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웹툰 평론가 “독해력의 쾌감을 찾아야 한다”
평론가와 함께 하는 웹툰 덕후 토크 ‘웹툰 덕톡’
만 편이 넘는 작품 중 나의 인생작을 만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자신이 어떤 작품을 먼저 보는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2020. 01. 31)
예스24가 웹툰 평론가 이재민과 함께 진행한 웹툰 덕후 토크 ‘웹툰 덕톡’이 지난 1월 21일(화) 예스24 홍대 중고서점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진행을 맡은 이재민 평론가는 웹툰 팟캐스트 <웹투니스타>의 진행자로 2017년 신인만화평론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평론을 시작했다. 이재민 평론가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정말 놀랐다. 참석자들이 즐기는 웹툰이 워낙 다양했을 뿐 아니라 장르도 다 달랐다”고 말했을 정도로 웹툰을 깊고 넓게 읽는 독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웹툰을 사랑하는 ‘덕후’를 자처한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웹툰을 즐기는 자기만의 방법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등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확장하고 있는 웹툰 산업에 대한 의견, 저작권 문제에 대한 고민, 늘어나는 플랫폼의 미래, PPL 등 전문적인 주제에 관해서도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인생 웹툰을 만나기 위해서는
2013년 7월 팟캐스트를 시작할 당시 ‘네이버’와 ‘다음’에 연재되는 웹툰을 모두 챙겨 보았다는 이재민 평론가는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웹툰이 총 198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레진코믹스’가 등장했고, 작품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재 유의미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플랫폼은 30개 내외로, 연재 작품수는 11,400개로 추정한다. 만화 산업 규모는 약 1조원 규모로 보는데 이에 대해 이재민 평론가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발표를 보면 두 회사만으로도 1조가 되는 듯하다. 아마 올해에는 산업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재민 평론가는 만 개가 넘는 연재작 가운데 어떻게 하면 내게 맞는 작품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썸네일이 예뻐서? 친구가 추천해서? 트위터에서 보고? 고전 명작이라서? 과연 어떤 게 좋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적극적으로 작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1년 연재하면 52편이 쌓이는데 주 2회 연재였다면 104편이다. 3개월 봤는데 아직도 <덴마>를 다 못 본 사람이 주변에 있다. ‘재미있다고 하는데 너무 많네’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만 편이 넘는 작품 중 나의 인생작을 만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자신이 어떤 작품을 먼저 보는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장르, 주인공, 이야기, 배경, 그림체, 좋아하는 작가, 연재처 등 고려할 사항이 많다. 내 경우 공포를 잘 못 보고, 쎈 캐릭터를 좋아한다. 의외로 그냥 남들이 보니까 보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원하는 작품이 언제, 어디서 연재되는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의 의견이 어떤지 들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재민 평론가는 수동적 취향과 능동적 취향을 구분했다. “취향이라고 착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남들이 다 보는 것, 버릇처럼 보던 것 등을 수동적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찾아냈다기보다 주어진 취향에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취향이 굳어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어느 작품에서 이를 ‘오타쿠의 노화’라고 표현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흡수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낯선 설정을 공부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빠르게 변화한다. 연출만 해도 그렇다. 2-3년 전과 비교해도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미지는 점차 커지고, 간결해진다. 색은 선명해졌고, 일명 ‘끊기신공’이라고 할 정도로 서사의 흐름도 이전과 차이가 있다. 이유가 뭘까. 이재민 평론가는 “지난 10년간 가장 역동적으로 변한 것이 웹툰”이라고 평가하며 책으로 즐기던 출판만화에서 PC로 즐기던 웹툰, 이어 모바일로 보는 웹툰의 변화 과정을 짚었다.
“책은 구매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콘텐츠로 묶여 있다. 그런데 지금 내 스마트폰에 깔린 어플을 생각해보자.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웹툰 어플만 해도 15개가 깔려 있다. 결국 독자들은 웹툰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생 웹툰을 만나기 위해서는 왜 웹툰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만화는 예술이 될 수 있다
“웹툰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이재민 평론가는 이런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눠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작품을 내 것으로 소화하고, 나누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읽고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웹툰 <가담항설>을 꼽았다.
