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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의 모기업화, 여자친구의 <回 : Walpurgis Night>
여자친구(Gfriend) <回 : Walpurgis Night>
현악세션이나 드라마틱한 구성은 들어낸, '열심히'가 아닌 '쿨'하고 '칠'한 여자친구의 낯선 모습. (2020.12.09)
이 앨범으로 명확해졌다. 올 초부터 시작된 <回 : 트릴로지>는, 모기업이 된 빅히트의 A&R을 그룹에게 적용하는 실험의 장이었다는 것을. 앞선 두 장의 EP가 'Labyrinth'나 'Apple'와 같은 곡으로 조심스러운 개입을 보여주었다면, <回 : Walpurgis Night>에선 보다 과감히 그 피를 수혈한다. 크레딧엔 빅히트 소속 뮤지션들의 이름이 늘어났고, 다수에 의한 분업체제 비중이 커졌다. 현악세션이나 드라마틱한 구성은 들어낸, '열심히'가 아닌 '쿨'하고 '칠'한 여자친구의 낯선 모습. <回 : Labyrinth>를 듣고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구나 생각했던 본인에겐 속았다 싶은 내용물이다.
여기에 방대한 설정 및 스토리텔링이 더해졌다는 건 그야말로 확인사살이다. 상당부분 소속사의 개국공신인 BTS와 그 동생그룹인 TXT의 공식을 이어받은 셈.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다.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면서도 팀의 구심점인 좋은 멜로디는 무사히 계승. 뭔가 살짝 위화감은 드나, 듣는 재미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준수한 결과물로 자리하고 있다.
'MAGO'는 핵심을 함축하는 키 트랙. 요즘 빅히트가 한참 몰두하고 있는 디스코 장르의 곡이나, 현대적인 재해석 대신 과거의 감수성을 그대로 재현하는 쪽에 가깝다. 여기에 트레이드 마크였던 클래식한 가요의 작법은 남겨 설득력 있는 변화를 꾀한 셈. 거친 디스토션의 어프로치가 가해진 'Love Spell'에서의 리듬감 역시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필리 소울 기반의 시티팝 'Three Of Cups'는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 코러스와 신시사이저가 기분 좋게 교차하고, 베이스와 브라스의 격돌은 의외의 낭만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가사 속 멤버들의 일상성과 생동감이 플러스 요인. 다소 과도했던 서두의 콘셉트를 중화해주는 중간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결은 다르나 특유의 파워풀함을 담아내고 있는 'GRWM' 역시 우리가 알던 익숙한 그들에 더욱 가까운 노래.
유닛 곡들은 노래 본연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대목이다. 심플한 악기소리 위를 코러스를 동반해 유려하게 타고 넘는 가창의 'Secret Diary', 굴곡진 비트와 날카로운 음색이 맞물려 라틴 팝의 장르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Better Me', 두 사람의 화음이 제목처럼 꿈결 같은 무드를 자아내는 'Night Drive'까지.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파장이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어 재수록된 'Apple'과 '교차로', 'Labyrinth'를 지나 자신들의 각오를 재차 다지는 '앞면의 뒷면의 뒷면'을 마지막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던 새로운 3부작은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작품을 들으며 두 번의 반갑지 않은 충돌을 느꼈다. 'Mago'와 'Apple', 'Labyrinth'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 가는 메타포와 그 외 수록곡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성의 충돌이 첫 번째. 변화된 음악성을 보이는 수록곡들과, <回:Labyrinth>에선 주축 트랙이었으나 이 작품의 러닝타임에서만큼은 이질성을 띄는 '교차로'와의 충돌이 두 번째다. 여기서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빅히트는 합병을 통해 합류한 레이블 소속 팀들에게 그 로고를 이토록 선명하게 찍을 것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여자친구는 팀명에서도 알 수 있듯, 거대한 은유나 장대한 세계관이 부재했기에 오히려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 속'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빅히트의 실책은, 이들이 착실하게 쌓아온 그 정체성의 무게를 비교적 가볍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멤버들의 역량을 동원해 좋은 팝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다. 다만,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태우려는 시도와 기존의 아이덴티티를 고려하지 않은 듯한 무리한 개입이 이 앨범 그리고 금번의 트릴로지 안에서 가볍지 않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 분명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다.
변화라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 아이돌, 나아가 모든 아티스트의 전략 중 하나다. 그럼에도, 좀 더 최적화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더군다나 확실한 개성을 가진 그룹인 만큼, 좀 더 조심스럽고 영리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빅히트식 기획이 빚어낸 언밸런스함은, 향후 이들이 자신의 산하에 들어오게 될 아티스트들의 A&R 방향성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숙제를 남긴다. 콘셉트의 위화감이 듣기 좋게 마감질 된 작품의 접근성을 위협하는 '回 Trilogy'의 엔딩. 이번 기획으로 얻은 데이터가 부디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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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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