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엄마의 역할은 ‘쉼터’가 되어주는 것 (G. 이남옥 가족상담치료사)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41회)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자녀들은 언제든지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때는 엄마 품을 찾게 되어있거든요. 그랬을 때 그냥 와서 쉴 수 있게만 해주시면 되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끊임없이 제안을 하시고 그 쪽으로 끌어가려고 하시면 자녀들의 기본 욕구가 계속 침해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2020. 06. 25)
상담을 하면서 수많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문제 행동과 문제 상황을 걷어내면 본연의 사람만이 남습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들은 각자의 기본 욕구가 좌절되었고 그 욕구의 좌절이 서로를 힘들게 만들어간 것으로 이해하면 훨씬 더 희망적인 상황이 됩니다. (중략) 나와의 관계도 상담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그런 사람’으로 규정하고 한계를 지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찾아가 진심 어린 이해를 구하고 구체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가지면 문제 해결의 답은 한결 찾기 쉬워집니다.
이남옥 저자의 책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가족상담치료의 대가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EBS의 <달라졌어요>, <라디오 멘토 부모>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가족 문제를 상담해주셨죠. 책 『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에 이어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를 쓰신 이남옥 교수님입니다.
김하나 : 제가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를 우연히 읽고서 생각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요.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아직까지 속을 끓이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서 오늘 선생님을 뵙고 말씀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이남옥 : 아, 네. 반갑습니다.
김하나 : 30년 동안 가족 문제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말 다양한 경우를 보셨을 것 같아요.
이남옥 : 그럼요.
김하나 :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저는 평생을 엄마를 미워하느라 저의 모든 에너지를 다 쓴 거 같아요.” 저는 정확하게 이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이남옥 : 아, 그래요?
김하나 : 이런 사람들을 자주 만나시나요? 특히나 엄마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
이남옥 : 그렇죠. 처음 상담을 왔을 때는 다른 이슈로 와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상처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결국은 초기의 애착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그래서 갈등의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공통점이 엄마라는 주제로 돌아오더라고요.
김하나 : 요즘은 가족 구조도 많이 바뀌었고 경제적인 상황 같은 것도 많이 바뀌어서, 그리고 ‘아빠의 양육’에 대한 중요성도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오늘은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에 한해서 ‘엄마와의 관계’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춰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의 역할이 더 작다라든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이남옥 : 절대로 아니죠.
김하나 : 그렇죠. ‘엄마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김하나 : 어떤 때에는 자녀가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이남옥 : 많이 그렇죠.
김하나 : 엄마가 자식을 위해서 뭔가를 밀어주고 떠나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거나 자식이 나아가야 할 바를 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경우들도 보게 되는데요. 엄마답지 못하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그렇다면 엄마다운 것은 어떤 걸까요?
이남옥 : 김하나 작가님이 이 책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어요. 엄마로서는 아이들을 잘 밀어주고 나중에는 잘 떠나 보내주고, 이 개념이거든요. 일단 성장기까지는 절대적인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하니까 심리적으로나 그 밖의 여러 가지를 지원하고 보살펴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엄마의 역할이고요. 성인이 됐을 때는 떠나보내야 돼요. 엄마는 그냥 쉼터의 역할만 하시면 돼요.
김하나 : 많은 사람들이 커서까지 품 안의 자식처럼 계속 싸고도는 것을 엄마다움으로 착각하고는 하는데...
이남옥 : 그렇죠. ‘내가 뭘 잘 해줘야 된다, 내가 뭘 이끌어줘야 된다, 내가 보살펴줘야 된다’ 이런 생각은 아이가 크고 나면 하지 마셔야 되는 거고요. 오히려 뒷전으로 빠지셔서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것을 바라만 주시고. 그러나 자녀들은 언제든지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때는 엄마 품을 찾게 되어있거든요. 그랬을 때 그냥 와서 쉴 수 있게만 해주시면 되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끊임없이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게 옳다, 이런 게 더 좋은 것 같다’라고 제안을 하시고 그 쪽으로 끌어가려고 하시면 자녀들의 기본 욕구가 계속 침해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김하나 : 책에 보면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합니다. ‘엄마, 나 이런 부분이 엄마 때문에 힘들어’라고 하면 ‘아휴, 내가 더 힘들어’라고 이야기하는 엄마도 있고요.
이남옥 : 그렇죠.
김하나 : 반대로, 너무 남편 때문에 힘들고 당장 이혼했으면 좋겠고 하지만 자식들이 이혼하라고 하면 ‘아니야, 나는 괜찮아. 너희들 보면서 나는 다 희생할 수 있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남옥 : 그 다음에 ‘너희들을 위해서 나는 이혼하면 안 될 것 같아’라고 하고요.
김하나 : 그런데 자식들은 제발 이혼 좀 했으면 좋겠는 거죠. ‘엄마, 왜 우리 탓을 해. 그냥 이혼을 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례도 있었고요.
