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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공간 특집] ‘읽다’와 ‘앉다’라는 행복한 조합 - 소전서림

<월간 채널예스>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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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못이 있던 자리’라는 지명의 청담동에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소전서림이 있다. 오로지 읽는 데 집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상의 ‘낯선’ 도서관이다. (2020.11.12)


‘맑은 못이 있던 자리’라는 지명의 청담동에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소전서림이 있다. 오로지 읽는 데 집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상의 ‘낯선’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책의 향으로 온기를 만드는 곳이다. 빛은 벽에 스며들어 선이 아닌 빛의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섬세한 디테일은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 도서관의 리듬을 만든다. 먼 시선으로 외부가 보여 눈을 쉬게 해야 한다. 눈은 책으로 향하지만 모든 감각이 열리는 장소가 도서관이니 그 공간은 비일상적인 공간이다.’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가 설계하고, 원오원아키텍츠 최욱 건축가가 건축 인테리어를 맡은 소전서림의 설계 모티프다. 읽다 보면 한 줄 한 줄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출력되는 느낌이다. 흥미로운 건, 실제로 이 공간에 앉아 찬찬히 시선을 돌리면 각각의 문장이 눈앞에서 고스란히 해석된다는 점이다.



주저 없이,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에게 이런 제안부터 했다. “A라는 독자가 이곳에 방문합니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 공간을 다 누릴 순 없지만, 가능한 한 최대한의 매력을 누릴 수 있는 동선을 안내해주세요.” 가이드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우선 소전서림 입구를 지나, 마치 어머니 산도를 지나는 태아처럼 컴컴한 계단을 따라 환한 곳으로 내려갑니다. 중층에 이르면 캣워크 난간에서 책과 눈에 익은 디자인 체어들이 눈에 들어와요. 반층 더 내려가면 큐레이션한 책들이 꽂힌 서가가 압도적으로 펼쳐지는 메인 홀이 등장합니다. 우선 신간, 추천도서, 테마, 매거진 코너를 가볍게 훑은 뒤, 예담에서 커피 한 잔을 따른 후 디자인 체어에 앉아 원하는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더 즐기려면 유리 칸막이로 둘러싼 1인 서가의 디자인 체어에서 다리를 뻗거나 누워 느긋하게 책을 읽습니다. 책의 숲이니, 잠시 눈을 붙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 특별하고 낯선 도서관이 청담동에 문을 연 것은 올해 2월의 일이다. 처음엔 북카페 형태의 서점을 떠올렸다가 독립서점도 대형 서점도 아닌 공간 규모 탓에 도서관으로 방향을 틀고, 최종적으로 ‘만화방’을 근접 모델 삼은 콘셉트로 결정한 결과물이다. “집처럼 편한 공간에서 편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화방이 떠올랐어요. 만화책과 달리 문학, 인문학 책들은 시간 대비 독서량의 효율이 낮아서 ‘반일’, ‘1일’ 요금제를 적용하기로 했고요.” 

미리 귀띔하면, 소전서림은 유료 도서관이다. 개관 초기 ‘콧대 높은 실험’이라는 매체들의 언급이 뒤따랐지만, 소전서림의 명분은 또렷하다. ‘서점은 늘었지만 책은 사지 않는 시대, 출판물은 늘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개성 있는 독립서점에서 책을 사기보다는 서점을 ‘찍는’ 일에 열중하는 시대에 공간의 표면만 소비하고 가는 SNS 운영자들의 콘텐츠 인테리어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 확고한 스탠스 뒤에는 도서관을 채우는 기본 물성, 책과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총 4만 권의 책은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가는 전문가들에게 큐레이션을 맡겼다.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 박혜진 문학평론가, 서효인 시인, 이현우 서평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영희 보안책방 큐레이터,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 등에게 주문한 큐레이션 기준은 하나, ‘양서를 선별해달라’였다. 4만 권의 베이스캠프에 꾸준히 산소를 넣는 일도 쉬지 않는다. 매월 사서와 북큐레이터들이 리서치한 리스트를 살핀 뒤 문학, 인문학, 예술 서적 중심으로 신간을 구입한다. 



도서관은 책이 주인공인 공간이지만 소전서림이라면 아트 컬렉션과 가구 배치, 공간 활용도 크레디트에 함께 오를 만하다. 1인, 2인, 4인, 여럿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등 다양한 좌석은 방문객의 니즈를 고려한 구성이다. 소음에도 단계적 니즈를 반영해, 조용하고 혼자 있기 좋은 공간을 원하면 메인 홀, 카페처럼 커피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길 원하면 예술 서적들을 꽂아둔 ‘예담’을 선택하도록 구성했다. 

다양한 의자 컬렉션은 소전서림만의 백미. “도서관을 찾는 이들의 ‘읽기’를 지속하게 하려면 ‘앉기’라는 행위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전서림 곳곳에 놓인 의자는 그 고민의 결과입니다.” 끊긴 듯 이어지는 도서관 공간 곳곳에 핀율, 칼 한센 앤 선, 아르텍, 랑게 프로덕션, 까시나, 프리츠 한센의 프리미엄 체어 등 디자인 체어가 고명처럼 뿌려져 있다. 

한국 작가들과 진행한 ‘리딩 체어 프로젝트’ 역시 재미를 더한다. 앉는 행위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실현해보자는 아이디어로 컬렉티브 그룹 AR3과 함께 다이스 체어(일명 주사위 의자), 스윙 체어, 황금알 낳는 거위 체어를 만든 것.



시선을 끈다는 이유 덕분이지만, 그렇다고 책과 공간이 소전서림의 전부는 아니다. 황보유미 관장이 꼽는 메인 콘텐츠는 일반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인 ‘소전 아카데미’. 소전서림이 ‘프라이빗한 공유 서재’인 동시에 ‘인문학 살롱’ 역할까지 수행하는 이상한 나라의 도서관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하반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피아노 음악과 로맨티시즘(강연 연주)’, ‘이날치 공연’ 등이 예정되어 있어요. 외부 협력 행사로 ‘2020 요즘비평포럼’, 한국문학번역원과 공동 진행하는 교차언어 낭독회 등 행사도 준비 중입니다.” 




소전서림

위치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138길 23

이용 정보 화~토요일 11시~23시, 일요일 9시 30분~18시 30분, 월요일 휴무. 5시간권 3만 원, 종일권 5만 원. 멤버십 연회비 66만 원. 멤버십 회원은 입장료 50% 할인, 소전서림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좌, 낭독, 강연, 공연, 이벤트 등 모든 프로그램을 할인 가격으로 우선 등록할 수 있다.   

문의 info@sojeonseolim.com, 02-54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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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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