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승한의 얼굴을 보라
마스크 뒤의 얼굴 – 끝내 사람으로 살기로 한 이들
우리가 이 싸움을 이겨내는데 성공한다면, 그건 모두 사람으로 살기로 한 이들 덕분이리라
눈과 귀만 남겨두고 얼굴의 나머지 절반을 가리는 탓에, 마스크는 상대의 표정을 감춘다. 마스크는 그 목적 탓에 감염병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자연스레 서로를 경계하게 만든다. (2020. 03. 02)
대구MBC캠페인 화면
발 디딜 틈이 없던 주말의 번화가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설ㆍ추석 명절에도 보기 어려운 인파의 증발. 상인들은 인파가 사라진 거리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일찍 셔터를 내리고 체념한 발걸음으로 귀가한다. 모든 게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웃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 마스크를 나눠주러 온 동장을 믿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보이는 이들을 믿지 못해 서로의 배후를 묻고, 주장 뒤에 숨겨진 진의를 캐묻고, 쉽게 낙인 찍고 배척하기에 이르렀다. 집 안에만 갇힌 이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없어 남에게 화살을 돌리고 나아가 제 자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공포는 사람들을 저마다의 격벽 안에 가뒀다.
형편이 좋을 땐 누구든 성자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연대를 말하고 공존을 말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룰 걱정이 없을 때는, 모두가 근심 없이 평화를 노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진짜 얼굴은 위기를 직면해 가면을 쓸 여유가 없을 때에 비로소 드러난다. 대구ㆍ경북 지역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증하자, 어떤 이들은 재빨리 대구로부터 넘어오는 교통편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는 대구ㆍ경북 지역의 뿌리 깊은 보수 정치색을 언급하며 이것이 행정력의 차이이고 그래서 투표를 잘 해야 하는 거라는 말을 했고, 더 심한 사람은 그 동안 지역감정을 조장해 온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점잖은 얼굴을 하고 매일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코로나19의 공포 앞에서 가면(mask)을 벗고 마스크(mask)를 쓴 채 생존본능이 시키는 대로 대구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제 공포를 뛰어넘은 이들이 있다. 의료 인프라가 한계치에 다다른 대구ㆍ경북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200여명이 넘는 의료진이 달려갔다. 타지에서 온 의료진들에게 숙박을 제공한 게스트하우스에는 각지에서 보내온 먹거리와 구호물품이 쌓였다. 이렇다 할 도움을 주기가 빠듯한 이들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힘내요_대구경북 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달빛동맹’으로 대구와 오랫동안 친선교류를 맺어온 광주의 시민사회단체들과 광주시는 민관합동으로 ‘광주공동체’ 명의의 성명을 내고는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이라며 대구 지역의 경증 확진자들을 광주에서 격리치료 하겠다고 나섰다. 극한의 두려움과 생존본능을 이겨내고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한 이들 덕분에, 대구ㆍ경북의 싸움은 조금 덜 외로울 수 있었다.
눈과 귀만 남겨두고 얼굴의 나머지 절반을 가리는 탓에, 마스크는 상대의 표정을 감춘다. 마스크는 그 목적 탓에 감염병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자연스레 서로를 경계하게 만든다. 그러나 마스크 뒤에도 사람이 있다. 끝끝내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한 그들의 얼굴을 우리는 오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설령 마스크에 가려 눈 말곤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얼굴이라 하더라도.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