이남옥 : 그렇죠.
김하나 : 또 엄마가 편애를 하는 경우도 나와 있었고, 엄마가 인정을 안 해줘서 평생을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김하나 : 책에 보면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불안정 애착의 세 가지 유형이 나와 있더라고요. 애착을 형성할 때 엄마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죠?
이남옥 : 그럼요. 그 시기에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해주면 아이들의 뇌가 안정 애착에 따른 건강한 뇌가 되는 거예요. 만약에 그때 손상이 된다고 하면 이후에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치유가 어렵기 때문에 이 기간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이 기간에 아이들의 욕구에 대해서 잘 알아차리고 편안하게 충족시켜주면서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 자기 자신에 대한 건강한 개념들을 가질 수 있도록 기초 공사를 해줘야 되는 거라고 볼 수 있죠.
김하나 : 기초 공사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막강한 것 같은데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부실했던 기초 공사를 다시 채우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드는 거겠죠. 좋은 관계를 만나기도 해야겠고 노력도 많이 해야겠고.
이남옥 : 그렇죠.
김하나 : ‘재양육’이라는 개념도 있더라고요. 나중에 성장하고 나서도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5년 정도 이상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을 때 기초 공사의 부실함을 조금 더 보강할 수도 있는.
이남옥 : 네. 사실은 그게 저의 관심사인 거죠. ‘어렸을 때 이런 상처가 있었는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냐’ 이건 더 큰 상처일 수 있잖아요. 그러한 단정이. ‘이렇게 상처가 있었을 때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가 상담가들한테는 더 중요한 테마이고요. 극복하는 사람들을 알아보면, 배우자가 끊임없이 믿어주고 편안할 수 있는 환경들을 제공해 주면 그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더라고요. 배우자 말고도 주변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어도 괜찮아요. 학교 선생님이든 이웃이든 친척이든, 누군가가 계속 해줘도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될 수는 있죠.
김하나 : 책에서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에 나의 취향과 애정만 작용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너무 놀라웠어요. 이를 테면, 어떤 사람은 아빠가 너무 외도를 많이 해서 징글징글했는데 남편으로 그런 남자를 만나요. 또 ‘대물림’이라고 하는 포인트가 있었죠. 대물림이라는 말이 무시무시한 말이기도 한데.
이남옥 : 그렇죠. 조금 거부감이 생기죠? 좋은 것의 대물림은 좋은데 ‘상처의 대물림’ 이야기를 하면 처음부터 조금 무기력에 빠지고 아주 불편한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보면, 실제로 그 대물림이 되니까 우리가 이 현상에 대해서 외면할 수는 없는 거죠.
김하나 : 그러니까 자신의 엄마 아빠와의 관계가 내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거죠.
이남옥 : 네. 어느 사례를 보면, 엄마가 결혼할 때도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드는 배우자였어요. 그래서 항상 ‘내가 왜 하필이면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라는 말을 되뇌면서 사셨는데, 이 이야기가 자녀들이 결혼할 때 다시 반복되더라고요. 자녀가 배우자감을 데려왔는데 ‘너는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을 데려왔니?’라고 이야기하게 돼요. 그 심리적인 역동이 뭘까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 하실 텐데요. 엄마로서는 남편이 무기력하고 가정을 책임지지 않으면 내 딸만큼은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 거죠. 그런데 딸의 심리로 들어가 보면, 그런 남자를 만났을 때 어떤 무의식적인 갈등이 생기냐 하면, 내 남편과 비교해 보면 아버지는 영원한 루저로 남는 거죠.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받아줄 수 없는 실패자이면서 형편없는 사람으로 남는 거죠. 이게 딸에게는 또다시 상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다시 잘해보고 싶고, 그래서 아버지를 재발견하고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들이 작용을 해서 대물림 현상이 일어나는데요. 어머니들이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을 만났니?’라고 할 게 아니라, 지금 딸이 그 사람한테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거예요.
김하나 : 엄마가 스스로?
이남옥 : 네. 그런 사람을 골라올 수밖에 없는 심리적인 요소를 엄마가 심어주신 거예요. 그게 딸 탓이 아니라 엄마 탓인 거죠.
김하나 :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딸에게 하는 푸념들이라든가, ‘나는 너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다든가, 수많은 것들이 딸 속에는 아주 강력한 씨앗을 계속해서 뿌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이남옥 : 맞아요.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워요. 자랄 때 아이는 심리적인 나이가 5살 6살밖에 안 된다고 치면, 어머니는 성인이잖아요. 그런데 푸념하고 하소연하고 조언을 구한다고 하면, 마치 5살 6살짜리 어린 아이가 30~40대의 엄마를 업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그림으로 그려보면 그게 얼마나 무리인지 느껴지는데 심리적으로도 똑같다는 거죠. 아무리 자녀가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하소연을 듣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은 심리적인 무리가 요구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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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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