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청소부 김완 “죽음이 왔다 간 자리, 사연이 남았다”
『죽은 자의 집 청소』
죽음이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죽음을 잘 알아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거든요. 삶과 맞대고 있는 죽음에 대해 성찰한다면, 삶도 더 뚜렷해지고요. (2020.07.14)
무거운 인터뷰를 예상했다. 마치 우리가 죽음을 무겁고 엄숙하게 대하듯이. 그러나 일상적으로 죽음의 흔적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 김완 작가는 어두운 곳에 묻어둘 수만은 없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고 쓰레기 집을 깨끗이 비워내면서 그는 판단을 유보하게 되었다고 했다. 산 자인 우리는 ‘좋고 나쁨’을 덧씌우지만, 죽음의 자리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정들이 남겨져 있다고. “특이한 직업인데, 힘들지 않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김완 작가에게 전해진 수많은 감사의 메시지들에서 이미 일하는 보람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김완 작가는 죽음의 흔적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다. 대학에서는 시를 전공했고, 출판과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다 전업 작가로 살고자 30대 후반에 산골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일본에 머물며 취재와 집필을 하다 동일본대지진 후 귀국하여 특수청소 서비스회사 ‘하드웍스’를 설립하여 일하고 있다. 에세이집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통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죽음 현장에 드러난 인간의 삶과 존재를 기록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이야기를 쓰셨어요. 어떻게 기록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개인적인 동기로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블로그에 일이 끝난 후의 소회를 남기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홍보 차원이었거든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서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요청이 없었다면, 글로 남길 생각을 안 했을 거고요.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됐다는 독자평이 많았어요.
감사하게도 독자분들의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다양한 사연을 읽고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한 독자분은 사회복지사인데 제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어서, 자살 위험이 있는 환자를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됐다고 해요. 어떤 분들에게는 제가 ‘불행의 끝판왕’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나 봐요. 힘든 일을 하는 사람도 이렇게 책을 내는 걸 보니 희망을 갖고 살아야겠다 하시는 분도 있고요. 독자분들이 메시지를 보내면, 저는 2배 길이로 답장합니다. (웃음) 그렇게 소통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특수청소는 주로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일입니다. 범죄나 자살 현장 등을 맞닥뜨리기도 하는데요.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청소 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유품을 수습하는 일이나 쓰레기가 가득한 집처럼 점점 하기 곤란한 청소까지 의뢰가 들어왔죠. 자연스럽게 특수청소 일까지 하다 보니,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시를 전공하고, 출판,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셨다고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출판 일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보다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에 가까웠죠. 한동안 유령 작가로 활동하며 자기계발서, 정치인에 대한 책, 음악 리뷰 등 장르 구분 없이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오랫동안 방치된 집이지요. 청소 과정에서 예측 못 하는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혹시 모를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방진 마스크, 방독 마스크를 둘 다 가지고 들어가요. 특히 가스가 정말 위험하죠. 냉장고가 고장 나서 내부 음식물이 부패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문을 억지로 열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가 터져 나오는데 그걸 마시면 순간 어지러워져요. 그래서 냉장고를 열기 전에 방독 마스크를 꼭 착용합니다.
문장의 밀도가 높았어요. 문학적이기도 하고요.
시 쓸 때의 습관이 남아서, 글을 굉장히 많이 고치는 스타일이에요. 문장 하나를 여러 번 수정하기도 하고 문단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요. 글 하나를 끝날 때쯤이면 이미 수백 번은 읽어본 상태가 돼요. 굉장히 수고스러운 작업이지만, 습관이 돼서 힘들지는 않아요. 달리기에 ‘러너스 하이’가 있듯이,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적절한 표현을 발견했을 때는 마치 손전등을 켠 것처럼 선명해지는 기분을 느껴요. 편집 과정에서 같이 글을 수정하는 과정도 즐겁고요. 제가 편집자님을 ‘그저 빛’이라 부릅니다. (웃음)
마지막까지 고민한 원고가 있었나요?
