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이 내 세계의 온전한 주인이 되었으면
『오늘이 어디 가니?』, 『내일이 뭐하니?』 김지연 저자 인터뷰
자신만의 충실한 세계를 가꾸는 것, 내 세계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오늘이와 내일이처럼 주변과 어울려 서로 돕고 함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기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2020.11.23)
『오늘이 어디 가니?』, 『내일이 뭐하니?』는 우리 신화 <오늘이>를 바탕으로 만든 아기 그림책이다. 신화 속 인물 ‘오늘이’는 들판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내일이’는 후에 활인적선(베품)의 신이 된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 신화의 아기들이 신화 속 인물 ‘오늘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김지연 작가의 발견을 통해 만들어졌다. 신화 속 인물 ‘오늘이’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아기는 매일매일 ‘큰 일’들을 겪고 있다. 이렇듯 모든 아기에게는 신화 속 인물과 같은 힘이 있으니 아기들이 가진 강인함을 믿어 주고 응원하자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그림책이다.
『오늘이 어디 가니?』와 『내일이 뭐하니?』는 우리 신화 <오늘이>를 바탕으로 만든 아기 그림책입니다. 우리 신화로 아기 그림책을 만든 배경이 궁금합니다.
신화는 오랜 시간 그 민족의 고유성이나 정체성을 축적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우리 민간신화의 주인공들은 소박하고 인간적인 것이 특징이랍니다. 다른 나라의 신화와 달리 인간으로 생사고락을 겪으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때 신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그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를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어요.
강림들에서 태어난 ‘오늘이’는 부모를 찾아 떠난 고난의 여정을 통해 세상의 만물을 이해하고, 다시 부모를 떠나 강림들로 돌아와 벗들과 어울려 살다 시간의 신이 됩니다. ‘내일이’와 ‘장상이’도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짝을 이뤄 활인적선의 신이 되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습니다. 자신만의 충실한 세계를 가꾸는 것, 내 세계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오늘이와 내일이처럼 주변과 어울려 서로 돕고 함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기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0세부터 3세까지 보는 아기 그림책은 창작 그림책 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렵다고 손에 꼽히는 작업입니다. 이번 작업에서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쓰셨나요?
아기 그림책은 아기가 집중하기 좋게 10바닥 미만으로 그림책을 만듭니다. 펼침 장면이 10장면 미만이고 크기가 작은 보드북 제본이라 등장하는 인물의 수를 제한해야 합니다. 등장하는 소재도 현실감이 있어야 하며, 배경이 너무 현란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해서도 안 되고, 과장이 심해 이해가 되지 않는 형태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만드는 데 제약이 많은 책이죠.
무엇보다 아기 독자님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무언의 형태로 표현해 주시죠. 저는 아기의 몸짓과 눈빛, 조그만 입에서 나오는 탄성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뿐입니다. 작업하는 내내 눈앞에 아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기의 반응을 떠올렸어요. ‘이런 형태는 너무 뾰족한가? 이런 색을 좋아할까? 현실감이 있는 소재가 좋다고 했는데 용을 알아볼까?’ 이런 고민들 끝에 제가 달한 결론은 아기는 정성껏 만든 이야기를, 이미지를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이었어요.
2016년에 ‘마음초점 그림책’ 4권을 만드셨는데요, 그때의 작업과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궁금합니다.
아기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북스타트’ 운동을 알게 되면서 아기들이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기들이 가장 먼저 보는 책인 초점 그림책들을 찾아보니 시력 발달에 도움을 주는 도형들로 구성된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이 땅에 온 아기들에게 우리 방식으로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 전통 문양으로 초점 그림책 작업을 했어요. 모란은 부귀영화를, 십장생은 오래살기를, 오방색은 방위신의 색으로, 아기가 한 해를 무사히 살고 건강하게 돌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지요.
『오늘이 어디 가니?』와 『내일이 뭐하니?』는 첫 돌이 지난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아기들이 보는 책이고 소재를 우리 문화 속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비슷하지만, 이번 작업들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엄마와 떨어진 상황에서 아기가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 1년 열두 달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과정을 통해 아기들이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하고 싶었어요.
아기 그림책은 아기와 엄마가 헤어졌다가 아기와 엄마가 포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이 어디 가니?』는 조금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구성에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저는 <오늘이> 신화에서 오늘이가 고난을 견디고 부모님을 찾아가 만난 뒤 자신이 살던 강림들로 다시 돌아와서 살아가는 독립적인 삶이 인상 깊었어요.
아기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해요. 부모 품을 떠나 서툴게 만들어가는 자신의 세계가 진짜이지요. 부모는 아기의 성장을 위해서 아기와 분리되는 순간을 잘 받아들여야 하고, 언제나 지지하고 믿는 사랑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봅니다.
『내일이 뭐하니?』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씩씩하게 뛰놀아야 한다는 마음을 바탕으로 계절과 관련된 놀이를 보여주는데요, 처음 구성은 이보다 더 복잡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결과물이 나오게 된 과정을 들려주시겠어요?
처음에는 24절기에 맞춰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시도했는데, 아기들이 이해하기 쉽게 사계절의 특징에 맞춰 이미지를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그래도 곳곳에 절기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어요. 2월에 잉어가 얼음을 깨고 튀어 올라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장면이나 11월 숫자를 문살을 표현한 것은 절기를 반영하고 있어요. 11월은 음력 10월이라 문에 종이를 다시 발라 겨울을 준비하는 풍습이 있었거든요.
숫자 표현도 처음에는 우리 민화의 문자도를 중심으로 구성하려고 했는데 이미지가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 일부 장면에만 반영했습니다.
『오늘이 어디 가니?』, 『내일이 뭐하니?』를 아기들이 좋아한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아기와 엄마로 대변되는 주양육자가 이 책을 어떻게 보면 좋겠다고 기대하셨나요?
책을 본 독자, 특히 양육자 분들 중에 저한테 직접 연락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신기하게 아기가 책을 보고 또 본다는 거예요. 특히나 오늘이가 엄마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는 아기들이 엄마 품에 쏘옥 안긴다고 하더라구요. 그 장면을 만들 때 저의 다 자란 아기들이 떠올랐고, 제가 아기였을 때를 상상하며 가슴이 먹먹했어요.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길 때 얼마나 충만할까요.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을 느낀답니다.
엄마도 자라야 해요.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듯 엄마도 아기를 키우며 엄마가 되어갑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꼭 필요하지요. 피부색이 다른 것이 아기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세상 모든 것이 아기를 돌보는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들에 부는 바람도, 지저귀는 새도, 아기를 돌보는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2011년 『깊은 산골 작은 집』을 시작으로 14권의 그림책, 2권의 성인서를 출간하셨는데요,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보입니다.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는지, 이 외에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는 관심사나 앞으로 준비 중인 분야가 있을까요?
전통 문화가 가진 의미도 중요하지만 저에게는 뛰어난 미감을 지닌 조형성이 참 매력적입니다. 한글의 조형미 역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꽃살문의 문양은 또 얼마나 아름답나요. 우리 문화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움들을 알리고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것은 비단 형태뿐만 아니라 그 미감에 깃든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서와 마음이 보여서겠지요.
제가 최근에 아기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들의 삶을 돌보고 싶어서였어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아기책을 통해 더욱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고 보아주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김지연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구미에서 자랐다.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SI그림책학교에서 그림책을 공부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백년 아이』, 『부적』, 『깊은 산골 작은 집』, 『꽃살문』, 『한글 비가 내려요』, 『개그맨』, 『꼴딱고개 꿀떡』, [마음초점 그림책] 시리즈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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