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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히어> 직접 대화하고 몸의 언어를 나누는 관계의 기쁨

배두나 출연, 이 여행기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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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정에 쏠린 눈과 스마트폰을 꽉 준 손을 거둔 스테판은 가족과 손을 잡고 대화하는 기쁨을 한없이 만끽한다. (2021.01.14)

영화 <#아이엠히어>의 한 장면

관계를 지탱하는 요소는 감정, 기억, 진심 등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몸의 언어를 구사한다. 연인의 경우, 호감을 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말을 섞고 관계가 진전되면 손을 잡기도, 포옹하기도, 키스를 나누기도,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전통적인 관계 맺기가 변화한 건 온라인 세상이 등장하면서다. 요즘에는 대면하지 않고도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몸의 언어의 상당수가 자판을 정신없이 두드리는 손가락으로 대체될 때가 많다.

스테판(알랭 샤바)은 요즘 SNS로 ‘톡’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상대는 ‘SOO’(배두나)다. SNS가 아니었다면 절대 성립되지 않을 인연이었다. 스테판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중년 남자다. 아들이 둘 있고 아내와는 이혼했지만, 사이는 좋은 편이다. SOO는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30대 여성이다. 그림에 소질이 있고, 그 외에는… 아는 게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으로 확인했고 서울이 연고인 것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스테판을 설레게 한다. 그래 결심했어!

서로에게 호감 있겠다 비대면으로 얘기만 나눌 게 아니라 직접 만나면 더 의미 있을 듯하다. 스테판이 서울행을 알리니 SOO는 인천공항으로 마중 나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에서 스테판은 SOO와 만나 오프라인에서 감격의 회포를 푸는 것은 아니고… SOO가 돌연 연락을 끊으면서 스테판은 서울로 나가지도,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태로 몇 날 며칠을 공항에서 지낸다. SOO가 연락하지 못하는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스테판은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며 SOO의 이름과 함께 ‘나여기있어요 #iamhere’ 해시태그를 건다. 

    

영화 <#아이엠히어> 공식 포스터

액정을 반으로 갈라 공유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방향을 바라보는 SOO와 스테판이 담긴 포스터에서 이 관계가 함께 나눈 대화, 아니 톡을 두고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스테판에게 SNS는 현실의 연장이다. 관계를 확장하는 증강 현실인 셈이다.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신기하고, 그 상대가 비행기로 열두 시간 이상이 걸리는 미지의 곳의 인물이라는 게 경이롭고, 과거라면 장벽이었을 시공의 조건을 뛰어넘어 진지한 관계를 꿈꿀 수 있다는 게 신이 난다.   

SOO는 설마 했다. 서울에 온 것도, 진짜 마중 나갈 거라고 생각한 것도, SNS의 대화를 모두 진심으로 받아들인 스테판이 이해 가지 않는다. 주소를 알려준 것도 아닌데 사진 속 빌딩을 물어물어 회사까지 찾아왔다. 그러려고 스테판과 톡을 했던 게 아니었다. SOO에게 SNS는 현실의 나를 보정하여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내 모습을 과장하는 가상공간이다. 일에 지쳐, 생활에 치여, 겨우 짬을 내어 접속해 고단한 현실을 잊는 도피처인 셈이다. 그래서 SNS에서 나눈 대화는 현실에서 유효하지 않다. 그것도 모르고 자신을 찾아온 스테판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나여기있어요’ 스테판이 SOO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내민 대화의 실마리였는데 예상치도 못한 상황을 겪고 보니 이역만리에서 자신의 처지를 다시 보게 하는 구조 신호가 되고 말았다. 이에 반응한 건 가족, 도대체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두 아들이 스테판의 SNS 사진과 해시태그를 보고 서울의 남산까지 찾아왔다. 멀리에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스테판은 아들들과 광장 시장에서 빈대떡도 먹고 한옥 게스트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고 나니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몰랐던 게 너무 많았다. 

가족은 호감 가는 대상과 달라 오래 부대끼고 너무 친숙해서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고는 한다. 대화는 건성, 스킨십은 민망, 그럼에도 알아주기를 바라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게 불씨가 되어 갈등의 골이 파이거나 관계의 거리가 벌어지고는 한다. 하물며 SNS에 올라온 사진과 단문으로 오가는 톡을 가지고 상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얼마나 피상적인가. 온라인이 관계의 범위를 상상 이상으로 확장했다 해도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 액정에 쏠린 눈과 스마트폰을 꽉 준 손을 거둔 스테판은 가족과 손을 잡고 대화하는 기쁨을 한없이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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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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