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집에서 논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욕을 먹진 않을까? 덜덜 떨었는데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라고 저를 확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꼭 소설만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 다른 글쓰기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죠. 왜 글쓰기에는 치유 기능이 있잖아요.(2020. 06. 17)
독자로 책을 읽을 때 가장 매력적인 끌림은 “이 작가님, 이 책 진짜 쓰고 싶었구나”를 체감할 때다. 단순히 가독성이 뛰어난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술술 읽히되 저자의 본심이 문장 속에서 툭툭 튀어나올 때, 독자는 스릴 넘치는 독서를 경험한다. 소설가 정아은이 2018년에 쓴 『엄마의 독서』를 읽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이 책의 심화편으로 볼 수 있는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엄마, 주부를 비롯한 모든 존재에게 소문 내고 싶은 책이었다.
“전업주부를 폄하하는 말이 마음껏 뛰놀며 활약하는 대지에는 ‘아빠’라 불리는 이들과 ‘결혼과 출산과 육아라는 전형적 길을 가지 않는 비혼 여성’이라는 존재가 서 있었고, 이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나는 가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길을 걸어간 끝에 만난 세상은 더 넓고 더 다채로운 곳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집에서 가사를 담당하는 이들을 폄하하는 사회현상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은 엄마들만이 아니라 아빠들, 엄마가 아닌 주부들, 엄마도 주부도 아닌 비혼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변화된 생각의 과정을 드러내고 분류하고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변화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 초반에 품었던 단선적이고 편협한 생각들도 여과 없이 기술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11쪽)
신간은 소설일 줄 알았어요.
(웃음) 『엄마의 독서』를 내고 강연을 좀 다녔거든요. 단발성 강연도 있었고 시리즈 강연도 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 ‘젠더의 눈으로 본 자본주의’라는 제목이었거든요. 엄마의 독서로 시작해 남편과 아내가 괴로운 이유를 자본주의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죠. 강연을 주선하신 분이 “이런 주제는 인기가 없다”고 하셨는데 오신 분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현장에서 만난 분께서 “오늘 이야기는 어떤 책에서 나오냐?”고 물으셔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엄마들의 애환을 다룬 책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서요. 이 생각은 2년 전쯤 한 것 같아요.
제목이 강렬합니다. 부제는 “남성들의 언어 속에 감춰진 가사 노동의 사회, 역사, 경제적 비밀을 파헤치다”예요. 초고의 제목도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였나요?
원래 ‘엄마의 자본론’, ‘주부의 노동’이라고 할까 생각했는데 접근성이 떨어지겠더라고요. ‘거짓말’에 초점을 두고 책을 쓰고 싶었고, 이런 뉘앙스로 포맷팅 된 책도 몇 권 있어서 힌트를 얻었어요.
실은 『엄마의 독서』가 나왔을 때 조금 놀랐어요. 2013년에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모던하트』로 데뷔하신 후,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을 쓰셨잖아요. 이미 소설가로서의 입지가 있는데, 작가로서의 에세이가 아닌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인문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엄마의 독서』를 쓰고 나서 너무 좋았거든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나서 봇물처럼 사회 정치서를 읽게 됐는데요. 이런 책들을 읽으니까 픽션이 아닌 글쓰기가 나오더라고요. 원래 『엄마의 독서』도 일기식으로 막 편하게 썼던 책이에요. 너무 복받쳐오는 감정에 휘말려서. (웃음) 그러다 한겨레출판사 편집자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원고에 흥미를 보이셔서 출간된 책이에요.
예전에 어떤 작가님이 자신이 엄마라는 걸 기사에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의미였을지 조금 예상이 가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 주부, 아줌마라는 느낌보다는 조금 지적이고 멋있게 보이고 싶은? 그런데 책을 써보니까 정말 쓸 게 많고 잘 써지는 거예요. 세상에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지침서가 얼마나 많아요. 하지만 엄마가 직접 쓴 책은 많지 않은 거죠. 그래서 엄마인 내가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모 독자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은 책이었죠.
실은 처음엔 많이 긴장했었어요. 모성 신화를 건드리면 초토화가 되잖아요. 그런데 강연을 가보니, 너무 공감해주시고 좋아해주시는 거예요. 욕을 먹진 않을까? 덜덜 떨었는데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라고 저를 확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꼭 소설만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 다른 글쓰기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죠. 왜 글쓰기에는 치유 기능이 있잖아요. 『엄마의 독서』를 쓰면서 저 스스로도 치유를 받았어요. 소설가로 불리든 에세이스트로 불리든, 내 안에 있는 걸 잘 쏟아내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죠.
