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 “팔리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블로그에 오랫동안 글을 쓰다 보니까 솔직하게 쓰는 게 버릇이 됐는데요. 이렇게 써도 될지, 편집자님께 괜찮다고 물었는데 문제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2020. 07. 28)
‘출세욕’을 주제로 에세이를 쓴 작가라니. 대한민국 제1호가 아닐까. 편집자로부터 “작가님, 출세하고 싶잖아요”라는 말을 듣고 덜컥, 여섯 번째 책을 계약한 이주윤 작가.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출세욕에 가려진 집필욕을 발견하게 한 책이었다. 글을 왜 쓰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책을 잘 팔기 위해 저자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등 독보적인 솔직함으로 무장한 글을 읽다 보면, 독자는 궁금증이 인다. “작가님, 이렇게 정직해도 되나요?” 쉬운 일도 어렵게 한다는, 수다는 ‘종이’에 떠는 이주윤 작가를 만났다.
‘드렁큰에디터’에서 출간하는 ‘먼슬리 에세이’ 두 번째 책이죠. 어떻게 기획된 책인가요?
전작이 잘 안 팔려서 의욕을 많이 잃은 상태였어요. 인스타그램 계정(@leeeeeeejune)에 만화를 종종 올렸는데, 편집자 분이 보시고는 연락이 왔어요. 그때 올린 만화가 아마 나는 열심히 쓴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책이 안 팔리냐고 하소연한 이야기였어요.
‘작가의 출세욕’을 써보자는 제안, 망설이지 않았나요?
별로 고민을 안 했어요. (웃음) 편집자님을 만난 자리에서 써보겠다고 했죠. 편집자님을 처음 딱 본 순간, 신뢰감을 느꼈어요. 책을 잘 만들어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후로 성인 단행본으로는 네 번째 책이에요. 집필은 어떠셨나요? 굉장히 빠르게 쓰셨을 것도 같은데요.
6개월쯤 걸린 것 같아요. 독자분들은 재밌게 썼을 거라고 하시는데, 즐기면서 쓰진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고 부담이 좀 있어서 힘들게 썼어요. 왜냐면 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편집도 해야 하고 마케팅도 필요하고 인쇄도 해야 하고. 이 한 권의 책에 많은 사람의 노동이 들어가잖아요. 대충 써서 넘기면 안 되는 일이니까 책을 만들 때는 늘 부담이 생겨요. 이번 책은 편집자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한 꼭지씩 글을 쓰면 구글드라이브에 올렸거든요. 처음부터 의견을 맞춰 가는 게 좋으니까 피드백을 받으면서 작업했어요. 의견을 많이 주셔서 좋았고요.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인기 있는 작가들의 실명이 그대로 등장해서요. “그러나 독자들은 여전히 김애란, 임경선, 이슬아만 좋아했다.”(11쪽) 보통의 저자들이 이렇게 실명을 언급하는 경우는 무척 드무니까요.
블로그에 오랫동안 글을 쓰다 보니까 솔직하게 쓰는 게 버릇이 됐는데요. 이렇게 써도 될지, 편집자님께 괜찮다고 물었는데 문제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책의 타이틀이 ‘자학과 자뻑을 오가는 혼란한 작가 생활’입니다. 아마도 글을 쓰는 많은 작가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이 출간될 무렵 신문사에 칼럼 연재를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원고를 찬찬히 다듬을 여유가 있는 단행본과는 달리, 신문사에 원고를 한번 넘기면 그걸로 끝, 며칠 후면 전국 방방곡곡에 뿌려지잖아요. 여러 번 경험한 일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발가벗겨진 채 거리로 내쫓긴 느낌이 들어요. 더 잘 썼어야 하는데, 이것밖에 못 쓰다니 너무 분하고 창피하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신문을 죄다 수거해서 불살라버리고 싶다, 자학에 자학을 거듭하는 요즘이에요. 글을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져요. 앞으로 책을 많이 파는 작가가 된다고 해도 자학을 멈추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종종 자뻑하기도 해요. ‘내가 잘 쓰니까 신문 연재할 기회도 얻은 거야. 안 그래?’ 속으로만 되뇌는 말을 직접 하니까 너무 재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웃음)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희곡, 에세이 등을 공부하고 방송작가교육원도 수료하시고. 그런데 간호사로 일하시기도 하셨다고요.
일하다가 쉬기도 해서 간호사 경력은 4년 정도예요. 책에도 썼지만 정말 특이한 케이스죠. 제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간호대학교에 바로 입학했거든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고요. 응급실에도 있었다가 노인병원에도 있었고. 제가 31살 때부터 직장을 안 다니고 글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경제적인 상황은 좋지 않았죠. 그러다가 일간지 연재를 하면서 주기적으로 일감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단행본 작업을 하고 삽화도 그리면서 전업 작가가 됐죠.
