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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여성영화인, 우리 존재는 우리가 증명해야 (G. 심재명 영화제작자)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49회)『영화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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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 우리를 증명하지 않으면 누가 말해주리’ 이런 생각을 옛날부터 하게 됐죠. 그래서 애써서 이렇게 책을 내게 됐고요. 그런 것들이 영화하는 여자들끼리의 연대감이나 자긍심, 자부심 같은 걸 불러일으킬 수 있겠더라고요.(2020.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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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성끼리의 연대가 꼭 이야기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국 영화 산업 안에서 소수자인 여성들이 함께 무엇을 했다. 예를 들어 ‘모임을 꾸렸다, 든든을 시작했다, 어떤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여성 영화인들과 관련된 사건, 결과 같은 것들이 잊히지 않고,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폄훼되지 않고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중략) 결국은 우리가 여성 영화인의 활약을 계속 발굴하고,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 영화인들이 함께 연대해서 만들어낸 영화, 단체, 사건들이 역사 속에서 존중받는 것이 저의 바람이죠. 

책 『영화하는 여자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심재명 영화제작자 편>

오늘 모신 분은 한국영화의 황금기에 그 선두에 계셨던 분입니다. 지금까지도 ‘믿고 보는 영화’를 만들고 계신 든든한 여성 영화인이죠.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 <카트> 등 주옥같은 영화들이 이 분을 거쳐 우리에게 왔죠.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님입니다.

김하나 : 이 책을 제가 오늘 실체로는 처음 보고요. PDF로 모니터를 통해서 봤는데 ‘인터뷰집이니까 서너 시간이면 읽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가 밤을 샜습니다. 스무 명의 인터뷰라는 것을 내가 왜 몰랐을까(웃음)...

심재명 : 아, 재밌어서가 아니고 길어서...

김하나 : 재밌어서도 맞습니다(웃음).

심재명 : 감사합니다. 

김하나 : 이번에는 대표님이 저자로 나오신 게 아니라 인터뷰이 중에 한 명으로 대표로 나오신 건데요. 책 제목은 『영화하는 여자들』이고, 지으신 두 분은 주진숙, 이순진. 이 두 분이 인터뷰어인 거죠. 이렇게 판형도 크고 400페이지에 가까운 엄청난 인터뷰집을 내어야겠다고 생각하신 배경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심재명 : 저희가 2000년도에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을 만들었는데요. 그때 주축이 되신 임순례 감독님, 한국영상자료원의 주진숙 원장님, 저, 그 외 몇 분들이 모임을 만들고 바로 2001년에 여성문화예술기획이라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주도하시는 쪽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여성영화인모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이 같이 『여성영화인사전』을 냈었어요. 50년의 한국영화 역사와 더불어 여성영화인들을 조명하는 책이었는데, 사실 저도 그 책을 보고 굉장히 많이 공부가 됐었어요. 지금은 절판이 됐는데. 이후에 한 20년이 흐르고 올해가 여성영화인모임이 20주년이 되거든요. 이때를 기해서 두 번째 여성영화인사전을 만들면 어떨까 하다가, 사전 작업이라는 건 1~2년 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여성영화인사전』이 90년대 후반까지로 끝냈는데 ‘그러면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여성영화인의 역사와 그들의 모습과 삶을 인터뷰책으로 내면 어떨까’라는 기획을 고민하던 차에 사계절 출판사를 만나서 이 책을 내게 됐습니다. 

김하나 : 여성영화인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요?

심재명 : 저희들이 정리를 안 하면 아무도 정리 안 해주니까(웃음). 

김하나 : 잊혀지니까. 

심재명 : 네.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것이 다 남성 중심의 역사이고 남성들이 쓰고. ‘우리 스스로 우리를 증명하지 않으면 누가 말해주리’ 이런 생각을 옛날부터 하게 됐죠. 그래서 애써서 이렇게 책을 내게 됐고요. 그런 것들이 영화하는 여자들끼리의 연대감이나 자긍심, 자부심 같은 걸 불러일으킬 수 있겠더라고요.

