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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1월 우수작 - 파전을 부치듯 편지를 부치자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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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파전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둘 다 부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비가 오면 가끔씩 생각난다는 것도 비슷하다.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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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1월호 주제는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입니다.

 


편지와 파전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둘 다 부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비가 오면 가끔씩 생각난다는 것도 비슷하다. 주룩주룩, 비가 오면 파전이 부치고 싶어지고, 부치지 못한 편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살면서 가장 많이 편지를 주고받은 건 군대에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을 때였다. 편지 하나를 받으면 화장실에서, 내무실에서, 의경 버스에서 읽었다. 근무 중에 남몰래 편지를 펼쳐보기도 했다. 편지지만 보아도 어떤 내용의 편지였는지 기억할 정도였다. 멋진 편지를 받으면 들뜬 마음에 어떤 답장을 쓸지 며칠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보낸 편지에는 치킨, 피자, 족발 등등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있곤 했으니까. 그래도 힘에 부치는 군대 생활 속에서 편지를 부치는 일은 힘이 되었다. 비 오는 날 부치는 파전이 우리의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것처럼.


 핸드폰과 스마트폰이 생기고 문자와 카톡이 나타나면서, 편지는 아날로그의 유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책상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손편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은 환영받지만 오래된 것은 소중해진다. 편지에 담긴 설익은 미숙함과,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손으로 쓴 글씨와, 종이 위에서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한 흔적들까지, 편지에는 편지에만 담을 수 있는 진심이 있다. 그러니까 조금은 어설퍼도 편지는 편지라서 좋은 것이다. 예쁘게 부치지 못한 파전이라고 해서 꼭 맛없는 게 아니듯이.


2018년에는 12월의 절반 이상을 쿠바에서 보냈다. 쿠바의 도시 곳곳을 돌아다닌 뒤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은 수도 아바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기념품을 사고 모으느라 꽤나 빠듯한 하루였다. 그럼에도 짬을 내어 해보고 싶었던 한 가지는 쿠바의 우체국에서 새해 편지를 써보는 일이었다. 나는 친구 몇몇에게 보낼 엽서를 골라 우체국에서 엉성한 글씨로 편지를 썼다. 편지는 2개월 뒤에나 한국에 도착할 것이었다.


몇 달 뒤, 그 편지를 받은 친구들은 내게 따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답장을 딱히 기대하진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함께 파전을 먹거나, 먹지 않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종종 안부를 묻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건네며 때로는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1년을 함께 보냈다. 편지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새해 편지에 대한 우리들의 답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019년을 편지로 시작한 덕분에 우리는 이런저런 답장을 한 해 동안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이다. 


비가 올 때마다 파전이 먹고 싶어지는 과학적인 이유는 빗소리가 파전을 부치는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각적 연상작용을 통해 자연스레 파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편지를 부치는 일에 과학적인 이유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과학적일 필요도 없으니까. 별일 없어도 파전을 부쳐 먹는 것처럼, 때로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국자로 푹푹 떠서 지글지글 구워보는 것처럼, 편지 한 장을 책상 위에서 부쳐 보면 어떨까. 편지지 위에 마음을 휙- 끼얹고 생각을 조물조물 반죽한 뒤에 펜으로 한술 떠서 얇게 펴보는 거다.


이번에도 몇몇 사람들에게 새해 편지를 써보자고 다짐해본다. 다음 해에도 파전 한 장을 사이좋게 나눠 먹자고, 그들에게 편지 한 장을 은근슬쩍 건네주고 싶다. 편지 같은 파전으로, 파전 같은 편지로, 함께 배부르게 2020년을 살아보자고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만약에, 혹시나 내가 편지를 못 쓰게 된다면 친구들과 일단 파전에 막걸리를 먹고 마시며 새해를 시작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편지는 못 먹어도 파전은 먹을 수 있으니까!



이승용 낮에는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이승용으로, 밤에는 시와 술을 읽고 마시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의 진행자 '능청'으로 살고 있다. 아직은 승천하지 못한 용띠, 1988년생이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yes24.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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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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