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박정섭 “읽으면 배가 고파지는 그림책”
『어서 오세요! ㄱㄴㄷ 뷔페』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뷔페를 거의 못 가잖아요. 그림책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고, 대리만족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2020.10.26)
최경식 작가의 『어서 오세요! ㄱㄴㄷ 뷔페』를 읽고 나니 허기졌다. 기역부터 히읗까지 14개 닿소리로 시작하는 42가지 음식이 책장 가득 펼쳐지는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ㄱㄴㄷ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는 최경식 작가는 아이에게 한글을 알려주는 아빠의 마음으로 『어서 오세요! ㄱㄴㄷ 뷔페』를 펴냈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노래 그림책’이라는 것. 최경식 작가의 글에 박정섭 작가가 음을 붙여 동명의 노래를 만들었다. 작가가 즐겁게 임한 작품의 에너지는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두 그림책 작가의 컬래버레이션이 얼마나 유쾌했는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생생히 느껴졌다. 인터뷰는 박정섭 작가가 운영하는 공간 ‘그림책 식당’에서 진행됐다.
두 분의 인연이 궁금해요. 원래 친분이 있으셨어요?
박정섭: 한 3~4년 전쯤 그림책 작가들 모임에서 처음 만났어요.
최경식: 그날도 그림책 식당에서 만났거든요. 당시에는 여기에 오락기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날 제가 멤버들 중 가장 먼저 도착해서 어색하게 앉아 오락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두 분이 처음으로 함께한 작업인데요. 그림책에 곡을 붙이는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최경식: 출판사 첫 미팅 때 문득, 노래로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흘러가듯 지나갔는데 책 작업이 진행되면서 점점 발전했어요. 진지하게 곡을 만들자는 대화가 오고 갈 무렵에 박정섭 작가님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림책 식당에 왔을 때 작곡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거든요. (웃음) 『똥시집』, 『검은 강아지』 등 작가님의 그림책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도 하셨고요. 함께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부탁을 드렸어요.
박정섭: 저는 그동안 혼자서만 작곡을 했지, 외부의 의뢰를 받은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출판사의 연락을 받고 좀 의아하면서도 좋았어요. ‘아 이렇게 데뷔하는 건가?’ 싶고. (웃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죠.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선뜻 응할 수 있었던 건, 처음 연락을 받았을 당시에는 간단한 작업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중간에 작업 방향이 바뀌면서 어려워졌죠. (웃음)
어떻게 바뀌었나요?
박정섭: 처음 제안을 주셨을 땐 음식 이름은 제외하고, 시작되는 문장인 “기대 가득 안고서” , “나란하게 줄 서요” 등의 글로만 짧은 노래를 만든다고 했어요. 그럼 곡 길이가 짧거든요. ‘이 정도면 도전할 수 있겠다’ 싶어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는데, 중간에 나, 아빠, 엄마가 먹는 음식을 다 넣어서 노래를 만드는 걸로 방향이 바뀌었어요. 그때부터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웃음) 처음에 했던 작곡은 술술 풀렸는데, 그렇게 바뀌고 나니 멍하더라고요. 매일 고민만 하다가 어느 날 새벽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다행이었죠.
최경식: 맞아요. 사실 저와 편집자의 생각은 음식은 제외하고 글의 앞부분만 따서 짧은 노래를 만드는 거였는데요. 회의 중에 전체적으로 곡을 붙여서 한 편의 노래를 만드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와서 갑자기 일이 커졌어요. 원래 무슨 일이든 수정이 제일 힘든 법인데, 정섭 작가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훨씬 좋은 노래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최경식 작가님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최경식: 한 번 듣고 계속 흥얼거렸어요. 저는 처음 작업한 짧은 버전의 노래도 좋았거든요. ‘그냥 음식 넣지 말고 이대로 가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너무 좋았는데, 새로운 버전을 들으니까 이전 노래가 기억나지 않더라고요. (웃음)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박정섭 작가님은요? 『어서 오세요! ㄱㄴㄷ 뷔페』의 첫인상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박정섭: 곡 작업을 의뢰받았을 땐 그림을 못 봤고, 출간한 뒤에 책을 처음 봤는데요. 경식 작가님 특유의 세밀하고 꼼꼼한 스타일이 편안하게 바뀌었다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신선했죠. 작가님이 기존의 작업 방식을 내려놓고 되게 즐겁게 작업하신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배가 고파요. 마치 식전 빵처럼, 밥 먹기 전에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침이 막 고이거든요.(웃음)
‘ㄱㄴㄷ 그림책’을 펴낸 계기가 있나요?