김하나 : 요즘은 문학계 안에서도 ‘나의 계보가 잊혀진 이러저러한 여성들에게 있다’는 선언이라든가 찾아가는 움직임, 다시 발굴해서 기록하려는 움직임 같은 게 활발하게 많이 있는데요. 그래서 이런 책이 나와야지 싶었는데, 이미 그런 작업을 아주 오랫동안 해 오신 거더라고요. 영화판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정말 마초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요. 이 책이 30년을 다루고 있잖아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2000년에서 2010년, 2010년부터 현재까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일 처음에 심재명 대표님의 인터뷰가 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지켜보고 계신 거잖아요. 굉장히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드실 것 같아요. 

심재명 : 그런데 영화 쪽만 남성 중심적이라고 생각 안 하고 한국사회의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영화계 분들은 굉장히 생각이 유연한 편이고 성향도 진보적인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들은 계속 어느 곳에서나 소수자이고 약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영화계만 폄훼해서 여성들이 굉장히 위축돼 있다, 소수자다, 영향력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지 않고, 그건 한국사회의 여러 분야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죠. 그리고 저는 80년대 후반에 영화사에 들어가서, 그때 저는 ‘미스 심’이라고 불렸어요. 

김하나 : 서울극장 기획실에서 일하는 미스 심. 

심재명 : 네. 그리고 <반칙왕>에 나왔던 송강호 씨처럼 어떤 임원 분한테는 헤드록도 당하고. 그러면서도 그걸 장난으로 그냥...

김하나 : 남성 임원으로부터.

심재명 : 그렇죠. 그러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고요. 그런데 할리우드도 마찬가지예요. 할리우드에서도 여성 감독들의 숫자는 항상 10~15%, 많아봤자 제작자는 20% 정도 되는데, 그건 한국영화계도 마찬가지거든요. 전반적으로 영화 산업 안에서 여성의 숫자나 위치는 굉장히 소수자의 위치에 있었죠. 

김하나 : (이 책이) 여성영화인모임 이전에 있었던 작은 모임을 기리면서 시작을 하더라고요. 80년대에 이해윤, 이경자 님이 주축으로 만들어졌던 작은 ‘영희회’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심재명 : 네, ‘영화하는 계집들’.

김하나 : 아름다운 게 여성영화인모임에서 2001년에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만들면서 최초의 여성 편집감독 이경자 님과 이해윤 님에게 공로상을 드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연대의 한 장면으로 아주 뭉클하더라고요. 

심재명 : 네. 가장 먼저 기려야 할 분들을 고민해서 감사의 마음으로 상을 드렸던 셈이죠. 

김하나 : 처음에 영화판으로 뛰어드신 건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심재명 :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버지 주머니에서 몰래 돈 훔쳐가지고 극장 가서 영화 보고(웃음)...

김하나 : 되게 나쁜 짓 많이 하셨네요(웃음).

심재명 : 매일 밤마다 동전 꺼내서 그 돈 가지고 스카라극장, 명보극장, 대한극장 이런 데 가서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런 영화 보고. 그리고 <주말의 명화> 세대였고요.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열망이 절실했어요. 영화 보고 일기장에 감상문 쓰고. 지금도 40년 전 일기장이 아직도 있는데 막연하게 영화를 꿈꿨었죠. 여성영화인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영화를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제가 82학번인데 대학 들어갈 때만 해도 영화과는 조금 특별한 친구가 들어가는 곳이라고 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래서 국어국문학과를 들어갔으나 지금은 사라진, 많은 시네필들의 추억의 장소인 프랑스 문화원에 드나들면서 프랑스 영화들 보고...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꿈꾸다가 잠깐 카피라이터가 돼볼까 하다가 광고대행사에는 번번이 떨어지고. 그러면서 작은 출판사에 한 4개월 근무하다가 서울극장에서 영화 광고 카피라이터를 뽑는다는 공채 공고를 보고 ‘와, 카피도 쓰고 영화 일도 할 수 있겠다’ 해서 제 생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몰래 반차를 내고 가서 면접을 보고 영화사에 입사를 하게 됐습니다. 

