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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 “얼씨(earthy) 드로잉, 들어보셨나요?"

『마음은 파도친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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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 드로잉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지구별에 사는 동안 그리는 모든 드로잉은 지구를 닮은 ‘얼씨’ 드로잉이지 않을까. (2020.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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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 유현미

 

 

작가 유현미는 오랫동안 그림책을 엮어온 편집자였다. 10여 년 전 우연히 드로잉의 매력에 빠져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그림책을 세 권이나 펴낸 작가가 되었다. 그의 그림 속엔 어디에나 더운 숨을 쉬는 생명들이 살고 있다. 길에서 만난 개와 고양이, 텃밭의 작은 식물들, 같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 실향민 구순 아버지의 꿈까지. 생명을 품은 대상에 곧잘 매혹당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쫓는 데 몰두하는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지구적, 요즘 말로 ‘얼씨(earthy)’하다. 불타는 지구, 분쟁하는 국가들, 기생충 같은 인간의 삶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 철학으로서의 지구 사랑과 생명 존중의 마음을 되새겨 보는 선한 즐거움이 『마음은 파도친다』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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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가 쓴 에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림과 함께 글쓰기도 즐기는 것 같다. 평소 그림에 메시지를 잘 남기는 편인가?

 

그때그때 다르다. 현장에서 그리게 되는 드로잉은 저걸 그리자 하는 신호가 뇌에서 손에 도달하기까지 아마 1초도 안 걸릴 듯. 즉흥적으로 그린다. 빠른 드로잉이어서 시간도 얼마 안 걸린다. 그리고 싶도록 마음이 매혹당했던 까닭을 공책에 적기도 하고, 깜빡 놓치고 안 적은 채로 지나치기도 한다. 이번에 책으로 엮으면서 딸려 있는 글이 없던 드로잉도 꽤 있었는데, 그걸 그릴 때의 물리적 조건이나 감정이 되살아나서 글을 쓸 수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던 느낌을 뒤늦게 옮겨 적었다고 할까.

 

주로 어떨 때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나? 책에 실린 그림들 중에 ‘그리는 순간’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그림이 있다면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작다란 드로잉 북과 펜을 늘 갖고 다닌다. 잠깐 걸으러 동네 개천 산책로에 갈 때도 혹시 몰라서. 갑자기 그 순간이 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예를 들면 개구리 드로잉의 경우. 11월 말이었다. 밤에 한 바퀴 걷고 오려고 동네 개천 산책로에 나갔는데, 그 캄캄한 밤에도 드로잉 북과 펜을 잊지 않고 들고 나간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어두운데 무얼 그리겠다고. 그냥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런데! 나 그려주오! 라고 말하는 듯 아직 겨울잠 자러 가지 않은 커다란 참개구리 한 마리가 산책로에 떡~ 나와 앉아 있는 것이다. 나를 보고도 달아나기는커녕 꼼짝도 안 하고. 그래서 분부대로 가만히 그 앞에 쭈그려 앉아 개구리를 그려 나갔다. 상체를 들고 당당히 앉아 있던 첫 모습부터 엎드린 모습,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보여준 옆모습과 풀섶으로 다리 한짝 들이밀며 들어가던 모습, 풀섶에 두어 걸음 들어가 또 잠자코 앉아 있던 뒷모습까지. 개구리를 둘러싼 짙은 어둠 표현은 집에 돌아와서 연필로 칠한 것이다. 현장 드로잉은 말 그대로 그 장소에서 그 순간에 그리는 드로잉이다. 시간을 의식할 새도 없이. 그 동안은 이 세상에 그 대상과 그리는 나밖에 없다. 지극히 밀도 높은 침묵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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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 드로잉’이라는 수식어도 재밌다. 최근 패션계에서는 자연적인 색감을 사용한 얼씨 스타일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었다. 이 책에서 ‘얼씨 드로잉’의 의미는?

