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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맨> 나는 투명인간 버전의 <현기증>을 보았다

세상은 바뀌었고, 결말도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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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여성은 더는 남성의 욕망에 고통받거나 희생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되로 받으면 말로 갚는다, 그렇게 세상은 변했다. 리 워넬이 <현기증>을 생각나게 하는 설정으로 <인비저블맨>을 만든 이유다.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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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비저블맨>의 한 장면

 

 

(* 결말을 스포일러합니다!)


<인비저블맨> 을 보면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을 떠올렸다. <인비저블맨> 을 연출한 리 워넬 감독이 대놓고 <현기증>을 투명인간 버전으로 만든 게 아닌가! <인비저블맨> 은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투명 인간이 되면서까지 괴롭혀 이에서 벗어나려는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의 분투기다.

 

남편이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묻자 세실리아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내 모든 걸 통제하면서 살았어. 내 의도를 무시하고 뭘 입고, 뭘 먹을 것인지 통제했지. 나중에는 몇 시에 외출할지, 무슨 말을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까지도.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생각을 하는 것 같으면…”

 

<현기증>의 스카티(제임스 스튜어트)는 매들린(킴 노박)의 뒤를 밟는다. 대학 동창에게 부인을 미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다. 스토킹하듯 뒤를 쫓다 금문교 아래로 뛰어든 매들린을 구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함께 간 수녀원 종탑에서 매들린이 떨어져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스카티는 매들린과 머리와 옷 스타일은 달라도 생긴 건 똑같은 주디를 목격하고 다짜고짜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간다. 뻔뻔스럽네요, 모르는 사람 방까지 쫓아오다니, 그녀의 항의는 나 몰라라 스카티는 잠깐 얘기만 하고 싶다고, 저녁이나 먹자고, 그러다 더한 요구를 쏟아낸다.

 

옷을 사줄 테니 이거 입으라고, 구두는 이걸 신으라고, 헤어스타일은 이렇게 바꿔보라고, 그럴 때마다 주디의 표정은 당혹에서 거부로, 울분에서 어쩔 수 없는 동의로 변화해 간다. <인비저블맨> 에서 세실리아가 남편에게서 죽음을 무릅쓰고 피하려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과 붙여 놓으면 영화는 달라도 맥락이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리 워넬 감독은 <현기증>을 비롯하여 히치콕의 영화와 연출론을 염두에 두고 <인비저블맨> 을 준비했다. 버라이어티지(誌)가 리 워넬과 나눈 대화를 기술한 부분 중 일부다. “리 워넬은 또 다른 공포의 달인에게 눈을 돌렸다. 나는 히치콕 영화를 많이 봤다. 그중 <현기증>의 광기를 다룬 연출을 사랑한다. 관련한 많은 것이 지금도 효과적이어서 다시 보면서 익혔다.”

 

히치콕이 여성 캐릭터에 금발 배우를 선호한 건 잘 알려졌다. 리 워넬은 세실리아 역에 금발의 엘리자베스 모스를 캐스팅하여 주디가 스카티의 집착에 시달리듯 투명 인간이 된 남편에게 쫓기는 설정으로 <인비저블맨> 을 투명인간 버전의 <현기증>으로 연출했다. 영화 속 공간으로 <현기증>과 같은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했고 스카티의 고소공포증과 매들린과 주디의 추락사가 연상되도록 세실리아와 남편이 살던 집을 높은 언덕으로 설정한 것도 두 영화 간의 친연성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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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비저블맨> 포스터

 

 

궁금한 건 리 워넬이 왜 <현기증>을 필요로 했냐는 점이다. <현기증>에서 주디를 매들린으로 꾸민 스카티는 매들린이 떨어져 숨진 종탑으로 이동하면서 주디에게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돼”라고 설명한다. 스카티가 언급한 ‘자유’는 매들린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부터의 벗어남이다. 실은 주디가 매들린과 동일인이라는 걸 아는 스카티는 자신을 속인 주디, 아니 매들린에게 책임을 물을 목적으로 문제의 종탑으로 데려갔던 터다. 스카티를 속인 매들린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스토킹하듯 그녀에게 집착했던 스카티에게는 문제가 없는 걸까.

 

<인비저블맨> 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은 <현기증>이 그랬던 것처럼 사건의 발단이 되는 세실리아와 남편이 살던 집, 즉 문제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투명 인간의 남편에게 쫓기던 때와 다르게 세실리아는 금발 미녀의 전형적인 차림새다. 남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세실리아는 그전에 이 집에 와 숨겨두었던 투명 인간 슈트를 입고 남편을 죽인 후 자살한 것으로 꾸민다. <현기증>의 스카티와 매들린의 관계를 역전한 결말이다. 그래서인지, <인비저블맨> 의 ‘매들린’ 세실리아는 남편의 죗값을 묻고 자유를 얻은 당당한 모습으로 집을 빠져나온다.

 

<인비저블맨> 의 제작사 ‘블룸 하우스’는 공포물의 신흥 명가다. 저예산의 공포물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데도 적극적이다. <겟 아웃>(2017)으로 미국 백인 기득권층의 흑인 개조의 욕망을 은유했고 <할로윈>(2018)에서는 여성을 노리는 살인마가 되려 여성에게 공격당하는 결말로 통쾌함을 선사했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여성은 더는 남성의 욕망에 고통받거나 희생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되로 받으면 말로 갚는다, 그렇게 세상은 변했다. 리 워넬이 <현기증>을 생각나게 하는 설정으로 <인비저블맨> 을 만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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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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