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리뷰를 꼭 쓰고 싶은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64회) 『가해자들』, 『서로 다른 기념일』, 『소설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0.12.03)
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는 ‘리뷰를 꼭 쓰고 싶은 책’이에요. 프랑소와 엄님께서 제안을 해주셨는데요. 요즘 리뷰를 쓰시는 건가요?
프랑소와 엄: 그건 아니고요. 리뷰를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좋았던 책을 가져오자는 의미로 제안한 거예요. 저는 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책을 읽을 때 좋은데요. 그런 책을 만났거든요.
정소현 저 | 현대문학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서 31번째로 나온 소설이에요. 이번에 함께 나온 31번째에서 36번째 작품은 ‘절정의 문학을 꽃 피우고 있는 1970년대 중후반 출생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는 정소현 작가님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요. 예전에 불현듯 님께서 정소현 작가님의 『품위 있는 삶』이 정말 좋다고 추천을 해주신 적이 있어서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가해자들』이라는 제목을 읽는 순간, 이건 왠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는 느낌이 확 들면서 내 스타일의 책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속도감 있게 읽었는데요. 층간 소음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층간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1111호에 사는 여자, 그의 윗집과 아랫집, 관리사무소 등이 각 챕터에 화자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해요.
나는 계속 견디는 중이었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문장을 읽는데 ‘아래층’이라는 말이 다른 단어로 막 대입이 되는 거예요. ‘부하직원’, ‘을’ 같은 단어 말이에요.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은 이렇게 적어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이 말이 의미심장하더라고요. 소개를 해드리면, 소설에 가장 먼저 나오는 1111호 여자는 힘들게 재혼 가정을 꾸린 사람이에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이 며느리를 못마땅해 했어요. “나는 너 안 믿는다”는 말을 자주 했죠. 그러다 이 여자가 뒤늦게 산후풍을 겪거든요. 바람을 쐬면 안 되고, 햇빛도 못 봐요. 결국 소음에도 아주 예민한 사람이 돼서 윗집과 사이가 안 좋아져요. 이런 과정이 소설에서 진행이 됩니다.
읽으면서 온전한 가해자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는데요. 들여다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건도 많죠. 그렇지만 내가 분명히 피해를 입었는데 상대의 사정을 너무 보려고 애쓰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또 있거든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되게 감정적으로 복잡한 느낌을 받았어요. 정소현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많이 기다리게 됐고요. 정말 좋았어요.
사이토 하루미치 저 / 김영현 역 | 다다서재
사이토 하루미치라는 일본의 사진 작가가 쓴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농인이에요. 부모님은 모두 청인이었고요. 청문화에서 성장한 거죠. 어려서부터 말하는 법을 엄하게 배웠고, 중학교 때까지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청인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어요. 저자는 자신이 청인처럼 보이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고 말하거든요. 청인들 사이에서 자신만 못하는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어떤 일까지 했느냐면 친구들이랑 길을 가다가 공중전화 박스가 보이면 일부러 들어가서 통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대요. 그렇게 안간힘을 썼던 거죠. 그리고 나는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강박이 커서 당시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우울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농학교로 진학하는데요. "정말로 농학교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말해요. 농문화를 이해하면서 아주 자유로워진 거죠.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가 된 마나미를 만나요. 마나미는 부모님과 형제 모두 농인인 농문화 안에서 성장했어요. 당연히 수어가 기본인 세계에서 생활했고요. 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데요. 이름은 이쓰키예요. 이쓰키는 청인으로, 우리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길보라 작가님과 같은 코다죠. 이 책은 이렇게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책이에요. 폭 넓은 책이고요. 지금까지 수어와 농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지만 이 책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담은 육아일기이기도 하거든요. 아주 조용하고 희열로 가득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 점을 보는 것도 참 좋았어요. 그밖에도 저자가 생활에 대해 갖고 있는 능동적인 태도도 좋죠. 저자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낀 날을 '서로 다른 기념일'이라고 불러요.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기념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이 정말 멋졌어요. 박준 시인님이 ‘이 책을 만난 오늘을 기념하고 싶다’는 추천사를 썼는데요. 저도 정말 그런 마음이에요. 그래서 리뷰를 써보고 싶은 책이었어요.
다니엘 페나크 저 / 이정임 역 | 문학과지성사
‘리뷰(review)’라는 단어를 생각해봤어요. ‘다시(re)보다(view)’라는 의미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보고 싶은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목은 『소설처럼』인데요. 이 책은 에세이예요. 다니엘 페나크는 중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고 하고요. 그러던 중에 작가로도 활동을 했고, 청소년 시리즈물도 쓰고 어린이 책 시리즈도 썼다고 해요. 『소설처럼』을 읽고 나면 이 작가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떤 것을 깨달았는지가 너무 잘 느껴져요. 사실 이 책을 읽으면 리뷰를 써서는 안 돼요. 이유를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릴 때는 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죠.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고, 스스로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아이는 책과 거리가 생겨요. 왜 그런 걸까요? 어릴 때는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이니?”를 묻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뭘 느꼈고,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이며, 이 이야기가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세세하게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책읽기와 점점 더 멀어진다는 거죠. 이 책의 첫 문장이 참 인상적인데요. 이렇습니다.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 같은 동사처럼, '읽다'는 명령형으로 쓰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릴 때 그렇게나 이야기를 좋아하던 아이가 왜 갑자기 이야기와 멀어졌을까 생각하면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수긍이 되지 않나요?
독서에 관한 한 우리 독자들은 스스로 모든 권리를 허용한다.(중략)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전쟁과 평화』를 끝까지 다 읽는 사람도 있을 거고, 지루해서 덮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둘 다 그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좋은 텍스트는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잖아요. 줄거리를 요약하라고 해도 누군가는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누군가는 전쟁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겠죠.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어떤 문제를 만들어주고, 해결을 바라요. 그런 식으로는 책에 재미를 붙일 수 없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이야기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지 이 책을 보면서 곰곰 생각하게 돼요. 참 매혹적인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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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