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책읽아웃] 짜장면을 이해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G. 문보영 시인)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19회) 『준최선의 롱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예술에 빠져있을 때는 시를 잘 쓰고 싶으니까 시에 전념하고 그래서 일상을 못 살고, 그런데 시마저 없어졌을 때는 완벽해서 무반응인이 돼서 살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2020. 01. 23)

[채널예스] 인터뷰1.jpg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번아웃되지 않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며 간 보기. 준 최선으로 비벼 보기.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최선은 관성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에 관성이나 습관이 될 수 없지만, 준최선은 관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준최선이 근육에 배면 어떤 일을 해도 디폴트 값으로 준최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선과 한 집에 살면 삶이 고달파지므로, 옆집이나 이웃 정도로 거리 유지를 하고 달걀 꿀 때만 최선이네 집에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800x0.jpg

                                                               

 

 

<인터뷰 - 문보영 시인 편>


오늘 모신 분은 ‘일상을 잘 살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입니다. 글을 쓰고, 춤을 추고, 일기를 쓰면서 평범한 하루를 잘 살아내고 계신 분이에요. 그 이야기를 담아 일기를 우편으로 보내고,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운영하고, 1인 문예지 <오만 가지 문보영>을 발행하고 계시죠. 이번에는 “무너진 일상을 복구하면서 쓴 일기들”을 모은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으로 독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문보영 시인님입니다.

 

김하나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문보영 :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문보영입니다.


김하나 : 유튜버이기도 하시죠. 힙합퍼이기도 하시고요.


문보영 : 네(웃음).


김하나 : 아주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고, 본인 스스로는 ‘활동’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문보영 : 네, 맞아요.


김하나 : 처음에 브이로그를 시작하시게 된 게 무너진 일상을 복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신 걸 읽었어요. 브이로그라고 하는 것은 남한테 보여지는 거잖아요. 내 일상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인데, 여러 가지 방편들 중에 브이로그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문보영 : 브이로그를 하면 일상을 보여준다는 약속을 하는 거잖아요. 약간 숙제를 한다는 기분으로 시작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는 밥을 먹는 것도 힘들고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보여주기로 약속하면 어떻게든 밥을 먹게 되고, 편집하면서 그걸 볼 때 ‘내가 잘 먹고 있네’라고 나한테 확인시켜주고, 그런 반복된 활동으로 일상을 복구시켰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리고 팔로워들이 있고 조회수가 높아지면 사람들이 기다릴 수도 있고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니까 ‘내가 밥을 잘 먹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겠네요.


문보영 : 맞아요. 그런데 팔로워 수가 아주 점진적으로 늘어서 아직까지 그런 부담은 많지는 않고요(웃음). 취미에 가까운 것 같아요.

 

김하나 : 브이로그를 시작하시기 전에 일상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시가 떠나고 나면 나한테는 무너진 일상만이 남아있더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시가 나한테 와 있는 동안에는, 일상이 무너진 것보다 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거네요?


문보영 :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시가 가장 중요했다가 제가 잠깐 아팠을 때 그리고 다시 시로 돌아왔을 때, 둘 다 지금도 시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중요함이라는 부담이 예전에는 저를 아프게 했다면 지금은 아프게는 안 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렇군요. 『준최선의 롱런』 에 나와 있던가요, 맨 처음에 쓴 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썼던 시였다고 하셨잖아요. 숙제 같은 거라서 쓰셨나요, 아니면 그냥 써보신 거였어요?


문보영 : 숙제여서 썼던 거였어요. 그때 한 편 쓰고 다시는 안 쓰고 대학생이 돼서 시를 알게 됐어요.


김하나 : 그 계기는 뭐였어요?


문보영 : 그때는 제가 교육학과 학생이니까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우연히 국어교육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시인이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이해가 안 되는 말을 계속 내뱉으시는데 한편으로는 뭔가 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 분이 소설 수업을 하셨는데 저도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니 자신은 시인이라고 밝히시면서 문예지 한 권을 던져주셨어요. 펼쳐 보니 더 이상한 사람이 많은 거예요(웃음). 더 아름답고. 그때 ‘이런 게 있네’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세상과 덜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런 말씀을 하셨었죠. ‘설명하기에 되게 지치는데,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것의 쾌감이 있다.’ 또 그런 표현도 있었죠. ‘시는 인과관계가 얼토당토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이전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말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저희끼리는 찰진 말들을 ‘찰언’이라고 하는데, 시에 대한 찰언을 많이 하셨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왔던 표현이었는데 ‘시인님, 시가 너무 어려워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는 질문에 ‘짜장면을 이해해서 짜장면을 좋아하십니까, 짜장면이 맛있어서 좋아하십니까?’ 이렇게 대답을 하셨는데요. ‘찰언 제조기’이기도 하신 것 같아요(웃음).


문보영 : 감사합니다(웃음).

 

김하나 : 작년에 두 권의 책이 같이 나왔죠. 『준최선의 롱런』 은 11월에 나왔고, 5월에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이 나왔는데요. 제가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은 진짜 큭큭 대면서 읽었거든요. 이 책은 불안정한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덜컹거리는 데에서 오는 웃긴 포인트가 있잖아요. 이어서 나온 『준최선의 롱런』 같은 경우에는, 그 사이에 쓰인 시기의 차이도 있겠거니와,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문보영 : 네, 많이 바뀌었어요.