최경식: 처음 그림책 작가가 되었을 때부터 줄곧 ㄱㄴㄷ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아이디어를 구상하다가도 늘 마지막에는 ㄱㄴㄷ 그림책에 대해 고민하곤 했죠. 제가 2007년에 회사를 그만두었을 당시에 첫 아이가 생겼거든요. 아마 아이의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아이에게 ㄱㄴㄷ을 알려주곤 했던 게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어요. 그런데 시중에 이미 ㄱㄴㄷ 그림책이 많잖아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가 작년 이맘때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처음에는 ‘과일로 할까? 음식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뷔페라는 개념을 대입하니까 머릿속에 전구가 탁 켜지면서 내용이 짜 맞춰지더라고요.
음악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셨어요?
박정섭: 저는 우쿨렐레로 작곡을 해요. 일단 A4용지에 가사를 쭉 적은 뒤, 코드를 넣고 우쿨렐레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러봤어요. 코드가 너무 복잡하면 아이들이 부르기 어려우니까, 간단하면서도 중독성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죠. 처음 두 소절은 들었을 때 곧장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쉬운 멜로디를 배치하고, 그다음에는 변주를 해서 지루하지 않도록 했어요. 이후에 편곡을 담당해주신 박주운 선생님께서 좀 더 신나는 느낌으로 작업을 해주셨어요.
곡을 만들면서 제일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박정섭: 듣다가 중간에 지겨워지지 않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었어요. 중독성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가사가 재밌어서 노래도 잘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경식: 이 노래는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흥얼거릴 수밖에 없어요. (웃음)
두 분이 직접 녹음도 하셨잖아요.
최경식: 저는 “기역! 니은! 디귿!” 하고 외친 것뿐이라 녹음에 참여했다고 하긴 어렵지만(웃음)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매 소절마다 녹음한 소리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총 3~4시간쯤 녹음했던 것 같아요.
박정섭: 목표는 1시간 30분이었는데, 3시간 이상 걸렸어요. 함께 녹음을 해 준 아이들 덕분에 더 즐거운 시간이었죠. 노래는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시는 혜경 님의 큰 아이가 불러줬어요. 곡을 만들고 나서 5~6학년쯤 된 여자아이가 노래를 부르면 좋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 섭외할지 고민하던 차에 평소 알고 지내던 혜경 작가님의 아이가 떠올라서 부탁을 드렸거든요.
녹음 당일에 혜경 작가님이 남매를 데리고 스튜디오에 오셨는데요. 노래하는 역할을 맡은 큰 아이는 긴장한 반면, 둘째 아이는 굉장히 의욕적이더라고요.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하기가 미안해서 누나가 녹음할 때 같이 들어가서 기역 니은 디귿이라고 외치는 거 같이 할래?”라고 물었더니 벌떡 일어나서 그러겠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두 아이 모두 녹음을 하게 됐는데, 덕분에 더 좋은 노래가 나왔어요. 경식 작가님과 아이가 같이 닿소리를 외쳐주니까 에너지가 확 살더라고요. 녹음하는 내내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최경식: 맞아요. 만약 저 혼자 했다면 노래가 칙칙했을 거예요. (웃음)
음악 작업을 하면서 의견 차이는 없었나요?
박정섭: 출판사와 의견이 달랐던 게 딱 하나 있어요. 가사 중에 “난, 엄만, 아빤”이라고 쓴 부분을 출판사에서 전부 “나는, 엄마는, 아빠는”으로 고쳐 달라고 하셨거든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보는 책이니까 교육적인 부분을 깊이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하나 바꿨다고 완전히 다른 노래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타협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안 된다고 강하게 설득을 했어요. 결국 제 뜻을 받아들여 주셔서, 경식 작가님께 그림책의 글도 “난, 엄만, 아빤”으로 수정할 수 있을지 조심스레 여쭤봤는데 흔쾌히 그렇게 해주셨어요.