글쓰기 책을 많이 읽으셨다고요. 글을 쓸 때, 꼭 지키는 것이 있나요?
흐름이 끊기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이해가 안돼서 “무슨 말이야?” 하고 위에서부터 다시 읽을 때가 있잖아요. 내가 딴 생각을 했나 싶어서 다시 읽는데도 이해가 안 될 때, 그건 저자가 독자를 배려하지 못한 것 같아요. 흐름이 잘 이어지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출세욕’은 어떻게 정의하면 될까요?
글을 쓰려면 누군가 기획을 줘야 하잖아요. 투고를 하더라도 누군가의 평가가 필요하죠. 저에게 출세욕이란, 누군가가 출간 제안을 해주는 일? 사실 그 정도죠.
인스타툰으로 책 홍보를 엄청나게 하고 있어요. 독자들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받는 일은 어떤가요?
음. 어쨌든 저도 책 내용처럼 출세를 해야 하니까요. (웃음) 어떻게 보면 영업을 하는 셈인데, 책 홍보만 올리면 반감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짧은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원래 저는 독자분들이랑 소통하고 그러는 걸, 잘 못하고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재밌어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두 시간 정도 안 나타나면, 편집자님이 댓글로 저를 막 소환하세요. 행방불명 신고할 거라고. (웃음) 우선 ‘먼슬리 에세이’ 3권이 나올 때까지는 열심히 해보려고요.
작가들이 독자 리뷰를 꼼꼼히 본다는 건, 독자들에게도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 리뷰를 살펴보면 일반 독자보다 출판 관계자가 이 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런데 이전에 다른 주제로 책을 냈을 때도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독자들은 작가님 책 몰라도 편집자들은 다 알아요!” 그 말이 고맙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씁쓸하더라고요. 독자 여러분은 여전히 저를 모르시겠지만, 그래서 제가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지 역시 모르시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어요. 저는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오락을 즐기듯 읽을 수 있을 거라 자부해요. 그래서 ‘일 년에 책 한 권쯤 읽는 게 목표인데 도무지 읽기 싫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 제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나요?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는데 저에게 보여주고 자문을 받고 싶다는 50대 중년 남성의 리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가족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점점 출간 욕심이 일어났다고 해요. 그런데 제 책을 읽다가 ‘독자에게 책을 팔려면 돈값 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으신 모양이에요. 과연 본인의 글이 돈값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거죠. 사실 리뷰 자체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말 제 메일로 200쪽 가량의 원고를 보내 오셔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요. 제가 누군가의 글을 평가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성심성의껏 의견을 드렸어요. 감사했어요.
돈값, 솔직히 중요하죠. 에세이에서 ‘솔직함’이 중요한 것처럼요.
출판계에 갓 입문한 저에게 어느 출판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주윤 씨 글은 솔직해서 좋아요. 나 같으면 쪽팔려서 그렇게까지는 못 쓸 것 같거든.” 저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작가들은 거짓으로 글을 쓴다는 건가? 그럼 독자들은 남이 하는 거짓말을 돈 주고 사서 읽는 건가? 그런데 계속해서 글을 쓰다 보니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는 편이 훨씬 쉽고 간편하고 있어 보이기까지 하더라고요. 저 역시 거짓으로 글을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설득해요. 독자에게 거짓말을 파는 건 작가가 아닌 사기꾼이 할 짓이라고요.
잘 팔리는 것과 무관하게 책을 써도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나요?
제 글 앞에 항상 따라붙는 게 ‘재기 발랄’이거든요. 매번 발랄할 수는 없기도 하고, 가끔은 우울하고 진지한 글도 쓰고 싶어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요.
수입이 적지 않은, 전업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뭐라 딱히 할 말은 없는데요. 원래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자?! 굳이 말한다면, 저는 무조건 전업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다른 일을 같이 하면서 해도 되니까요.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 글로 수입이 너무 적으면 다른 일을 해야겠죠.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인생의 경험은 쌓이는 거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흥미를 잃지 않는 일이에요.
혹시 롤 모델이 있나요?
마스다 미리 작가가 생각나요. 모든 책을 읽은 건 아니라 글의 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다작을 하시면서도 인기가 있고, 그림과 글로 먹고 살잖아요. 저도 다작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출판사에서는 ‘먼슬리 에세이’ 시리즈를 계속 출간할 텐데요. 라인업에 올라온 10명의 작가 중에 1등을 할 자신이 있나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요. 10명 중에 1등하고 싶어요. 다른 책으로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중에서는 1등을 하고 싶어요. 아, 기대되는 저자는 석윤이 디자이너님이에요. 아이덴티티에 관해 쓰실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제가 아무래도 미술을 전공했으니까, 관심이 많이 가네요. 편집자님이 제 책은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을 거라고 했어요. 믿어 봐야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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