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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꿈꾸는 모든 ‘빡빡머리 앤’에게

『빡빡머리 앤』 6인의 청소년문학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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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꿈꾼다면 눌린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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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고정욱, 김선영, 박상률 / 아래 박현숙, 손현주, 이상권
 

 

청소년문학을 대표하는 6인의 작가들이 최근 사회, 문화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페미니즘’에 대해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지워야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끊기고, 꿈꿔 왔던 일들을 그만두고, 거추장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화장을 하고…


그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부당함과 불평등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겪는 이 모든 일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보통의 여성이라면 이 책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빡빡머리 앤』 6명의 저자와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페미니즘은 과연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삶의 태도가 필요한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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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페미니즘’은 무엇인가요?


고정욱 (「빡빡머리 앤」) ㅣ 저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저는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평생을 시달렸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비장애인들의 시선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여성 차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여성이라고 차별하거나 편견으로 대할 자격은 없습니다. 여성 없는 사회,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곧 남성 없는 사회, 남성도 차별받는 사회, 남성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라는 뜻입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는 목숨과도 바꾸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빡빡머리 앤」은 한 여학생이 자신의 꿈을 향해 당차게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데 성별이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장애가 있다고 꿈까지 작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머리카락은 자르면 또 자랍니다. 청소년들의 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무럭무럭 다시 자라나야 합니다. 중요한 건 결단입니다. 더 중요한 건 결단을 통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차별과 편견에 개의치 않는 여학생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작가의 말’에서 “여성이라서 혹은 남성이라서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라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요?

 

김선영(「언니가 죽었다」)ㅣ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혹은 태어나 보니 결정되어 있는 것이 더러 있습니다. 성별도 그중 하나이지요. 오랫동안 여자 또는 남자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할 무게가 많았습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가정 내에서 또는 사회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이기 때문에 우선시되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페미니즘은 평화주의입니다. 어느 한 쪽의 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페미니즘입니다. 적대시하거나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지금 어느 한쪽의 목소리가 크다고 느껴지는 건, 그간 다른 한쪽의 목소리가 작았다는 뜻이고 그만큼 눌려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눌린 자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꿈꾼다면 눌린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빡빡머리 앤』 의 소설들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사실 ‘여성’으로서 살아내는 삶을 직접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진정으로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달려나가는 각각의 ‘나’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페미니즘의 본질 역시 ‘나다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박상률 (「파예할리(그래 가자)」)ㅣ 무슨 ‘~즘’이나 ‘~주의’가 구호가 되어 요란해지면 요란할수록 인간을 더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즘’이나 ‘~주의’는 인간을 움츠러들게 하지 않으면서 본디 이루고자 했던 목적을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면서 튼실하게 스며들게 해야 합니다.


사실 페미니즘은 구호가 아닙니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하는 것. 그게 페미니즘의 최종 목표 아닐까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사람을 되찾는 것. 그게 진정한 페미니즘일 것입니다. 「파예할리」의 해미는 자신을 되찾습니다. 저는 「파예할리」에서 가장 ‘해미다움’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해미다움’을 찾는 것이 사람을 찾는 일이라 여겼지요.


책 속에 “어느 날 돌아보니 불평등에 꽤 익숙해져 있는 내가 보였다.(129쪽)”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선생님께서 겪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억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박현숙 (「분장」)ㅣ ‘평등’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은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평등을 외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불평등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기도 하지요. 어느 날 우연히 하나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이면서도 여자이기 때문에 억울함을, 분함을, 슬픔을 묻고 싶어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건은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요. 그 날 기사 중 ‘2차 피해’라는 글씨가 유독 눈에 들어왔었고 그 글에, 나는 불평등에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분장」입니다. 또 다른 현진이와 천경이에게 위로를 보내며, 그들이 이 글을 통해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불평등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빡빡머리 앤』 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혹은 누군가의 기준대로가 아닌 자신이 그리고 싶은 미래를 마음껏 꿈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카롱 굽는 시간」의 주인공 ‘준성’ 역시 개명까지 불사하면서 마음속에 품어 왔던 소중한 꿈인 파티시에에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지요. 선생님께서도 이처럼 최근에 도전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가요?

 

손현주 (「마카롱 굽는 시간」)ㅣ 저도 준성이처럼 개인적으로 꼭 도전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마라톤에 관심이 많았는데 늘 참여하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어요. 연습까지는 했는데 막상 마라톤 행사에 참여하려고만 하면 여러 가지의 이유로 머뭇거리게 되었지요. 작품 속 준성이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시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간직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새해에는 가장 짧은 구간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그 도전이 나를 뛰어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작품 「넌 괜찮니?」는 앞의 다섯 작품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어떤 일을 직접 겪거나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폭행 사건을 접한 딸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요. 의도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이상권 (「넌 괜찮니?」)ㅣ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당사자가 아닌, 그 가족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쓴 글입니다. 비록 직접 당하지는 않았어도 가족이 그런 일의 가해자가 되면 이건 상황이 달라지는 거잖아요. 이 글의 주인공처럼 청소년이라면 오히려 더 그 아픔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서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피해자인 셈이지요. 그래도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지요.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시나요?

 

‘내가 이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라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학이 어떤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해보게 할 수는 있지요. ‘내가 만약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할까?’ ‘만약 우리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그런 일에 휩싸인다면 어떻게 할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라도 그런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 고정욱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가 대표작. 특히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선정 도서가 되기도 했다.

 

* 김선영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밀례」로 등단했으며, 2011년 『시간을 파는 상점』으로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 박상률


한국 청소년문학의 시작점이라 불리는 소설 『봄바람』은 성장기를 거친 모든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8년엔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 박현숙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동화작가가 되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았고, 제1회 살림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아디닭스 치킨집』 『우리 동네 나쁜 놈』 『어느 날 목욕탕에서』 등이 있다.

 

* 손현주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등이 있다.

 

* 이상권


작품으로 반려견 안락사 문제를 다룬 『개재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가치에 대한 문제를 다룬 『숲은 그렇게 대답했다』, 청소년들에게 ‘탄산음료 같다’는 평을 들은 에세이 『난 멍 때릴 때가 가장 행복해』 등이 있다.

 

 

 

 

 


 

 

빡빡머리 앤고정욱, 김선영, 박상률, 박현숙, 손현주 저 외 1명 | 특별한서재
‘여성’, ‘남성’에 갇히지 않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틀림’이 아닌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하려는 사려 깊고 너그러운 자세, 나아가 그 누군가를 오롯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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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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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 앤

<고정욱>,<김선영>,<박상률>,<박현숙>,<손현주>,<이상권> 공저10,800원(10% + 5%)

여섯 편의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여성으로서 살아내는 삶을 직접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으로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달려 나가는 각각의 ‘나’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국 페미니즘의 본질은 ‘여성’에 주어진 무언가를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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