이번 신간 소식을 들은 한 독자 분이 “내가 쓰고 싶은 책이 세상에 나와 있구나”라고 댓글을 다셨더군요.
자꾸 『엄마의 독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이 책을 내고 외부와의 접촉이 많았어요. 심심치 않게 아빠나 남편 분들로부터 메일이 와요. 한 초등학교 교사 분은 “이 책을 읽고 10년 만에 아내를 이해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도 책을 쓰고 많이 반성했어요. 적대적인 감정으로 남녀를 나눌 게 아니라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누구나 사람 안에는 선한 면이 있잖아요. 어떤 기회를 만나고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다른 것들이 발현되지만, 인간에게는 인간의 선한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글을 쓰면서 그동안 제가 갖고 있었던 편협한 젠더의식에서 많이 빠져 나왔거든요. 여자도 남자도 다 다르고, 하나의 균질한 덩어리가 아니니까요. 아마 독자 분도 비슷한 생각을 갖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신간 리뷰도 많이 들으셨나요?
제목은 센데 내용은 생각보다 부드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목을 보면 ‘가부장제 철폐!’ 같잖아요? (웃음) 하지만 아니죠. 싫기만 한 가사노동을 말하는 건 아니니까요.
책은 기본적으로 독서 에세이 형식이에요. ‘집에서 논다’는 말의 연원을 15권의 책으로 살펴보는데 등장하는 책이 무척 다양합니다.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시작으로 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 등 사회학서부터 에세이까지. 책에서 발견한 사유로 ‘가사노동’이 왜 이렇게 폄하되어 왔는지를 분석해요.
결론적으로 저는 돈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떤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하더니 몇 개월 후에 금슬이 다시 좋아졌어요. 이유를 살펴보니 배우자가 좋은 기업으로 이직해 연봉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공기 같은 존재예요. 엄마, 여성들의 많은 문제는 가사노동에 있는데, 속으로 들어가보면 돈이에요. 왜냐? 가사노동은 돈을 받지 않잖아요. 문제는 물질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을 타파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태도, 언어, 가치관, 정서의 문제로 남자를 가르치려고 해도 불가능해요. 사람들이 주부들에게 ‘집에서 논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것이 잘못됐다고 교정하는 단계를 넘어 발화자가 그 말을 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는 일이 이 책의 핵심이에요.
로이 F. 바우마이스터의 『소모되는 남자』도 다루셨어요. 남녀의 차이를 분석한 심리서인데요. 남성도 여성 못지않게 문화적 착취를 당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은 되게 잘 쓴 책이에요. 그래서 현혹되기 쉽죠. 남녀의 특성이 다른 이유를 ‘동기’의 차이로 보는데요. 초반에는 ‘아, 그런가?’ 하고 봤는데 중반을 지나가니,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읽고 다시 읽었어요. 저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보면서 깨달은 게 많아요. 올바르지 않은 사실을 어물쩍 넘어가는 방식이 많은데, 스스로를 돌이켜보건대 저 역시 그랬던 적이 있더라고요. 이를 테면 남녀 평등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인정을 안 하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이 정도는 덮고 갈 수 있어’라고 생각한 지점들이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결국 이런 습관은 목적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82년생 김지영』을 읽으셨나요?
네, 책이 나오고 초기 때 읽었어요. 저는 젊을 때부터 남녀평등에 관한 생각이 투철해서 어디를 가나 혼이 많이 났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겁부터 났어요. 이 작가가 꼭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열풍이 일었잖아요. 저는 소설을 읽고 ‘지금도 엄마들이 이런가?’ 싶었거든요. 좀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잖아요.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해보면 제가 운 좋게 살아남았던 거죠. 아직도 많은 여성은 힘들어 하고 있고요. 이 소설로 여성들의 현실적인 문제, 감정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걸 보고 되게 기뻤어요. 소설이 기폭제가 될 수 있구나, 그것에 놀랐고요.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섬세하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이어서 읽고 싶을 것 같아요.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연성이라고 하나요? 읽기에 어렵지 않아요. 그리고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도 정말 잘 쓴 책이에요. 저자가 경제학자인데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잘 풀어 쓴 책이에요. 또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조금 어렵긴 했거든요. 하지만 읽으셔도 좋겠어요. 제가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가서 고병권 선생님이 쓰신 『다시 자본을 읽자 1』을 추천한 적이 있어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해설한 시리즈 책인데, 저도 『자본론』이 어려워서 고병권 선생님 수업으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들이 바로 다음날 스터디를 결성하셨더라고요. 고병권 선생님의 책으로 읽는 『자본론』 수업을 말이에요. 요즘 엄마들은 정말 지적이고 부지런하시구나, 정말 놀랐고 반가웠어요.
