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 “잊었던 추억들을 새로 꺼내 드려요”
4컷 만화 에세이집 『동생이 생기는 기분』 이수희 저자 인터뷰
대부분 자신의 형제에 대해서 써 주시는데 일화들이 소소하면서 아름답고 뭉클해요. 툴툴거리는 부분까지도 예쁘게 느껴져서 ‘내 책을 보는 독자의 기분도 이런가?’ 싶더라고요. (2020.07.21)
“느린 시계가 멈춘 시계는 아니라는 걸 이제 알 것 같다. 지금도 무언가에 도전하고 고민하고 있을 동생에게 너는 여전히 대단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걷고 뛰고 쓰고 말하는 모든 과정이 소중했던 것처럼. 네가 목 가누기를 해냈던 그날처럼.”
-본문에서
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너무도 당연한 존재, 동생. 동생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볼 일이 좀처럼 없는 것은, 굳이 시간을 내어 생각하지 않아도 늘 눈앞에 있기 때문일 테다. 여전히 부딪치고, 싸우고, 서로를 향해 눈을 흘기는 자매 사이지만, 동생 몰래 동생에 대해 이토록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 낸 언니가 있다.
이수희 작가는 동생의 모든 ‘첫’ 순간들부터 자라 오는 과정들을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한 4컷 만화로 그려 냈다. 언니는 스물아홉 살, 동생은 열아홉 살이 된 지금 그때의 시간을 새롭게 되새겨 보는 애틋한 마음은 에세이로 담담하게 써냈다. 『동생이 생기는 기분』은 읽는 동안 저마다의 오랜 추억들을 마구 되살아나도록 만드는 신기한 힘을 가진 책이다. 잊었던 추억들을 새로 선물해 주는 책, 다음은 이수희 작가와의 7문 7답이다.
『동생이 생기는 기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생 수진을 생각하며 써 내려간 책이라는 점이 특별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출간 후 동생분의 반응이 가장 궁금합니다. 출간 후에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요?
다들 이 점을 궁금해하실 텐데 사실 동생이랑 이렇다 할 대화는 안 했어요. 그냥 “거실에 책 있다, 봐라.” 하고 걔는 “응.” 하고는, 출간하고 며칠 뒤에는 “언니 이제 백수야?” 묻더라고요. 초교 때 혹시 빼고 싶은 부분 있으면 말해 달라고 교정지를 보여 주기는 했는데 그때도 “잘 봤어.”가 끝이었어요. 저희 가족이 원래 이래요.
그런데 그 이후로 동생에게 전화가 몇 번 왔어요. 아마 ‘우리 통화하자.’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감동적인 후기를 말씀드리고 싶지만 저희 자매는 어쩜 매번 이런지……. 그때마다 제가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길게 하지 못했고, 동생이 수험생이라 제가 먼저 전화 걸기가 애매하게 됐어요. 한마디로 저희는 여전히 책 속 모습 그대로입니다.
‘브런치북 공모전’을 통해 데뷔를 하셨어요. 출간 전까지 어떤 준비와 생활을 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오래도록 생각과 준비를 해 오신 것인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예비 작가분들께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해서 작가를 해야 하나, 화가를 해야 하나 고민하곤 했어요. 이것도 결국 동생 얘기인데…… 동생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어느 날 깨달은 거예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완벽한 직업이 여기 있네?’ 만화도 좋아했으니까 만화가도 꿈꿨죠. 무엇보다 책에 들어가는 그림, 인쇄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미술에 전념했어요. 미대 진학에 실패하고 이런저런 방황 끝에 그림 작가라는 꿈의 초심을 다시 잡고 만든 게 『동생이 생기는 기분』이에요.
작가가 되기 위해 본격적인 무언가를 계속 준비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준비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일기를 써 왔고 독서를 쉬지 않았어요. 책이나 영화를 본 뒤에는 리뷰를 진득하게 써 보기도 했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이게 나의 밑거름이 되어 줄 거라고 나는 더욱 입체적인 사람이 되어 갈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생이 생기는 기분』을 원래 독립 출판으로 먼저 출간하셨다고요. 처음에는 4컷 만화 40여 컷이었던 작은 책이 지금은 268페이지의 만화 에세이집으로 확대된 것인데요. 독립 출판으로 혼자 출간 작업을 진행했을 때와 어떤 것이 같고 또 어떤 것이 다르게 느껴졌는지 궁금해요.
독립출판은 기성출판의 미니어처 같아요.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를 다 혼자서 해야 하는 건데 그걸 내 능력만큼 간소화시키죠. 어설프더라도 그 자체가 매력이 되어 버리는 재미있는 시장이에요. 독립출판물 구매자들은 그러한 어설픔 속에서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 소유하려는 특별한 감상자고요.
반면 기성출판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유진아 디자이너님이 담당으로 배정되었을 때는 살짝 황홀하기까지 했어요. ‘진짜 북디자이너잖아!’ 이렇게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만큼 어설픔을 좋게 봐주는 시장이 아니죠. 저 역시 서점을 자주 가는 사람이라 갖가지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 중에서도 높은 완성도의 책을 고민 끝에 사기 때문에 알아요. 그래서 부담되었고 특히 그림 부분에서 저를 많이 의심했던 것 같아요.
작업하는 모습은 비슷해요. 혼자 멍하니 기억을 떠올리고 구상하고 쓰고 그리다가 괜히 질질 짜고 실실 웃고 ‘와! 난 천재다!’ 하다가 ‘별론가? 천재 아닌가?’ 하고 지우고……. 똑같아요. 제가 똑같으니까.
