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백세희의 떡볶이만큼 좋은 시
태그라는 이름의 새로운 폭력
<월간 채널예스> 2020년 5월호
나를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다 아는 척 헛소리하지 않았으면,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욕을 하려면 익명 뒤로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2020. 05.07)
언스플래쉬
당신은 시들었고 죽어가지만
내가 일부러 고통을 주려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난 죄책감을 느끼지 않소
내 생리가 그러하오
난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생기를 잃게 하오
내가 숨 쉴 때마다 당신은 무르익었고 급히 노화되었고 마침내 썩어버렸지만
지금도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호르몬을 억제할 수가 없소
나는 자살할 수 있는 식물이 아니오
당신한테 다가갈 수도 떠날 수도 없었소
단지 관심을 끌고 싶었소
김이듬 시집 『히스테리아』 중 ‘정말 사과의 말’ 중
재작년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라는 첫 책을 냈다. 평점은 현재 네이버 기준으로 6.9점, 그다지 높지 않은 점수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리뷰를 좀 훑어보다가 그만뒀다. 상처받는 일은 매번 처음 같다.
우울증 상담기인 이 책은 무려 40만 부가 팔렸다. 나는 얼떨결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부끄럽지만 팬도 생겼으며 부모의 빚도 갚을 수 있었다. 더 구구절절 말해보자면 아픈 강아지의 병원비도 큰 부담 없이 낼 수 있었고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지면도 얻었으며 다른 책 계약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책을 사주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나는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정신과 치료와는 별개로 큰 위안을 받았다. 팍팍했던 삶이 조금은 여유로워지면서 부족하게나마 주변을 돌아볼 줄도 알게 됐다. 결론은 난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수상소감처럼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건 아니고 오히려 반대다. 감사와는 거리가 먼 나쁜 말을 하려고 밑밥을 잔뜩 깐 것뿐이다.
내 책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로 유명한 책이(라고 들었)다. 나도 알고 있다. 책이 나온 후부터 리뷰를 꼬박꼬박 챙겨 보았으니까.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에는 나와 내 책을 검색하는 일을 멈췄다. 모든 비판을 피하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비판보단 비난과 욕이 더 눈에 잘 띄었기에 상처를 자주 받았다. 칭찬을 비롯해 좋은 지적도 많았지만 일일이 걸러볼 수 없었기에 둘 다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작가가 책을 내면 독자가 그 책을 읽고 평가하는 건 당연하다. 좋게 읽었든 좋지 않게 읽었든 본인의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거나 온라인에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상관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들어가 내 책에 관한 악평을 찾아 읽고 엉엉 울 필요가 없었다. 책 리뷰 안 읽으면 되고, 기사나 영상에 달린 악플 안 보면 되니까. 해시태그도 마찬가지였다. 안 누르면 되니까. 댓글이 두려운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릴 땐 댓글 다는 기능을 해제하고 올리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메일과 메시지로 보내오는 나쁜 말들도 그렇지만, 새로웠던 건 내 SNS 계정을 태그해서 악평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언젠가의 아침, 늘 그랬듯이 눈을 뜨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ㅇㅇ님이 게시글에 회원님을 태그했습니다.’라는 알림이 떴고 아무 생각 없이 그 글을 눌렀다. 내 책의 감상평이었다. 대충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 책을 살 바에 떡볶이를 사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그냥 일기장 수준이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들을 마치 자신만 겪은 특별한 일 인양 포장한,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책. 시간이 아까웠다.”
메일과 메시지와는 달리 많은 물음표가 스쳤다. ‘내가 읽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면 사람을 태그하는 걸 그냥 '해시태그'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많은 사람이 태그하기에 내가 못 볼 거라고 생각하나?’
덜컥 그런 알람을 마주할 때의 기분은 뭐랄까,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났는데 대뜸 모르는 사람이 찬물을 끼얹으며 “정신 차렷!”하는 듯한? “어머 뭐야 깜짝이야 누구세요? 왜요?”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런 기분?
자신의 계정에 내 계정을 태그하는 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대의 계정으로 나를 소환하는 일이다. 알림을 꺼놓아도 접속하면 피드에 빨간 알림이 남는다. 읽지 않은 메일처럼 숫자가 뜨니 읽을 수밖에 없다.