김하나 : 어떤 부분은 정리가 됐고, 어떤 부분은 춤과 브이로그와 매일의 일상을 구축함으로 인해서 단단함이 생긴 것 같고요. 두 권의 책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문보영 : 별 일은 없었는데요. 첫 번째 산문집이 나오고 나서 ‘되게 웃기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그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어떤 글을 썼을 때 누가 큭큭 대면서 읽었다고 할 때 가장 쾌감이 크거든요. 글을 처음 쓰게 됐을 때도 그게 좋아서 썼고, 좋아하는 작가들도 그런데요. 어떤 면에서는 내가 너무 유머에 의존했나 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슬픈 이야기를 가볍게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또 제가 어느 정도 차분해지면서 누군가를 웃기려는 욕망이 잠깐 줄어들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김하나 : 다른 인터뷰를 읽어 보면, 시를 쓸 때는 어깨에 힘을 주고 최선을 다해서 쓴다고 말씀하셨죠. 시는 참 ‘별 거’이겠네요. ‘그게 별 거야?’라고 이야기할 때의.


문보영 : 그게 매일 바뀌기는 하는데요. 어제 고흐에 관한 영화를 봤어요. 거기에 고흐와 고갱이 싸우는 부분이 나오는데, 싸우는 이유 중에 하나가, 고흐가 엄청 성급하게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붓질도 과하게 하고 물감도 덕지덕지 칠하고. 그런데 그 영화에서 고갱은 되게 천천히 차분하게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그래서 둘 사이에 속도에 대한 의견 대립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고흐는 정말 최선을 다하는 거고 고갱은 준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웃음). 다 보고 나니까 ‘최선은 둘 다 다하고 있고 혹은 준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지만, 그냥 스타일이 다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시를 쓸 때 남들보다 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전혀 아니고, 제가 시를 엄청 빨리 쓰거든요. 한 편을 쓸 때 앉은 자리에서 쑥 써야 성이 차요. 어떤 분들은 천천히 한 땀 한 땀 쓰기도 하잖아요. 그게 최선을 다 하고 안 하고의 차이보다는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시인님이 시를 쓸 때 아주 빠르게 시 한 편을 써내려가는 찰나의 집중력이든 뭔가에 탁 가닿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상을 넣어버린 걸 수도 있잖아요. 그럼으로 인해서 일상이 무너졌는데, 지금은 시와 시인님이 ‘잘 지내보자, 우리 롱런을 해보자’ 하고 거리를 맞춰가고 있는 때이기도 한 것 같아요.


문보영 : 네, 지금은 안 쓰니까 거리라고 할 게 없기는 한데요(웃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특정한 개인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트라우마가 생기면서 우울증이 온 케이스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일상이 무너졌다가 조금씩 여러 가지를 하면서 치유가 되는 계기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어떤 친구랑 식당에 갔는데 국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거예요. 친구가 되게 불쾌해했는데 저는 ‘그게 불쾌할 수 있단 말이야?’ 하고 놀랐어요. 놀라는 저한테 놀랐던 거예요. 그때 제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모든 것에 반응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고요. 예술에 빠져있을 때는 시를 잘 쓰고 싶으니까 시에 전념하고 그래서 일상을 못 살고, 그런데 시마저 없어졌을 때는 완벽해서 무반응인이 돼서 살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렇군요.


문보영 : 그래서 일상을 조금씩 살아내면서, 그 글이 『준최선의 롱런』 에 담겨서 조금은 건강하고 차분해진 느낌의 책이 나온 것 아닐까 생각돼요.

 

김하나 : 『준최선의 롱런』 이라는 제목이 볼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삶의 방식 자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고 ‘준최선’이라는 말 자체가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문보영 : 어떤 기자 분은 ‘준최선의 홈런’이라고 잘못 기억하고 계시기는 한데(웃음), 그것도 너무 좋고요. 뭐든 ‘준’을 붙이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너 누구 좋아하지? 사랑하고 있지?’ 할 때도 ‘준사랑하고 있지’라고...


김하나 : ‘나는 준시인이야’(웃음). 너무 편하네요.


문보영 : 네, 되게 편해져요(웃음). 뭔가 유감이라고 말할 때도 ‘준유감이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뭔가 발을 빼면서 하지만 거기에 발은 담그고 있고, 되게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만 뭔가는 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김하나 : 그게 더 재밌어지는 건 ‘최선’에 ‘준’을 붙였기 때문이죠. ‘준최선’이 대충 하는 건 아니잖아요. 차선도 아니고, 차선보다 높은 데 있는 것 같거든요. 되게 묘한 단어네요. 이야기를 해볼수록.

 


 

 

준최선의 롱런문보영 저 | 비사이드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삶은 ‘무의미의 축제’라 생각하고 최선과 준최선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좋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닌 오직 ‘오늘의 나’를 위해 숨 고르고 ‘롱런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 더 끈질기고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