동생이 목을 처음 가누던 순간, 동생이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처럼 사소한 순간들이 그려져 있는 덕분인지 책을 읽은 뒤 각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독자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 있다면요?
저는 제가 출간 후에 리뷰는 안 찾아볼 줄 알았어요. 하얗게 불태웠기 때문에. 지금은 독자 반응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됐어요. 소크라테스가 저를 보면 혀를 찰 거예요. 윤리 시간에 뭐 했니, 너 자신을 알라고 했잖니!
대부분 자신의 형제에 대해서 써 주시는데 일화들이 소소하면서 아름답고 뭉클해요. 툴툴거리는 부분까지도 예쁘게 느껴져서 ‘내 책을 보는 독자의 기분도 이런가?’ 싶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민음사에서 어릴 적 사진을 올리는 이벤트를 해 주셨어요. 귀여운 필름 사진들이 어찌나 많던지! 개인적인 내용의 책이다 보니 민망한 마음도 있었는데 독자분들이 경험을 나눠 주시니까 중화되고 공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현재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가의 말에 대한 반응이었어요. 마지막에 “어떤 기분이셨나요?”라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거기서부터 일상에서 자신의 기분에 대해 스스로 살피고 있는지 반문해 보셨다는 감상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그렇게 써 놓고 ‘나는 어떻게 하고 있지?’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책은 일방적인 소통의 도구가 아니었다는 걸, 독자도 작가를 감화시킨다는 걸 배웠어요.
『동생이 생기는 기분』은 4컷 만화와 에세이를 함께 엮어낸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마냥 귀엽고 몽글몽글한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펴 보니 애틋하고 뭉클해질 때가 많았다.’는 감상이 많았어요. 기억을 만화로 표현할 때와 글로 표현할 때가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정기현 편집자님이 그 부분을 짚어 주셨어요. “만화만 보면 귀엽고 아기자기한데 글과 같이 보면 묘한 감동이 있다.” 그게 이 책의 강점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만화는 1년 전에 그려 놓은 독립서적이고 공모 때 글을 추가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재집필 기간에도 글과 만화는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했어요. 그림은 즐겁고 유치한 일화를 아이로서 보여 준다면, 글은 ‘그런 거였구나.’하는 깨달음을 어른으로서 쓴 거예요. 글 작업에서 만화 작업으로 전환하는 게 힘들었어요. 반성 모드에서 유쾌하고 귀여운 마음이 되어야 하니까 동시에 진행되지 않더라고요.
출간하고 2주 정도 되었을 때 책을 정독해 봤는데 그제야 편집자님이 말씀하신 글과 만화의 앙상블을 알겠더라고요. 마라샹궈와 꿔바로우 같은 조합이랄까…… 작가라고 자기 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편집자가 필요하고요.
책에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봤던 것처럼, 또 시간이 흘러 지금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으신가요?
저는 행복하고 기쁠 때 자신을 관조적으로 바라봐요. ‘목 가누다’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식이죠. 이 순간을 기억해야지. 그래서 대상 당선 이후의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싶고 기억할 것 같아요.
근데 그보다 이상하게 당선 직전의 제가 자주 생각나요. 창작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걸 그만두려고 했어요. 딱 1년만 더 해 보고 그때도 성과가 없으면 취미로 남기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미워하지 못하도록. 제 나름대로 저를 지키기 위한 약속이었어요.
브런치에서 공모전에 참여한 10개 출판사 편집자를 인터뷰한 글이 있는데 거기서 민음사 한국문학팀 박혜진 편집자님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세상에 남겨져야 하는 이야기가 책이 된다.” 그 문장을 곱씹으며 세상에 남겨질 만한 이야기를 썼다는 자신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푼 상태가 겁이 나고 질려 놔 버린 순간 카카오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친구에게 전화해 울면서 정신없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데 자꾸 다들 아니라고 하니까 아니구나 했어.”
작가의 말 마지막 부분에서 이 책을 읽었을 독자분들은 어떤 기분이셨는지 물어 주셨어요. ‘동생이 생기는 기분’이라는 제목처럼 동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지만, 동생과 함께 자라온 ‘나’의 기록이기도 한 만큼 나의 감정의 변화, 내가 가졌던 꿈, 가족에 대한 생각들이 고루 드러나 있어서 풍성하게 읽어 낼 수 있었어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독자분들에게, 어떤 기분으로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미리 전해 본다면요?
요즘 사회가 흉흉하다 보니 뉴스 보는 것 자체가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강타하는 스트레스예요.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에는 책임감도 있지만 저희 강아지 두부와 산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과 강아지가 교감할 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높아진대요. 옥시토신은 보호받고 사랑받고 신뢰할 때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제 책이 마냥 즐거운 내용만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강아지와의 산책처럼 잠시라도 옥시토신이 되어 드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동생이 생기는 기분』이라는 책과 함께 산책하며 쉬어 가시길 바랍니다. 스스로의 기분을 돌보면서요.
* 이수희 1992년생. 외동으로 10년, 수진의 언니로 19년을 살았다. 그림 그리기, 독서, 넷플릭스 시청, 아르바이트로 꽉 찬 일상을 통해 이런저런 세상의 모습들을 이렇게 저렇게 관찰 중이다. 강아지 두부와 산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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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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