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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영화 <서치>를 만든 그 감독의 여전한 재능

장르의 제약을 뛰어넘는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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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직접 설정한 이중 삼중의 제한된 조건을 아니쉬 차간티 본인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주인공이 극복할 수 있게 장르적 재미를 개발한다. (2020.11.19)

영화 <런>의 한 장면

아니쉬 차간티는 <서치>(2018)의 연출자로 유명하다. <서치>는 실종된 딸의 행방을 찾는 아빠의 고군분투를 다룬 작품이다. 스릴러 장르에서는 흔하게 접하는 설정이다. 아니쉬 차간티는 데뷔작에서부터 스크린을 온통 PC의 윈도, 맥의 OS, 아이폰의 영상 통화, 메신저, 인스타그램 등의 화면으로 구성하여 흔한 설정의 해당 장르에 형식의 진화를 꾀하였다. 

새로움이 미덕인 전작은 차기작에서 감독의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완성도가 그에 못 미치거나 아이디어의 신선도가 떨어지면 전작의 성공이 요행이었다는 식의 비판이 따라오는 까닭이다. 아니쉬 차간티의 두 번째 작품은 <런>이다. 오히려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하여 스릴러의 흔한 클리셰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자기만의 색깔을 풀어 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흡입력 있게 끌고 간다. 

도망치다, 달리다의 의미가 있는 <런>은 엄마에게서 도망쳐야 하지만, 달릴 수가 없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탈출을 감행하는 딸의 악전고투가 중심에 선다. 다리를 쓰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하는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늘 복용하는 약이 담긴 병에 엄마 다이앤 셔먼(사라 폴슨)의 이름이 표기된 걸 보고 이상하게 여긴다. 엄마가 아픈가? 멀쩡히 걷는데? 다이앤은 딸 네가 잘못 본 거라고 네 건강이나 신경 쓰라고 약을 건넨다. 

뭘까? 클로이는 약의 정체가 궁금하다. 엄마가 잠든 밤, 2층 자기 방에서 조심조심 휠체어를 몰고 계단의 운반 장치를 타고 내려와 컴퓨터를 켜고 구글 크롬을 작동하여 약을 검색하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뜬다. 클로이는 점점 의심이 든다. 다리가 불편한데 왜 굳이 이층에 방을? 내가 먹는 약인데 약병에는 왜 엄마 이름이? 인터넷은 왜 안돼? 간신히 알아낸 약의 정체, 사람이 복용하면 다리가 마비되는 동물 치료제다! 

<서치>에서 그랬듯이 <런>에서도 아니쉬 차간티는 ‘울타리’를 친 설정으로 다중의 어려움을 안긴다. 가족이 원인이 된 불상사로 주인공을 일단 좌절하게 한 후 집을 벗어나지 못하게 족쇄까지 달아 웬만해서는 헤어나오기 힘든 고통의 미로를 설계한다. 묘미는, 감독이 직접 설정한 이중 삼중의 제한된 조건을 아니쉬 차간티 본인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주인공이 극복할 수 있게 장르적 재미를 개발한다는 데 있다. 

다리를 쓸 수 없는 클로이는 심지어 방에 갇힌다. 문은 바깥에서 막아 놓아 나갈 수도 없다. 휠체어도 무용지물이라 이동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창문을 넘고 추락 위험이 있는 지붕을 간신히 기어 옆 방의 닫힌 창문을 깨고 들어가 어찌어찌해서 겨우 집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한다. 이제 자신이 엄마에게 학대당한 사실을 경찰에 알리면 되는데 외딴 지역이라 도로가 단 한 군데라서 엄마와 맞닥뜨리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나를 넘기면 두 개가, 두 개를 극복하면 세 개가, 세 개를 뛰어넘으면 그 이상의 제약이 등장하는 <런>은 육상으로 치면 허들 경주다. 마라톤 길이로 늘려 중간 반환 지점에서 두 사람이 바통을 교환하게 한 후 쉬지 않고 뛰고 넘도록 하는 경기를 닮았다. 물론 바통을 주고받는 두 사람은 클로이와 다이앤이다. 감금하고 감금당하는 구도의 영화는 보통 선악을 구별해 선의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보통이다. 그와 다르게 <런>은 가족으로 묶인 두 사람이 가족애에 관한 서로 다른 정의로 상대를 괴롭혀야 하는 배경이 있다. 


영화 <런> 공식 포스터

승패를 따질 수 없는 가족애는 이해의 여부가 관계의 성격을 결정하는 판단 근거가 된다. <런>은 이에서 또 다른 게임의 조건을 적용하여 클로이와 다이앤 간의 관계 역전을 반전으로 활용한다. <서치>도 그렇고, <런>까지, 아니쉬 차간티에게 영화는, 장르는 극 중 인물을 제약의 미로에 빠뜨려 탈출하게 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아니쉬 차간티는 <런>을 연출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컴퓨터 스크린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영화를 절대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개념 때문에 틀에 박히고 싶지 않다.” 

아니쉬 차간티가 <서치>에서 컴퓨터와 각종 SNS 바탕 이미지로 영화 전체를 꾸민 건 장르를 새롭게 바꾸려는 야심이라기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아이디어를 게임의 규칙으로 삼아 스릴러의 묘미를 확장하려는 시도이었다. <런>이 전작과 다르게 전통적인 스릴러로 보인다면 컴퓨터 스크린이 중심이 아니어서다. (컴퓨터 화면은 단 한 시퀀스에 등장한다!) 아니쉬 차간티는 가족애를 시험에 들게 하는 설정에 여러 개의 벽을 세워두고 이를 넘는 아이디어를 사연으로 꾸민다. 그게 아니쉬 차간티가 감독으로서 가진 재능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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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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