공부하는 엄마들이 정말 많죠.
맞아요. 엄마는 묘한 약자예요. 관계의 약자, 이상하게 포장된 약자. 꾸준하게 약자 입장에 처하면서 사회에 대해 달아올랐다고 할까요? 그래서 굉장히 폭발적인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 때랑은 정말 다르구나, 굉장히 비판적이면서 열심히 공부하세요.
코로나19로 힘들지 않으셨나요? 학교에 자주 못 가는 아이들의 끼니도 매일 챙겨야 하고요.
사이버 수업을 해도 아이가 수시로 방문을 열고 “엄마, 엄마” 찾으니까요.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전부인데, 학교를 못 가는 상황을 엄마들이 다 막아야 하는 거잖아요. 쉽지가 않죠.
책을 보면 작가님이 확실히 ‘살림’에 대해 편안해진 느낌이 들어요. 요즘도 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나요?
최근에 독거노인분들께 반찬을 만들어 드리는 봉사를 했어요. 사실 30대 때는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것도 환장인데 밖에 나가서도 그거 하리? 싶었거든요? 그런데 봉사를 하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마흔이 지나니까 밥을 짓는다는 거, 구수한 밥 냄새를 맡는 일이 참 따뜻하고 좋더라고요. 누군가를 살게 하는 일이잖아요. 이거야말로 진짜 일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작가로 살면서 글을 쓰고 말을 하잖아요. 아무래도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말과 글이 우리는 너무 속이는 것 같은? 비약적으로 말하면 입만 산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일단 저부터요. 작가라는 직업이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기 딱 좋은 일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데 대단한 무엇이 된 양. 그런데 봉사를 하니까 밥을 짓고 있으니까, 이거야 말로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맞는 이야기예요.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들어도 비하를 당해도,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가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의 비임금 노동을 갈아 넣어서 지탱하고 있는 거잖아요? 주부들이 이용을 당하는 측면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인간 본연의 어떤 세계와 맞닿을 기회를 제공받는 측면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제 노동을 착취 당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지만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강요를 당해서 문제인 거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봉사할 때, 아이들도 함께 갔다고요.
반찬을 배달할 때 아들 둘을 데리고 갔어요. 나눠 드리는 걸 아이들이 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휴, 이런 일 남자 애들 시키면 안돼”라고 하시는 거예요. “빨리 며느리를 봐서 이런 건 며느리 시키라”고 하시고. 제 노동력의 수혜자인 분들께 이런 가부장적인 이야기를 또 들어야 한다니, (웃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남편까지 데리고 갔어요. 남편도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남편이 반찬을 나눠 드리자 어쩔 줄 몰라하시더라고요. 제가 반찬을 나눠 드릴 때랑 공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요즘은 살림하는 남자가 인기가 많죠. 가사노동을 분배하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이고요.
가끔 허세가 정말 심한 사람을 보잖아요? 잘 살펴보면 원인은 집안일에 있어요. 전혀 안 하는 거죠. 반면에 이름난 작가인데 조금도 거만하지 않은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을 잘하세요. 집안일은 일단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잖아요.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자기가 자기 존재를 떠받드는 훈련을 한 사람은 결코 거만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이가 좋은 부부들을 가끔 보거든요? 핵심은 ‘가사노동’에 있어요. 한 사람만 주구장창 가사노동을 하는 관계는 오랫동안 행복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살림이 내 체질이고 좋아도, 이 매일의 노동을 한 사람이 감당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남편이 가사노동을 조금도 안 해서 힘들어 하는 아내들에게 힌트를 좀 주신다면요.
보통 대화로 풀라고 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불가능해요.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생각해보면, 말로 누군가를 바꾸는 건 가장 게으른 방법이에요. 제가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했다고 했잖아요. 당시 저는 ‘좋은 엄마가 되려는 열망’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나도 좀 타인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들 저녁을 당신이 가급적 일찍 퇴근해서 챙겨 달라고 했죠. 처음엔 자장면을 시켜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봉사활동을 나가니까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그 마음이 어디로 갔을까요? 집으로 가죠.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어요. 제가 얻은 활력이 가족들에게 간 거죠. 남편도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아이들 밥을 기꺼이 즐겁게 만들어줬어요.
정말 내 삶을 바꿔야 하는 거네요.
그렇죠. 어떻게 우리가 남을 바꿀 수 있겠어요? 말하지 말고 내 삶을 바꿔야 해요. 우선 상황을 만들어야 해요. 어쨌든 제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바깥 활동을 많이 만들고 상대를 가르치려고 하면 안 돼요. “당신이 할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해요. 말은 유하게 행동은 세게 하는 거죠. 저도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된 거예요. 누군가를 바꾸려면 제 삶을 바꿔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아내들은 남편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보다 자신이 희생하고 만다고 생각해요.
