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힘겹게 버틴 당신에게
아침 7시 늘 듣는 알람 소리에 잠을 깨고, 자도 자도 풀리지 않는 만성 피로를 등에 업고 출근길을 나선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생판 모르는 남과 눈을 마주하고 가는 지옥철 속에서, 출근 하기도 전 이미 모든 의욕을 상실한다. 출근하자마자 울려대는 사무실 전화기, 상사의 잔소리, 후배의 실수,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지긋지긋한 일들에 치여 정신 없는 오전 시간을 보낸다. 달콤하다 못해 치명적인 짧디 짧은 점심 시간은 맘껏 누리기도 전에 끝나버리고, 다시 또 반복되는 일, 일, 일. 이미 까맣게 해가 진 늦은 저녁, 왜 이러고 사나, 싶은 생각에 우울함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잠에 취하고, 다시 또 아침이 되면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대한민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거 내 얘기인데?”라고 외칠 만한, 평범한 직장인 김모씨의 하루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하루 하루 고달프고 애잔하고 눈물겹다.
뮤지컬 <정글 라이프>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직장 생활의 이야기를 정글에 비유하여 무대 위로 옮겨낸 작품이다. 정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동물과 등장인물의 성격을 결합시켜,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장대 높이 뛰기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은퇴한 동희는, 소속 실업팀의 모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운동선수 생활만 했을 뿐 일반적인 회사 생활 경험이 전무한 동희에게 회사생활은 낯설고, 어렵고, 두렵고 힘들기만 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지만, 신입사원에게 회사는 고달프고 서글픈 공간일 뿐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를 헐뜯고, 견제하고, 갖은 암투가 난무하는 회사 생활 속에서 동희는 회사 청소부인 미화, 소탈하고 푸근한 과장 사수미 두 사람의 위로와 격려 속에 하루하루 힘든 회사 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맡고 싶지 않던 애벌레 수입 판매 프로젝트를 동희가 맡게 되고, 동희의헌신적인 연구 끝에 애벌레 프로젝트는 정부의 지원금까지 얻게 되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상황이 급변하자 회장 아들로 낙하산 인사로 오게 된 오레오 상무와, 오랜 시간 회사를 위해 헌신하며 오레오 상무와 대립각을 이어오는 홍호란 부장은 동희의 애벌레 프로젝트를 통해 각자의 이익을 얻기 위해 검은 음모를 꾸미게 된다.
뮤지컬 <정글 라이프>는 지난 2013년 초연 이후 관객들의 공감을 얻으며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한 때 회사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 <미생>처럼, ‘정글’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직장인들의 오피스 라이프를 리얼하게 풀어낸 뮤지컬 계의 미생으로 주목 받았다.
<정글 라이프>는 무대의 변화를 줄 수 없는 소극장 뮤지컬의 한계를 벗어 나고, ‘정글’의 느낌을 주기 위해 긴 바를 이용하거나, 파티션으로 나뉜 듯한 구분성을 통해 2층 높이의 무대를 똑똑하게 활용해낸다. 배우들은 역동적으로 2층 무대와 1층을 넘나들며 ‘정글’ 에서 동물들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파워풀한 넘버와, 화려한 조명을 통해 극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다소 알맹이 없이 이어지는 스토리 전개가 ‘누구나’ 공감하기에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동희의 프로젝트를 두고 이어지는 회사 내 암투 부분 자체도 조금은 과장 되긴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전개가 지나치게 길게 그려지고, 단순한 농담만을 주고 받는 장면들은 작품을 루즈하게 만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캐릭터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명분이나, 캐릭터의 자체적인 서사성도 조금 더 다듬어야 하는 부분이 보인다.
작품의 말미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동희는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벗어 나지않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두렵지만, 그 보다 더 큰 설렘이 담긴 표정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지난날 두려움으로 가득했지만 이제는 희망찬 표정으로 가득한 동희처럼, <정글 라이프>는 오늘 하루도 힘겹게 버틴 당신에게 내일은 오늘 보다 조금 더 큰 행복과 설렘이 찾아 올 거라는 작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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