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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엄마 아빠를 죽였습니다
엄마 죽이기
하지만 자유의 날엔 늘 잠을 설쳤는데, 꿈에 시달리다 허우적거리며 깨기 일쑤였던 탓이다. 귀신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꿈 속에서 자꾸 엄마 아빠를 죽였다. (2020.03.13)
언스플래쉬
초, 중학생 때, 일주일에 한 번 자칭 자유의 날을 보냈다. 자유라고 하니 엄청나 보이지만 사실은 오롯이 혼자 집을 지키는 날이었다. (지금 요리 실력의 반은 이때 키웠다.) 엄마 아빠가 주말 대신 주중에 보는 주1 부부였기 때문이다. 아빠가 지방에서 일하게 되어 지방으로 이사 가니 일터가 서울로 바뀌고, 서울로 이사 가니 또 지방으로 바뀐 덕이었다. 나는 4년 가까이 친구들과 밤새 보이스톡과 메신저(그땐 파랑색 얼굴과 회색 얼굴이 동동 떠 있는 MSN을 사용했다)를 오가며 자유의 날을 보냈다. 정작 학교에서는 전날 밤 메신저로 수다 떨던 친구를 만나면 함께 졸기 바빴지만.
하지만 자유의 날엔 늘 잠을 설쳤는데, 꿈에 시달리다 허우적거리며 깨기 일쑤였던 탓이다. 귀신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꿈속에서 자꾸 엄마 아빠를 죽였다. 내가 칼을 휘두르거나 총을 쏴서 죽인 건 아니고, 엄마 아빠가 탄 차가 집에 오는 길에 사고를 당하는 식이었다. 꿈이 으레 전지적 작가 시점이듯, 사고 현장에 없었으면서도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멀리서 보고 이후에 다시 주변 어른들로부터 소식을 들은 뒤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끝이 났다. (친척집 더부살이라든가 재산 분할로 인한 싸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 보는 장면까지 안 간 걸 보면 무의식도 죽음이 답은 아니라는 걸 안 듯하다. 결혼 후 생활은 보여주지 않는 해피엔딩 로맨스처럼, 그 이후는 후략한 데스엔딩 가족몽(夢)이랄까.)
아빠 일이 잘 안 풀려서 두 분이 한창 싸우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1 부부면서 언제 싸웠는지 모르겠지만 시점의 불일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기억하는 한 두 분은 대체로 싸워왔으니까. (커서 보니 두 사람은 사랑도 했다. 실제로 사랑이든 아니면 서로 사랑이라고 착각했든 어쨌든 그런 사랑도 있는 거라고, 나중에 비로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진실로 자유롭고 싶었다. 사실 꿈만 꾼 건 아니다. 깨어 있을 때에도 생각하곤 했다. 엄마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는데 소리 내어 말했다가 정말 두 분이 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죽음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았다. 내가 말한 시점과 죽은 시점의 밀접성에 찍혀 있었다. 직접 죽일 상상은 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끝내 싫어하지는 못했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 나의 염치를 덜어냈다. 그럼에도 늘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꾼 날에는 실제로 두 분이 못 돌아오시면 어쩌지, 걱정하며 휴대폰을 신경 쓰곤 했다.
초등학생이 쓴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가 논란이 된 적 있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이렇게//엄마를 씹어 먹어/삶아 먹고 구워 먹어”로 시작하는 동시인데, 초등학생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며 논란이 되었고, 그 결과 시가 수록된 동시집이 전량 폐기되었다. 네티즌의 갑론을박을 보며 나는 혼자 어리둥절했다. 다들 마음속에서 몇 번씩 죽여본 거 아니었어? 나만 그런 거야? 아니면 다들 없었던 일인 척하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SNS에 올렸다. 어떤 분이 자신도 어릴 적에 자주 부모님이 죽는 상상을 했다고, 공감된다고 댓글을 달았다.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아마 이 이야기는 두 분이 살아 계실 때까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체로 와식인간으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