김하나 : 어린 시절에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이 책의 제목도 『영화하는 여자들』이잖아요. 심지어 ‘영화’와 ‘하는’을 붙여서 ‘영화하다’를 한 단어로 쓴 것인데. 새삼스럽게 이 책을 보면서 영화를 하는 데에는 진짜 많은 인력이 동원된다, 정말 많은 분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히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을 때는 그 안에서 정확히 내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려웠겠어요. 

심재명 : 중학생 때 반에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발표하는 시간 같은 때에는 영화감독이라고 했거든요. 그때는 영화는 영화감독, 영화배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작자라는 직업도 있고 마케터라는 직업도 있고 분야가 굉장히 세분화돼 있다는 건 뒤늦게 알았죠. 그냥 청소년 시절에는 영화가 하고 싶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주말의 명화> 보고 월요일에 학교 가서 친구들 앞에서 배우의 연기나 어떤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면, 친구들이 맨날 구석에 앉아 있다가 영화 얘기할 때만 눈 반짝반짝한다고 그랬었죠(웃음). 저는 다행히 꿈꿨던 일을 업으로 삼게 되는 행운의 20대를 보낸 셈이죠. 사실 영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김하나 : 제작자가 되려고 하신 건 아니었고, 영화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영화계 언저리에서 일을 하시게 되었고, 명기획이 되고 명필름이 되었어요. 어떤 때에 ‘내가 제작자 일을 잘하는 것 같다’ 또는 ‘이 일이 점점 재밌는 것 같다’ 이런 걸 느끼셨어요?

심재명 : 사실 어렸을 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집에 돈이 없어서 화실을 못 보내고, 그러다 보니까 미대를 못 가고,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이 가난했던 게 감사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다음에 미술사학이나 평론을 공부하고 싶은데 대학원을 가려고 했더니 돈 없어서 또 못 가고, 그러다가 직장을 택하다 보니까 좋아했던 영화 일을 하게 된 거고. 처음부터 제작자가 꿈은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영화 일하면서 제 입에 풀칠하고 어머니 용돈도 드릴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미친 듯이 열심히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기회가 온 것이죠. 그래서 영화 홍보 마케팅 회사 명기획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결혼과 함께 제작사를 차리고... 제작자가 된 단계나 순서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거지, 원래부터 제작자가 꿈은 아니었고요. 하지만 미술을 좋아했고,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영화는 종합예술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제작자가 된 셈이죠.

김하나 : 영화계에 있는 수많은 직종 중에 다른 것보다 제작이 나한테 잘 맞는 것 같아, 나 제작 조금 잘하는 것 같아, 재밌는 것 같아, 이런 시점은 언제쯤이었어요?

심재명 : 글쎄요. 결국 영화 일이라는 게 작가나 감독만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제작자는 그 창의적인 사람들을 엮어주는 거간꾼 역할도 하고, 또 굉장히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 비즈니스의 파이낸싱 같은 일들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창의적인 역할들을 해야 돼요. 이 시나리오가 좋은 이야기인지 아닌지, 우리가 지금 만들고자 하는 소재나 주제가 트렌드에 맞는지, 이 시대의 흐름과 맞는지, 이런 것들을 판단하는 능력들은 굉장히 창의적인 안목이 있어야 되거든요. 창의적인 사람을 발견하고 엮어주고 또 스스로 창의적인 판단을 하고, 그것이 제작자의 역할이에요. 제작자는 창의적인 측면과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같이 갖고 있으면 만능인데, 그것을 다 만능으로 갖고 있는 분들은 없고, 다 협업을 통해서 자기 능력이 어떤 분들을 통해서 보완이 되기도 하고 대체되기도 하고 그렇죠. 



영화하는 여자들
영화하는 여자들
(사)여성영화인모임 기획 | 주진숙,이순진 저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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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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