고양이의 죽음을 다룬 ‘천국과 지옥의 문’은 끝까지 망설인 글이에요. 한 아파트에서 일곱 마리의 죽은 고양이를 치우게 되는 일화인데요. 그 사건이 제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어서 도저히 못 쓰겠더라고요. 저는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산 지 10년이 넘어서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지거든요. 그렇게 묻어뒀다가 마감할 때쯤 편집자님이 그때 쓰지 못한 원고도 세상에 내보이면 어떻겠냐고 물으셨어요. 그 말에 다시 용기를 내서 완성하게 됐죠.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상기할 수 있는 독자들을 우려하기도 했나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에필로그에 죽음에 대한 면밀한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괴로울 수 있다는 경고를 남기기도 했죠. 제 원래 의도는 죽음에 대한 기록을 통해, 우리의 삶이 좀 더 가치 있고 굳세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을 분들에게는 다시 한번 면목이 없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위급 상황에 처한 사람으로부터 청소를 의뢰하는 전화가 오면서 일이 시작되지요. 적절히 응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되도록 쓸데없는 이야기는 안 하려고 해요.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요. 전화 내용으로 의뢰자와 고인의 관계를 유추해보고 적절한 대답을 생각하죠. 사실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하기보다 상대의 ‘심정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해요. 쓰레기 집 방치 현장도 보통 자기 일이 아니라고 말하거든요.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그렇게 전하고 싶다면 그것도 진실이니까요.
일을 하면서 가장 동요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무리 감정을 차단하려 해도 돌아가신 분에게 이입되는 순간이 있죠. 특히 개인적인 취향이 저랑 비슷할 때 동요하게 돼요. 서가를 정리하는데, 저도 좋아하는 책이 꽂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마음속 버튼이 하나씩 눌리다 결국 열려 버리죠.
쓰레기로 가득 찬 집도 청소하신다고요.
네, 상상 이상으로 많아요. ‘내가 청소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이렇게 많이 나타나나?’ 할 정도로요. (웃음) 한 건물에 한 집 정도는 잡동사니로 가득 찬 집이 있을 거예요. 수많은 쓰레기 집을 봤지만, 아직도 매번 새롭게 놀랍니다. 그렇지만 섣불리 심판하지 않으려고 애쓰죠.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구나 어질러진 서랍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무질서한 상태가 집으로 확장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있나 싶어요. 알고 보면, 더럽다는 판단도 자의적이죠. 실제로 라면 봉지 하나라도 주인이 버리지 않기를 원하면, 쓰레기가 아니라 재산이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 사나 했지만, 계속 청소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청소 일에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작업이 끝난 후, 깨끗해진 방을 볼 때 해방감이 느껴져요. 현장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가벼워질 때도 있고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감사 메시지를 보내와요. 개인적인 사연을 털어놓기도 하고, 청소 이후 새 삶을 살고 있다고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해오시기도 하고요.
특수청소 종사자에 대한 편견을 체감하시나요?
보통 반응이 차별과 우대 양쪽으로 갈려요. 대단한 일을 한다는 사람도 있고, 천한 직업이라고 낮추어 보는 반응도 있죠. 작업 현장에 가면, 음료수를 전해주시는 분도 있고 면전에서 손사래를 치는 분도 있어요. 작은 마을은 소문이 빠르게 퍼지니까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하고요. 어떤 종류의 반응이든 싫지는 않습니다. 죽음에 얽힌 일이니 그런 반응이 이해도 되고, 어쩌면 알기 쉬운 표현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고독사 현장에 대한 인터뷰를 많이 하셨죠. 자살이나 고독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어떻게 보시나요?
양가적인 감정이 들죠. 언론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흥행성을 좇은 보도도 많으니까요. 특히 명절 앞두고 인터뷰 제의가 많이 와요.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유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추가 취재로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보도들이 단발성으로만 그치고, 한 달이 넘는 심층 취재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일본의 경우,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서 오랜 시간을 들여서 취재한 시도가 있었어요. 『무연사회』라는 제목으로 방송과 책으로 만들어져 큰 화제가 됐고요. 우리 사회에서도 고독사가 심각한 문제인 만큼, 언론에서도 시간과 인력을 투자해서 진득하게 취재했으면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나요?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그러기엔 죽음에 대한 콘텐츠나 교육이 아직 부족하죠. 부모도 죽음에 대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에게 잘 알려줄 수도 없고요. 그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들을 밀어붙이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망각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죽음을 잘 알아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거든요. 삶과 맞대고 있는 죽음에 대해 성찰한다면, 삶도 더 뚜렷해지고요. 그건 제가 현장에서 자주 겪는 경험이기도 해요.
계속 죽음에 대한 글을 쓰실 계획인가요?
현재로서는 한 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책도 읽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썼는데, 스스로 아직 죽음에 대한 무게를 덜어내지 못해서 다소 진중한 어조가 됐거든요. 다만, 죽음을 좀 더 가볍게 다뤄 보고 싶기는 해요. 사노 요코의 에세이 『죽는 게 뭐라고』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일을 안 하게 되어 즐겁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거든요.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구나 대단하다고 느꼈죠. 그렇게 죽음을 다루지만 ‘웃픈’ 농담 같은 책을 써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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