너무 좋지만, 교과서 밖에서 국어와 문학을 경험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우리 삶에 깃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접해봐야 하거든요. 그렇게 문학과 자기 삶을 연결지어 생각해보게 하는 활동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이 좋게 생각해준 것 같아요. 자유롭게 수업했던 과학고에서의 경험이 일반고에서도 좀 더 유연하게 수업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어수업’ ‘문학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무엇을 얻고,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시는지요.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지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더라고요. 자기 표현도 연습하면 할수록 느는 거라고 생각해서, 계속 말하고 글 쓰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걸 수업을 통해 경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문학을 통해, 책을 통해 삶을 더 사랑하고 더 좋은 세상을 꿈꾸게 하고 싶어요.
*하고운 문학을 좋아해서 국어교사가 되었다. 책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배우는 시간을 사랑한다. 블로그에 수업일기를 쓰다가 어느 날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고, 은유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뒤 《마음을 울리는 사람》과 《우리들의 문학시간》을 독립출판으로 펴냈다. 수업으로 일희일비하는 사람이지만 수업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 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공부하며 《한 학기 한 권 읽기》(공저)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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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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