최경식: 사실 처음에는 글도 전부 ‘난’이라고 쓰여 있었어요.(웃음) 저도 확실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듣고 나중에 바꾸었던 건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거죠. 글과 음악을 함께 작업하는 데 이렇게 여러 가지를 살펴야 하는 과정이 있을 줄 몰랐어요. 단순히 곡을 붙이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음악과 그림책 작업이 한 작품으로 움직여야 하고 하나가 바뀌면 다른 하나에도 영향이 미친다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깨달았죠.
박정섭 작가님은 그림책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종종 해오셨지만, 최경식 작가님은 처음이시잖아요. 이번 작업이 어땠나요?
최경식: 정말 신선하고 좋았어요. 그림책을 만들 때는 글, 그림 모두 혼자 해내야 하기 때문에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삽화 작업을 할 때도 글을 쓰는 작가와는 보통 편집자를 거쳐서 소통하지, 직접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늘 혼자 일하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즐거웠죠. 마치 2인 3각 경기처럼 정섭 작가님과 발을 맞춰서 착착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박정섭: 저도요. 외롭지 않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그림책이 음악과 만날 때 일어나는 시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최경식: 여러 차원으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공부할 때도 눈으로 보고, 소리 내서 읽고, 손으로 쓰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하잖아요. 또 음악에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어요. 제가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때 당시 들었던 노래가 나오면 순식간에 대학생 때의 추억이 소환되거든요. 아이들도 음악과 함께 그림책을 접한다면, 이 책을 더 오래 기억해주지 않을까요.
박정섭: 제가 그림책과 음악 작업을 함께 하게 된 건, 한때 음악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음악감독은 하지 못했지만, 그림책 작가가 되면서 ‘그림책 OST’를 제작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만든 그림책에 곡을 붙였을 땐 모든 작업이 다 끝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 혼자 글, 그림, 음악을 다 해야 하니까요. 이번에는 경식 작가님이 글, 그림을 해주시니까 저는 음악만 만들면 돼서 참 좋았어요. (웃음) 상대적으로 작업이 정말 빨리 끝나고 편하더라고요.
최경식: 다음에 또 한 번 같이 해요. (웃음)
이번 책은 전작들과 느낌이 많이 달라요. 가볍고 경쾌하다고 할까요.
최경식: 그림은 엉덩이로 그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동안 제가 했던 작업이 특히 그런 편인데요. 계속 무언가를 그리고, 덧칠하고, 쌓아 올리는 작업을 오래 하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부담을 내려놓고 작업했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한 일이라서 좀 낯설어요. 음식을 그리는 데는 한 달이 걸렸고, 인물은 일주일 만에 다 그렸거든요. 평소의 저에게는 이렇게 빨리 끝나는 작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좋더라고요. (웃음)
박정섭: 표정만 봐도 정말 좋아하시는 거 같네요. (웃음)
최경식: 이전 작품들은 한 장 한 장 그릴 때마다 뿌듯함이 있었지만,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작업을 하면서 청량감을 느꼈어요. 무조건 오래 그린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았죠.
작가의 말에서도 “요즘은 말랑한 그림을 그려 보려고 합니다”라고 하셨어요.
최경식: 어떤 계기가 있어서 새로 다짐을 한 건 아니고요. 출판사와 미팅할 때마다 버릇처럼 했던 말이에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늘 “이번엔 진짜 쉽게 가겠다”라고 했는데 드디어 실현됐네요. (웃음) 사실 절반의 실현이에요. 원래 제 더미북에서는 음식도 캐릭터화 한 그림이었거든요. 그런데 편집부 회의에서 음식은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인물들과 대비되는 느낌이 들고,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세밀하게 그렸어요. 다음 작품은 정말 쉽게 가보려고요. (웃음)
책에 들어갈 뷔페 메뉴들은 어떤 기준으로 정했나요?