“<가담항설>에는 “결계를 읽고 풀어내는 게 바로 독해력이죠”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작품에서는 문자를 마법처럼 쓴다. 그걸 해석해내는 ‘독해력’의 쾌감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웹툰을 보면서 그 즐거움을 느끼면 어떨까. 가령 영화 <어벤져스 1>에 지나가듯 토르, 호크아이, 블랙위도우의 방 설계도가 나온다. 그걸 팬들이 찾아냈다. 단순히 이런 숨은 장면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읽어서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취향에 맞는 작품을 보고, 자신이 아는 것과 연결을 시켜, 잘 정리해 공유하는 것. 이재민 평론가는 이 과정을 통해 “하위문화였던 만화가 예술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왜 그 작품이 재미있느냐?”라는 질문에 주인공의 맥락과 생각을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만화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해석의 두께가 쌓여야 한다. 『사브리나』 는 맨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그래픽노블이다. 국내에 2019년 출간되었다. 이 책의 추천사를 박찬욱 감독과 이동진 평론가가 썼다. 만화 쪽에서는 아무도 추천사를 쓰지 못한 것이다. 나는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거라고 생각한다. 웹툰이라는 만화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과 교차될 때, 웹툰과 웹툰 간 해석이 교차될 때 우리는 작품의 다양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평론가와 나누는 ‘덕톡’
상업성 높은 작품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이 웹툰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고 보나?
산업화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면 수익을 달성해야 하고, 그를 위해 여러 기술도 사용될 텐데 그것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긴 하다. 이때 독자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독자들이 어떤 작품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피드백을 줘야 작가도 그런 작품을 만들 용기를 얻고, 플랫폼 역시 그 작품을 선택할 이유가 생긴다. 만화는 늘 있어 왔다. 규모의 차이고, 아직 1조원 시장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긴 하다. 그렇지만 만화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낙관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
댓글을 작품 감상에 얼마나 반영하나?
나는 내 판단으로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아는 것과 작품을 연결시키려 할 때 댓글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작가들에게도 댓글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칭찬 댓글이든, 비판 댓글이든 창작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댓글 시스템은 작가와 독자가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작품은 최소한 한 달 전에 그린 것이다.
많은 웹툰의 연재 주기가 일주일 정도다. 독자에게 일주일은 길게 느껴지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나?
어려운 이야기다. 이미 웹툰 시장은 일주일에 한 편으로 굳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량은 점점 많아진다. 내가 2013년에 198개의 작품을 다 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컷수가 40컷 내외였던 이유가 크다. 나는 40컷에서 최대 50컷 내외가 컬러로 그릴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50컷이 넘어가면 물리적으로 힘들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에 10컷을 그려야 하는 셈인데 스토리까지 풀면서 매일 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게다가 작가에게는 명절도 없다. 극단적으로 주장하자면 아예 사전제작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플랫폼도 만족하고, 작가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야 작가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오픈마켓 플랫폼이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플랫폼의 한계를 어떻게 생각하나?
다양한 작품 개발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들었다. 큐레이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 안 볼 것 같은 작품을 플랫폼이 추천해서 빠지게 되는 것을 ‘넘어간다’고 표현하지 않나.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건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다만 ‘딜리헙’ 같은 곳은 타깃이 아주 명확한 플랫폼이다. 또 ‘포스타입’은 추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아주 적극적이다. 창작자를 이 플랫폼에 붙잡아 둘 방법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어떻게 유료 웹툰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다. 추천작을 부탁한다.
『가담항설』 을 보면 진짜 작가의 전작을 보고 싶어질 것이다. 정말 진지한 작품이다. 『명탐정 코난』 을 진짜 좋아했는데 완결이 안 난다. 처음 이 작품을 본 게 9살 때였는데 지금 30대다. 인생과 함께 한 작품인데 이제는 놓아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웃음)
가담항설 1랑또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조선시대를 모티브로 한 배경에 판타지 요소를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네이버 별점 만점 화제의 웹툰이다. 돌에서 사람으로 변한 ‘왕에게 내가 아는 것을 전하러 가는 것’이 천명인 ‘한설’과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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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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