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마가 아니라 너야 - 뮤지컬 <미드나잇:엔틀러스>
새해맞이 파티를 준비하던 부부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평범한 부부의 가면을 쓴 남자와 여자는 자기 자신에게도 숨겼던 민낯을 들킨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문을 두드린다
세 번의 노크 소리와 함께 ‘엔카베데’의 목소리가 들린다. 엔카베데가 누군가를 끌고 가려고 하고, 변명하는 남자와 애원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대 위, 집 안에서 한 여자가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자는 불안해하며 남편을 기다리고, 곧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태연하고 능청스러운 태도 때문에 잠깐 다정한 분위기가 풍긴다. 새해맞이 파티를 준비하는 두 사람의 집 안으로도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진다.
딱딱하게 굳은 부부와는 달리 방문자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마치 언제나 이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공간을 누비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자신을 ‘엔카베데’로 소개한 손님은 동료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부부의 집에 머문다. 동료에게 전화를 걸다 문득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이 워낙 많아 전화번호부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출판이 중단됐다’는 말을 웃으면서 한다. 부부는 얼굴이 새파래지고, 그가 떠나기만을 바란다. 부부가 전전긍긍하는 사이 그는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의 비밀을 밝히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뮤지컬 <미드나잇:앤틀러스> 는 아제르바이잔의 작가 엘친 아판디예프의 희곡 『지옥의 시민(Citizen of Hell)』을 원작으로 한다. 국내에서는 2017년 초연되었고, 올해 <미드나잇:앤틀러스> 와 <미드나잇:액터뮤지션> 으로 관객들을 찾는다.
무대는 이층집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층엔 소파와 책장이 놓인 넓은 거실로 꾸며져 있고, 거실 뒤편에 난 문은 부엌으로 보인다. 2층엔 닫힌 방문 세 개가 나란히 있고, 부부 외의 동거인은 보이지 않는다.
중상류층으로 보이는 부부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집 한가운데 걸린 액자다. 긴 뿔이 달린 사슴 흉상이 툭 튀어나온 채로 걸려있는 액자는 가장 편안해야 할 집 안에서도 통제와 억압, 감시를 피할 수 없는 시대임을 암시한다.
남자와 여자의 집을 찾은 엔카베데는 소비에트 연방의 정부 기관이자 비밀경찰로, 소련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정치적 숙청하는 기구다. 엔카베데의 노크 소리가 울리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어김없이 사라졌고, 돌아오지 못했다. 죄 없는 사람도 반역자를 만드는 것이 엔카베데의 일이다.
<미드나잇:앤틀러스> 는 스탈린 시대 소비에트 연방에서 1936년부터 1938년까지 6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발돼 숙청당했던 ‘대숙청’ 시기를 한 부부의 삶으로 조명한다. 매일 불안에 떨며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다.
반인륜적인 지시에 순응하고, 체제에 맞춰 자기 자신의 윤리의식 같은 건 고려하지 않게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뮤지컬 <미드나잇:앤틀러스> 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고 짜임새 있게 풀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방문자의 정체는 모호해진다. 그는 엔카베데도 악마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으며, 네 안에도 있는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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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상경해 동생과 불편한 동거 중.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