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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의 그래도 서점] 코로나 시대의 서점, 리스본
서울 연남동에서 서점 리스본과 포르투를 운영하고 있다.
“리스본에서는 신기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요. 동화 속 서점 같아요.” 단골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2021.01.05)
손톱이 찢어지는 꿈을 꾸었다. 정확히 왼편 엄지손가락. 또 택배 포장에 지친 모양이다. 8월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동안 나와 서점 매니저는 손끝이 해졌다. 라텍스 장갑을 끼어봐도 번번이 엄지와 집게 손가락에 구멍이 났다. 다시 2단계로 격상됐다. 서점 앞에 칠판을 내놓았다. ‘서로의 건강을 위해 책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들어와주세요. 아니라면, 좋은 시절이 오면 그때 방문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문 앞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울적해지는 건 문 앞에서 돌아가는 방문객 때문이 아니다. 또 택배와의 전쟁이겠다. 근육통이 찾아올테고 마음이 아프겠고 평화는 깨지겠다.
‘택배 싸다가 쓰러질 것 같아요.’ 며칠 전 서점 매니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라면 손님이 골라오는 책을 계산해주고 추천을 부탁하면 몇 권을 이야기해주면 된다. 온라인은 포장해서 보내고 난 뒤에도 편치 않다. 배송이 밀리면 CS도 밀려들고 마음 다칠 일은 반드시 생긴다. 10월, 침대에 누울 때면 ‘지긋지긋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소연을 하면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책이 팔리는 게 어디야. 신기하다’라는 말이 돌아오곤 해서 힘들다는 말 자체를 꺼낼 수도 없었다. 온종일 온라인 구매창과 송장과 다이렉트 메시지만 들여다본다. 책이 좋아 시작한 일인데 한 페이지 펼쳐보지도 못하고 하루가 닫혔다. 통장에 들어오는 돈도 위로나 보상이 되어주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 마침내, 마침내.
박스 테이프를 정리해 서랍에 넣었다. 청소도 깔끔히 했는데 손님이 없다. 이제는 외출해도 된다는데 손님들은 오지 않았다. SNS를 열어보니 모두 단풍을 즐기러 나가 있었다. 한산하게 10월 말과 11월이 갔다. 그 사이 온라인몰을 정비했다. 겨울도 여름과 같을 것임을 직감했다. ‘I will find a way.’지쳐 누워 뒹굴던 내 귀에 들어온 미드의 대사를 혼자 되뇌었다. 불안을 누구와 나누어야 할 지 몰랐다. 어디에 있을까, 누구에게 있을까, 답은 있을까. 터져 버릴 것 같던 날에 알았다. ‘보람’이었다. 사람들의 웃는 얼굴, 신나서 책 이야기할 때 목소리에 깃든 기쁨, 좋은 것을 나누며 반짝이는 눈빛이 좋아 나는 서점 일에 빠져 들었다.
글 한 편이 생각났다. 무너질 때 나를 일으키고 중심을 잡아줬다. 메일함을 열고 링크를 따라간다. 미국 서점관계자들을 위한 사이트에 김애란 작가의 글이 영문으로 실려 있다.
“이 일화 안에 제가 첫 소설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 서점 이야기다. 낯설고 혹독했던 봄, 격리된 도시 대구에서 메시지가 왔다. 비밀책 정기구독자의 친구라고 했다. 매달 1일 집으로 이달의 비밀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4년째 하고 있다.
“매일 택배 올 때마다 먹을 것 찾고 마스크만 찾던 친구였는데 서울에서 책이 왔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런 때도 책을 사는 사람이 있구나 놀랍기도 하고 같이 기쁘기도 해서 친구를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제 친구를 웃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은 웃었다는데 우리는 울었다. 전쟁터에도 책 파는 사람은 있다던데 대구 사람들에게 책을 보내주고 싶어졌다. 책이 필요한 분들은 대구 주소를 알려주시면 보내드리겠다 공지를 올렸는데 쉬지 않고 메시지가 들어왔다. 배송비는 서점이 냈는데 책은 혼자 가진 것으로 부족했다.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리자 1,500권이나 되는 책이 서점에 도착했다. 열어보면 아이들 간식거리며 편지, 커피 드립백을 비롯해서 당시에는 돈 주고 살 수도 없던 마스크가 들어 있기도 했다. 우리는 울다가 훌쩍이다 감탄하다가 글썽이며 택배를 싸서 대구로 보냈다. 매일 인증샷이 날아와 또 훌쩍대다가 꺄아-거리다가 코끝이 찡해져 묵묵해지곤 했다. 내가 서점을 왜 하는지, 서점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3년만에 제대로 알았다.
여러 달 지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코로나 시대의 서점을 주제로 원고를 부탁해왔다. 대구의 기억을 적었는데 김애란 작가가 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자신의 책이 미국에 번역되어 나갈 때 연남동 작은 서점 이야기를 적어 보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이어지는 글에서 김애란 작가는 기존서사에 압도당하지 않고 스스로 이야기를 선택하고 이야기를 바꾸는 사람들에 대해 적었다. 다시 읽어보니 뜨끔하다. 불과 8달 지났을 뿐인데 코로나라는 기존 서사에 압도 당할 뻔 했다. 일어나서 독서 모임을 열었다. 마스크 너머에서도 사람들은 웃었고 후기는 다정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안전망이었다.
“리스본에서는 신기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요. 동화 속 서점 같아요.”
단골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우리들의 낭만, 우리들의 동화라는 편지도 받았다. ‘그들은 알까. 동화와 낭만을 만들기 위해 서점 주인의 손끝과 가슴이 너덜해지고 있다는 것을.’질문하자마자 답이 떠올랐다. ‘알고 말고. 동화를 만든 것은 너이지만, 동화를 이어가고 완성하는 것은 그들이었잖아.’
SNS에 공지를 올렸다. "책마니또 같이 하실 분을 모집합니다. 코로나가 우리를 묶어도 크리스마스를 뺏기지는 말아요, 우리." 반나절도 안 되어 100명이 지원했다. 확실하다. 멸종 위기에 몰린 책 읽는 사람들에게 서로는 소중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격상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을 것이며 서점 주인은 답을 찾을 것이다. 거친 손이면 어떤가. 동화를 만들어낸 손으로 기억된다면. 생각하니 웃음이 나서 내게 맞는 방향을 찾았음을 알겠다. 어차피 고운 손을 탐낸 적 없다. 일을 많이 하여 단단해진 손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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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남동에서 서점 리스본과 포르투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