최경식: 먼저 각 자음으로 시작하는 음식들을 생각나는 대로 쫙 쓰고, ‘뷔페에 있을 법한 음식,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 위주로 추렸어요. 음식을 정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나중에는 편집자랑 같이 머리 싸매고 고민했어요. 예를 들어 원래 ‘포도’ 같은 과일도 있었는데, 이왕이면 조리한 음식을 넣자는 의견이 있어서 싹 빠지고 다시 고민하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너비아니, 골뱅이 같은 음식들도 들어갔죠. (웃음) 사실 첫 회의 때는 진짜 뷔페처럼 애피타이저, 메인 음식, 디저트 순으로 음식을 맞추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그 순서를 지켜서 음식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더라고요. 아쉬운 대로 ‘ㅋ’ 부분만 음료(코코아, 콜라, 커피)로 통일했는데 다음 장에서 또 탕수육, 파스타 같은 음식을 먹어서 디저트 느낌이 사라졌어요.
박정섭: 저는 이 순서가 맞는 거 같은데요. 원래 뷔페 가면 디저트 먹고 나서, 몇 접시 더 먹지 않아요? (웃음)
최경식: 아, 그럼 오히려 현실적인 건가? (웃음) 각 자음에 맞는 음식들을 찾느라 어려웠지만, 반대로 좋은 점도 하나 있더라고요.
어떤 건가요?
최경식: ‘ㄹ’을 표현할 단어가 많았어요. 제가 그림책 모임에서 ㄱㄴㄷ 그림책을 주제로 발제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작가들이 호소했던 어려움이 ‘ㄹ’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거였어요. 보통 ㄱㄴㄷ 그림책을 보면 “룰루랄라, 랄랄라” 같은 의성어를 넣거나 “우리, 다리미”처럼 뒤의 음절로 ‘ㄹ’을 맞춰요. 두음법칙 때문에 외래어가 아니면 ‘ㄹ’로 시작하는 단어가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음식은 그런 제약에서 좀 자유로웠어요.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음식은 무엇인가요?
최경식: 너비아니요. 뚜렷한 특징 없이 네모 반듯하게 구운 고기 요리라서 표현하기가 어려웠어요. 반대로 제일 쉬웠던 음식은 랍스터였고요. 사실 코로나19가 심해지는 바람에 식당을 가기가 어려워서 음식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힘든 점이 많았어요. 사진을 보고 그리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어쩔 수 없이 여러 각도에서 찍힌 사진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서 보며 작업을 했어요. 음식 그림은 광택을 잘 표현하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박정섭: 너비아니를 다른 음식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최경식: 그럼 음악도 바꿔 달라고 해야 하잖아요. (웃음) 민폐 끼칠 수 없어서 그림을 계속 수정했죠.
이 책에는 “둘째에게 선물하고픈 아빠의 마음을 담았다”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최경식: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가 8살 차이가 나는데요. 첫째를 낳았을 때만 해도 제가 지금보다 덜 바빴거든요. 그래서 아이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고, 자주 놀아줬어요. 요즘은 그때보다 일이 많아져서 늘 둘째가 일어나기 전에 작업실에 나가고, 퇴근 후에도 피곤해서 오래 놀아주지 못해요. 그게 내내 미안해서, 이번 책은 둘째에게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둘째가 정말 잘 먹거든요. 음식 그림 그리면서 아이 생각을 많이 했죠.
책을 본 아이의 반응은 어땠나요?
최경식: 노래를 계속 흥얼거려요. 그리고 “푸쉭푸쉭 방귀가” 부분을 제일 좋아했어요.
박정섭: 아이들은 방귀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웃음)
책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장면을 하나씩 꼽는다면요?
최경식: 맨 마지막 장 “화장실로 뛰어요” 부분이요. 제 책 『파란 분수』에서 아이가 욕실로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과 똑같거든요. 의도하고 그린 건 아니었는데 나중에 발견했어요. 아마 제 무의식에 있던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박정섭: 저도 같은 장면이요. ‘와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시원했어요. 여러 가지 의미로요.