가사 분담이 안 되면 평생 힘들어요.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평생 혼자서 할 수 없어요. 남편의 얼굴을 붉히는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냥 말해야 해요. 왜냐면 이게 쌓이면 화가 다른 데로 뻗어 나가거든요. 남편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도 각오해야 해요. 평생 살아야 하니까요.
동네 엄마들을 종종 만나실 텐데요.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은 없나요?
별로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집에서 혼자 글을 쓰니까요. 가끔 기회가 생기면 엄마들과 잘 어울리는데요. ‘작가’라고 하면 굉장히 자기충족적인 존재라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그게 아니라는 걸 많이 알려줘요. 제가 얼마나 잘 나가는 작가들을 보면서 질투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막 솔직하게 말하거든요. (웃음) 그래도 자기충족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거리감을 많이 느끼진 않으시는 것 같아요.
‘엄마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뚜렷하게 밝히는 분을 자주 보지 못했거든요. 어떠세요?
저도 과거에는 세련돼 보이는 작가로 어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의 독서』를 쓴 이후부터 그 욕심에서 해방됐어요. 내 정체성의 8할을 차지하는 것이 엄마, 주부잖아요. 그것이 싫지 않아요. 그리고 항상 내 문제에 천착하는 일이 가장 자유로운 것 같아요. 가장 나답기도 하고요. 『엄마의 독서』를 쓰고 나서 아이와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어요.
사회에 나오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경력 단절이 되면, 정말로 취업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데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분들이 많죠.
맞아요. 지금도 전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꿈을 꿔요. (웃음) 누가 저에게 지금 회사에 나오라고 하면 당장 나갈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사람의 삶은 다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든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엄마들도 있고, 주부로서의 자신, 엄마로서의 나에 굉장히 만족하는 분도 많아요.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결핍이 있었던 경우에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하는 엄마들이 있잖아요. 행복의 절대 요소인 거예요. 그런데 또 결핍이 있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자신의 엄마가 전업주부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경우, 엄마로서의 자신을 꿈꾸기도 해요. ‘엄마로만 사는 것이 행복할 리가 없어’는 아닌 거예요. 사람은 다 다르니까요.
그렇죠. 아이를 잉태하고 키우고 좋은 사람으로 양육해서 사회로 보내는 일,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죠.
사실 생각해봐요. 전혀 살 필요가 없는 전자제품을 2년이 지났으니까 신제품으로 바꾸라는 설득하는 일과 내 아이의 밥을 짓는 일, 둘을 비교해보면 당연히 후자가 훨씬 가치 있는 일이잖아요. 인간을 살게 하는 일이고요. 가사노동을 자본주의의 프리즘으로 바라보면 주부로서 사는 삶의 미덕이 더 드러나는 측면도 있어요. 주부 생활을 진심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당연히 이해되죠.
초등학생, 중학생의 학부모로서 교육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어릴 땐 남들이 시키는 거 다 해봤다가, 중간에는 대안교육도 알아보면서 학원도 안 보냈다가 지금은 뭐든지 ‘아이한테 좋으면 하는 게 좋다, 뭘 하든 많지 않게! 여유롭게!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공동체가 다 깨졌잖아요. 학원이라는 존재가 일종의 돈을 주고 사는 공동체가 됐는데, 너무 이상적인 관점으로 “사교육은 무조건 안 좋아”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저자로서 기대하는 의외의 독자가 있을까요?
나이 많은 남자 분들이 읽는다면 좋겠어요. 가끔 강연회에 가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오시는데요. 굉장히 경청하고 가세요. 기왕이면 이 책이 남자 독자들께도 가 닿으면 좋겠어요.
책의 핵심이 ‘가사노동’이잖아요. 독자들이 이것 하나는 꼭 기억했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가사노동은 삶의 명(明)이자 암(暗)이 될 수 있어요. 자본주의에서 가사노동자로 산다는 건 기회를 부여 받는 것이기도 하면서 족쇄를 차는 일이기도 해요. 우리가 가부장제,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잖아요? 이 견고하고 거대한 사회를 위태위태하게 살고 있는데, 여기서 잘 살려면 이 양대 산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자기를 실현하면서 잘 살 수 있으니까요. 가사노동이 가치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기억하셨으면 해요.
후속작은 어떤 주제인가요?
우선 나이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있고요. 소설도 쓰고 있어요. 돈에 관한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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