메일과 메시지에는 답장을 보내거나 보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계정에 감상평(악평이나 비난)을 쓴 뒤 내 계정을 태그하는 건, 대답을 바라는 글이 아니기에 댓글을 다는 것도 애매하다. 편지도 아닌 글에 나를 소환하니 '이건 뭐지?' 싶은 거다.
마음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몇 달 전에는 감상평에 내 개인계정을 태그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돌아온 답장은 이랬다.
- 저는 제 계정에 제 생각을 쓸 자유가 있습니다.
끄덕끄덕. 맞아요. 그런데 왜 저를 소환하시냐고요.
- 저는 그 생각을 작가에게 전달할 자유도 있습니다.
네…? 전 안 궁금한데요? 보지 않을 자유도 있는 거 아닌가요?
- 쌍욕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책 내용을 비판했을 뿐입니다.
음, 그렇구나. 쌍욕이 아니면 욕이 아닌 거구나. 물 끼얹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난 그럴 자유가 있어!” 하는 것 같네.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그럼 글만 쓰시지, 아니면 해시태그만 다시지 굳이 저를 왜……. 그 말은 삼켰고 태그된 게시물은 숨기기 처리를 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태그하는 게시글을 모두 삭제하거나 숨길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하기는 싫었다. 좋은 마음으로 날 태그하고 글을 써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쨌든 상대방이 때린다고 해서 나도 같이 때리면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 진부하고 진절머리난지는 오래됐다. 그래서 참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무례하게 구는 사람 앞에서 한 마디 던지거나 대꾸하지 않는 용기를 낼 때도 많다.
그런데 태그를 거는 사람들 앞에서는 유독 마음이 뒤죽박죽된다. ‘이거 나 때린 거 맞나…? 아닌가? 그럼 나도 내 계정에 그분을 조용히 태그하고 무례한 글을 써야 하나? 내가 괜히 오버하는 걸까?’
온라인에서의 폭력은 너무 쉽고, 방법도 갈수록 다양해진다. 그리고 본인 공간에 쓴 비난의 글에 나를 태그하는 건 새로운 방식의 폭력 같다. 누군가를 태그할 수 있는 기능과 상대가 볼 수밖에 없는 강제성에서 일종의 권력이 느껴지기도 하고. 사이버 불링이라고 불리는, 상대를 단체 채팅방에 초대한 뒤 욕설을 하거나, 새로운 채팅방에 끊임없이 초대하며 괴롭히는 것도 비슷하다. 괴롭힘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팅방 초대 역시 불편함을 줄 때가 많다. “볼 줄 몰랐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하면 대답할 말도 없어진다. 하지만 나를 태그하면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데. 내 친구들과 가족도 보고 분노하는데. 나만 보는 게 아닌데. 아아, 복잡하다.
어쨌든 나쁜 말 마무리를 해야지.
평가하려면 혼자 하고 나한테 말 안 했으면 좋겠다. 나를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다 아는 척 헛소리하지 않았으면,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욕을 하려면 익명 뒤로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착한 척만 하다가 나쁜 말 쓰니까 무서워 죽겠다. 그래도 누군가를 태그하고 쓰는 글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가 있는 거니까. 쌍욕도 안 했고. 이 코너는 내 생각을 쓰는 곳이니까. 나도 그럴 자유가 있는 거니까, 괜찮겠지?
히스테리아
김이듬 저 | 문학과지성사
기묘한 나라는 앞선 시집들에서 해온 작업들에 비추어 김이듬만이 세울 수 있는 세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히스테리아는 어디에 터전을 잡고 있는가. 보편적인 인식으로 세계를 중심과 주변부로 나누려 한다면 히스테리아는 분명히 주변부 어디에 울타리를 치고 있을 것만 같다.
관련태그: 태그, 폭력, 히스테리아,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5년간 일했습니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으며 정신과를 전전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지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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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우리는 힘들 때 스스로를 한 번 더 죽인다. 힘들어하는 자신이 싫어서 우울을 유난으로 여기고, 슬픔 앞에서도 자신을 검열한다. 그 와중에도 남의 눈을 신경 쓰고, 그런 자신을 또 한 번 자책한다. 그러다 지쳐 무기력에 빠진다. 저자도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