최경식: 사실 이 그림 그릴 때 조금 걱정했어요. 혹시 뷔페 음식이 상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생각할까 봐요. (웃음)
두 분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최경식: 제가 건축과를 나왔는데요. 건축을 배울 때, 종합 예술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미적인 감각과 공학적인 감각이 모두 필요하니까요. 그림책도 비슷해요. 건축 같은 느낌이 있죠. 그래서 작업을 할 땐 어려운데, 마치고 나면 뿌듯함이 정말 커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작업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예요. 보통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2~3년 정도 걸리니까, 먹고살려면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죠. 그래서 늘 그림책 작업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어서 오세요! ㄱㄴㄷ 뷔페』는 처음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부터 출간까지 딱 1년이 걸렸어요. 제 책 중에 제일 빨리 나온 거예요.
박정섭: 저에게 그림책은 음식 같아요. 저는 요리를 하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몸에 나쁜 음식은 단순히 배만 부르지만 좋은 음식은 영양소가 골고루 있잖아요. 그림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좋은 그림책은 보고 또 봐도 볼 때마다 계속 새로운 걸 느끼게 되죠. 또 그림책 작업을 할 땐 요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정말 요리를 잘하는 고수들은 몇 가지 재료만으로도 맛을 내잖아요. 그런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요. 내가 하나씩 그림책을 펴낼 때마다 어떤 메뉴가 완성되는 것 같죠. 그래서 더 어렵고요.
요즘 그림책 식당은 어떻게 운영하고 계세요?
박정섭: 영등포 그림책 식당은 내년 봄에 정리하고, 강원도로 내려갈 예정이에요. 거기서 그림책 식당을 다시 오픈하려고요. 게스트하우스와 연계해서 운영할 생각인데요. 내려와서 바다도 보고, 휴식도 하고, 그림책도 보고 가시면 좋을 공간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음식들 중 오늘 저녁에 먹고 싶은 걸 하나씩 골라주세요.
박정섭: 저는 초밥이요. 한때 초밥 요리사가 되고 싶었는데 취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만둔 적이 있어요. 초밥을 만들려면 생선을 잘 죽여야 하더라고요. 맛있는 초밥의 뒤에는 살아있는 생선을 빨리 죽이는 과정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비록 요리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초밥은 여전히 좋아해요. 오늘은 초밥을 먹고 싶네요.(웃음)
최경식: 저는 스테이크요.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원래 ‘ㅅ’에는 메인 요리로 스테이크 하나만 넣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커다란 스테이크를 온 가족이 나눠 먹는 모습으로요.
박정섭: 만약 그랬다면 노래도 바뀌었겠네요. 이렇게 해야 하나? “난 스테이크~ 아빤 미디엄~” (일동 웃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최경식: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뷔페를 거의 못 가잖아요. 그림책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고, 대리만족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박정섭: 음악을 들으면서 이 책을 읽으면 정말 배가 고프거든요. 식사하기 전에 한 번씩 노래를 들으면 입맛이 돌면서 건강이 좋아질 거예요. (웃음) 편하고, 즐겁게 노래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최경식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건축을 공부해서 그런지 딱딱한 그림을 잘 그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말랑한 그림을 그려 보려고 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파란 분수』, 그린 책으로는 『나는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 『도시의 나무 친구들』이 있습니다. |
*박정섭 어릴 적 산만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살아왔지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상상력의 크기가 산만 하단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 상상력을 주위 사람들과 즐겁게 나누며 늙어 가고 싶답니다. 그림책 《검은 강아지》 《그림책 쿠킹박스》 《도둑을 잡아라》 《놀자》 《감기 걸린 물고기》 《짝꿍》을 지었고, 동시를 쓰고 그린 《똥시집》이 있습니다. 《토선생 거선생》의 이야기를 쓰고, 《담배 피우는 엄마》 《콧구멍 왕자》 《우리 반 욕킬러》 《으랏차차 뚱보클럽》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금은 서울 문래동에서 그림책을 맛보는 그림책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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