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혼자인 시대, 자신을 돌보는 ‘혼자들’을 위하여
『나는, 나와 산다』 김민아 저자 인터뷰
‘혼자’는 혼자라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혼자는 어떨 것이라는 뭇사람들의 예단과 편견, 괴롭히는 문화 때문에 고통받는 겁니다. (2020.07.10)
우리나라 열 가구 중 세 가구는 1인 가구, 즉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1인 가구를 ‘집단’으로 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한 사람’의 고유한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성별, 나이, 주거 형태, 혼인 여부, 가정 형편, 성 정체성, 건강 상태 등이 제각각이다.
오랫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며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온 김민아 작가가 스무 명의 혼자 사는 사람을 만나 그들의 내밀한 처지와 고민을 들어보았다. 『나는, 나와 산다』는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혼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은 책이자, 모든 개인이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제안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쓴 김원영 작가는 “인터뷰이에 대한 섬세한 이해, 배경 논의에 대한 진중한 성찰, 1인 가구를 낭만화하지도 불행히 여기지도 않는 시선을 통해 우리는 2020년 삶의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간다”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제목이 『나는, 나와 산다』인데,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지금 ‘혼자 사는’ 사람 중에는 몹시 원해서 스스로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혼자인 경우도 있고, 혼자이길 원치 않았으나 모두 떠나서 혼자 남겨진 사람도 있습니다. 또, ‘혼자인 나’는 사실 혼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는 누구와 있을 때 가장 나다운가?’ 하고 고민하다 보면, 너무 싫어서 헤어지고 싶지만 절대로 떠날 수 없는 ‘나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나 자신은, 때로 타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혼자는 자기 자신, 즉 ‘나와(with me)’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원 가족에게서 분리돼 ‘나와(out of family)’ 혼자 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나는, 나와 산다’는 이런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책의 부제가 ‘누구나 혼자인 시대, 자신을 돌보는 혼자들을 위해서’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단종된 담배 중에 ‘인디고(indigo)’가 있습니다. 한때 저는 이 단어를 저 멋대로 ‘individual going(각개약진)’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요즘은 ‘각개약진, 각생도생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기주의(자)와 개인주의(자)를 혼용해 쓰면서 개인이 ‘문제’인 듯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안에서 삽니다. 명절이면 고속도로 위는 귀향 차로 빽빽하고, 지인의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서울에서 해남까지도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고 하면서도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다녀오면 자식들이 많아 보기 좋더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은 어떤가요. 이런 문화 안에서 ‘혼자들’은 어디에서, 어떤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갈까요?
두 해 전, 저 역시 통계청이 분류하는 ‘직장 때문에 혼자 사는 1인 가구’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낯선 도시, 어떤 온기도 없는 6평 오피스텔에 돌아와 혼자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일은 때때로 놀랄 만큼 생경했습니다. 그런 기분이 드는 밤에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는데,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분들이 모두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그들의 ‘안녕’을 묻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1인 가구를 만났는데, 그분들을 선정한 기준이나 이유가 있나요?
인기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는 연예인처럼 젊은 사람들만 혼자 사는 것 같아도 둘러보면 혼자 살아가는 이들의 상황과 나이는 무척 다양합니다. 궁핍한 노인, 재취업을 고민하는 중년, 아픈 몸을 친구처럼 받아들인 청년, 가까스로 이혼한 중년, 아흔 살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70대 노인, 젊은 고독사를 걱정하는 청년처럼요.
노화, 질병, 장애의 경계는 흐릿해서 하나씩 짊어지고 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혼자 남게 될 겁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한국 사회에서 사는 일은 ‘견디면 암, 못 견디면 고독사’라고. 꼭 혈혈단신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을 앞둔 이가 가족과 수많은 지인에게 둘러싸여 있다 해도 그 마음이 끔찍한 상태라면 지옥 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혼자’는 물리적으로 혼자인 것과 심리적으로 고립된 상태를 아우르는 말이라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래서 더 다양한 계층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취재하다가 마주한 ‘혼자’를 둘러싼 ‘클리셰’는 무엇이 있었나요?
혼자 독립해 잘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자취 생활은 어떠냐고 함부로 묻는다거나, 나이 든 남자는 혼자 살면 추레해 보이니 어서 결혼해야 한다거나,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여자는 성질머리가 못 돼 먹어서 그렇다거나……. 이렇게 아무 때고 훅훅 치고 들어오는 언어와 시선의 폭력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혼자 살며 겪는 불합리한 반응과 차별은 ‘혼자는 어떠할 것이다’라는 틀에 박힌 생각, 즉 클리셰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는 혼자라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혼자는 어떨 것이라는 뭇사람들의 예단과 편견, 괴롭히는 문화 때문에 고통받는 겁니다.
한 끼를 해결하는 일부터,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는 일, 노후와 ‘홀로사(死)’에 대한 고민까지 혼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을 다루고 있는데, 혼자서도 잘살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가장 필요한가요?
제가 만난 ‘혼자들’은 누구보다도 삶에 애착을 느끼고 자신을 탐구하는 데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사는 네가 제일 걱정”이라는 지인들의 악의 없는 걱정의 말을 수시로 들어왔고, 때로는 걱정을 가장한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혼자 사는 나의 정체성이 꼭 타인의 인정에 의존할 이유는 없는데도, 인정의 원 안에 들어와야 구성원으로 인정하겠다는 사회 단위는 여전히 많습니다. 가족이 대표적인 예겠지요.
내가 혼자 산다는 사실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대도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문에 누군가와 관계가 끝난다면 그저, ‘계속이 없기 때문에 끝’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사실 그들도 늘 내 걱정만 하는 건 아닙니다. 혼자 살아서 겪을 두려움과 호기심 중에 어떤 게 더 클지 자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혼자서도 잘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살리는 ‘살림’ 능력도 무척 중요합니다. 혼자 살면서 관계 확장을 두려워하고 밥 지어 먹는 일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한 분 중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누구인지, 왜 그런지 이야기해주세요.
고정관념과 기존 가치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들은 다 인상 깊었습니다. 이들은 역할규범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 갈등에서 비롯된 새로운 상황을 접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일과 밥’은 하나이고 스스로 자신을 건사하는 게 사는 일의 전부라고 여기는 70대 김화순 님이 특히 그랬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사회적 고립 상황에 빠지기가 더 쉬운데, 코로나19가 1인 가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 뉴스를 접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지만 ‘어떤’ 사람들은 존엄과는 거리가 먼 대접을 받고, “어떻게 지내느냐”는 흔한 안부에서도 제외되기 쉽습니다. 코로나19로 외부와의 연결이 끊긴 상황이 길어진다면, 실직과 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 돌봐줄 이 없는 장애인이나 혼자 사는 노인 가구는 더 큰 위협과 두려움을 느낄 듯합니다.
의사이자 역학자인 마이클 마멋은 자신의 책 『건강 격차』에서 건강한 사회는 구성원들의 욕구를 잘 충족시키는 사회, 그렇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더 건강한 사회라고 했습니다. 품위와 품격이 있는 사회는 사회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각자 다른 처지와 형편 때문에 누려야 하는 서비스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처지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서비스 (격)차를 느끼지 않도록 애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김민아 이야기 듣고, 풀고, 쓰는 일을 좋아한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에 대한 궁리로 조용히, 분주하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공저),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엄마, 없다』,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를 짓고, 영화 <4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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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