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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영의 잘 읽겠습니다] 그냥 좋은 것

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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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러니까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앞에서만큼은, 왠지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그냥 좋다고. 이주란의 소설은 그냥 좋다고 말이다. (2020.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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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 이상하지?”⑴라고 이주란의 소설은 묻곤 했다. 나 너무 이상하지 않냐고. 성격도 이상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친구도 없고 인기도 없고 돈도 없고 못생겼고 뚱뚱하고 너무 잘 울고 의존적이고 매번 실수하고 언제나 버림만 받는 나. 그러니까... 나는 평범하지 않다고 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평범하게 살려면 필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 같”⑵은데 나에게는 처음부터 그것들이,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것들이,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게 너무나 힘들다고. 그래서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럽고 미칠 것만 같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던 이주란의 소설은, 그러나 두 번째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문학동네, 2019)에 이르러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말이다.

 

엄마와 조카 송이와 ‘나’. 이렇게 세 사람이 한 가족으로 살아간다.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선배네 부모님이 운영하는 작은 서점에서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하고 있는 ‘나’의 일상은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소소하게 흘러간다. 매출로만 보면 없어지는 게 맞는 서점에서 청소를 하고, 퇴근하면 송이네 학교 돌봄교실에 들러 송이와 함께 집에 오고, 얼마 전에 결혼한 친구 P의 집에 놀러가고, 송이가 파자마 파티를 한다며 데려온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주고, 근처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준호씨와 좋아하는 작가의 낭독회에 놀러간다. 그런데 소설은 ‘나’가 살아가는 매일의 똑같은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도 ‘나’가 겪었을 힘들고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족에 아빠는 왜 없는지, 죽은 언니와의 마지막 순간이 어땠기에 그토록 잊고 싶어 하는지, 전남자친구로 추정되는 M은 왜 떠나간 것인지, 지난날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유는 무엇인지까지도.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져 묻지 않게 된다. 그것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그래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파악하거나 재단하기보다는,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얼마나 힘들고 끔찍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지나간 일이니까 괜찮다고, 지금 사랑하는 엄마와 조카 송이와 함께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중요한 것은 감기몸살에 걸려 끙끙 앓는 나를 간호해주는 송이가,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라며 선물과 함께 휴가를 주는 사장님이, 버스가 어딜 지나치고 있는지도 잊을 만큼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준호 씨가, 그리고 어버이날에 떡볶이, 막걸리, 아침햇살, 카네이션을 사두고 모여 앉아 죽은 언니를 떠올리며 함께 울고 싶은 만큼 우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 덕분에 예전엔 참 싫었던 봄이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렇게 ‘나’가 천천히 무언가로부터 회복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그 느리고 단단한 과정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 독서는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 엄마는 여전히 “미안해, 엄마가 보통으로도 못 키워줘서”⑶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에 대꾸하기보다는, 그저 우리 같이 사니까 좋다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상’가족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이모가 좋아서 성을 김씨에서 조씨로 바꾸고 싶다는 송이를 통해 말해주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송이가 “눈코입이 예쁘다기보다는 그냥... 송이는 그냥 예뻤다” ⑷고 말한다. 이주란의 소설을 읽다보면 사람 사는 일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하기보다는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평론을 쓰면서 이주란의 소설에 대해서 이러저러하다고 분석해본 적이 몇 번 있지만,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러니까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앞에서만큼은, 왠지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그냥 좋다고. 이주란의 소설은 그냥 너무 좋다고 말이다.


(1)「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한 사람을 위한 마음』  109쪽)
(2)「일상생활」(같은 책, 132쪽)
(3)「한 사람을 위한 마음」(같은 책, 18쪽과 41쪽)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주란 저 | 문학동네
담담한 듯하지만 위트가 반짝이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들. 현대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등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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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인아영(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비평집 『문학은 위험하다』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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