 

‘얼씨 드로잉’이라는 주제는 편집이 거의 다 끝난 단계에서 결정된 것이다. 편집장님이 제안하셨는데, 그것이 괜찮고 좋게 느껴져서 덥석 물었다. 영어인 점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영어 earth가 지구, 땅, 흙이라는 뜻이니까 형용사인 earthy도 그런 뜻이겠지 했는데 아뿔싸. 혹시나 하고 사전을 찾아보니 저속한, 세속적인, 심지어는 야비한, 이라는 뜻으로 나온다. 다행히, 그리고 마땅히 흙 같은, 흙내 나는, 이라는 뜻도 있다. 도시의 개천을 포함하여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도시에 살고는 있지만 땅을 밟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인공의 옷을 입지 않은 맨 처음 지구를 닮은 드로잉이 가능할까. 그쪽으로 끊임없이 다가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림으로든 삶으로든.

 

작가는 평소 동식물 생태와 지구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다. 책에 나온 천연기념물 담비 그림이 실물로 본 것을 그렸다는 얘기에 놀랐다. 동식물 보호나 생태 공부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있는가?

 

아이쿠. ‘활동’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창피하다. 전에는 환경단체 회원 활동을 꽤 구체적으로 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텃밭 농사는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고, 도시에 살면서 숨을 쉬기 위해서 한다. 나를 살려 주어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절하는 마음으로 텃밭을 찾는다. 그 작다란 땅에 가면 싱그러운 작물과 힘센 풀은 물론, 골라내고 골라내도 계속 나오는 잔돌부터 늑대거미, 땅강아지, 잠시 길 잃고 헤매는 새끼 꿩까지 사랑스런 동무들을 만날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그곳에 있기만 해도 평화가 얼마간 찾아온다. 인간의 고향은 분명 흙 아닐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가만 보니 텃밭 농사도 환경단체 활동으로 시작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비닐봉지를 안 쓰려고 가방에 한 뼘만 하게 접어지는 천 가방(쇼핑백)을 가지고 다닌다. 개인 물병도 늘 지참. 우리 모두 플라스틱을 덜 쓸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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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얼씨 드로잉 방법을 추천한다면?

 

‘얼씨’ 드로잉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지구별에 사는 동안 그리는 모든 드로잉은 지구를 닮은 ‘얼씨’ 드로잉이지 않을까. 이렇게 답변하면 좀 나이브한가요.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를 그리게 될 것이다. 즉 마음 가는 대로 그리기. 내 마음이 어디를, 무엇을 향하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미루지 않고 그리면 된다. 내 손에 익은 재료로 그리고, 다른 재료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또 그렇게 하면 된다. 꾸준히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절로 되는 것. 좋아하면 계속, 오래 하게 된다.

 

책에 실린 그림 스타일이 아주 다양하다. 간단한 펜화부터 수채, 아크릴, 먹으로 그린 걸개그림까지. 그림 재료는 보통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서 그리나?

 

기준이 없다.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를 쓴다. 현장 드로잉은 주로 펜이나 연필로 그리는데, 풀을 찧어서 풀색을 내기도 하고 먹다 남긴 믹스커피로 장난스레 그려보기도 한다. 6월엔 흔한 가로수인 벚나무 열매로도 그린다. 버찌 과육의 질감과 짙은 보랏빛이 종이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림책 그림의 재료는 책의 주제에 어떤 재료가 적당할지 심사숙고하여 정하고, 때로는 이렇게 저렇게 여러 재료들로 그려 본 뒤에 결정한다. 연필이나 목탄으로만 그린 그림책, 목탄과 수채를 섞어 쓴 그림책도 그려 보고 싶다. 책만 옳게 나오기 위해서라면 무슨 재료인들 쓰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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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 유현미

 

 

작가는 그림책 작가 이전에 편집자였다. 요즘 성인 그림책 독자들이 늘고 있고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은데, 입문을 위해 조언해 줄 것이 있다면?

 

일단 그리기 시작하시라! 충분히 그려서 그림 그리기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몸에 베인 즐거운 습관처럼 된다면 좋겠다. 그러면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마음껏 그림 그리는 기쁨을, 어떤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림책은 이야기가 중요하다. 내가 그림책에 무슨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은지 써 보자. 무엇보다 함께 나누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생명이다. 그림책을 많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야기, 구성 방식 들을 염두에 두고 그림책을 보면 그림책을 더 흥미롭게 창조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림책을 짓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절로 그렇게 된다.

 

 

 

마음은 파도친다유현미 글그림 | 도서출판가지
불타는 지구, 분쟁하는 국가들, 기생충 같은 인간의 삶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철학으로서의 지구 사랑과 생명 존중의 마음을 되새겨 보는 선한 즐거움이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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