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찬이와 섭이, 그리고 진구

마지막 회 편지를 쓰다 보니 깨닫는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이들은 3년간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서울의 골목길을 함께 걸은 기록을 모은 책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을 출간했다. (2019. 12. 18)

1.jpg

 

 

어렸을 때면 연말에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사라고 했다. 반마다 안 사는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쓸모는 다들 알지 못했다. 분명 나도 그 때마다 씰을 사면서, 이런 걸 대체 언제 쓸까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첫 책을 내고, 내게도 독자라고 생각할 분들이 생기고, 그 중 누군가 내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연락할 때까지의 일이다. 지방에 사는 독자 희선 씨와 펜팔 친구가 된 후 예쁜 엽서나 편지지, 카드를 보면 무심코 사고 만다. 해외에 나갈 때면 우표를 사고 싶어진 것도 이맘때의 일이다. 마음 놓고 편지를 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은 참 행복한 일이 아닐까.

 

편지를 쓰다 보니 깨닫는다. 책을 쓴다는 행위는 편지를 쓰는 일과 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내 책을 읽는 누군가는 내가 보낸 편지를 받는 누군가이며, 그가 쓰는 서평은 답장이 된다는 생각 말이다. 여기서 나아가 나는 또 생각 하고 만다. 누군가와 함께 쓰는 책은 어떤 느낌일까. 그것은 어쩌면 한 권의 책에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느낌과 비슷하지 아닐까. 여기, 그렇게 3년간 편지를 주고 받듯 글과 그림을 쓰고 모아 책을 낸 동갑내기 작가가 있다. 김효찬, 정명섭 작가. 별명하여 찬이와 섭이. 이들은 3년간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서울의 골목길을 함께 걸은 기록을 모은 책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을 출간했다.

 

둘은 참 다르다. 책의 프롤로그를 빌려 소개하자면 찬이는 자기 사업을 하다가 그림을 시작했고, 섭이는 바리스타를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찬이는 차 한 잘 마실 시간이면 그림을 뚝딱 그려내지만, 섭이는 온종일 그려도 그림 한 장 완성하지 못한다. 이런 찬이와 섭이가 함께 서울을 걷기 시작했다. 동갑내기의 산책은 늘 둘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 이들에게는 함께 가는 동무가 있었다. 예를 들어, 노진구 아니고 노명우라던가.

 

작년,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 니은서점이라는 작은 동네서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서점을 차린 노명우 교수란 사람이 누군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채널예스>에 연재되는 노명우 교수의 칼럼을 읽고 나서야 “와, 재밌는 칼럼을 쓰시는 서점 주인이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이런 니은서점에 어쩌다보니 가게 됐다.

 

 

2.jpg

 

 

또 정명섭 작가 덕이다. 지난 여름, 정작가는 자신의 또다른 책 유품정리사』 가 나와 북토크를 하게 되었다며 “떡볶이를 사줄 테니 같이 가자”며 나를 비롯해 몇 명을 니은서점에 데리고 갔고, 나는 떡볶이 대신 돈까스를 먹고 니은서점에 갔다가 만화 도라에몽에서 빠져나온 듯한 노 교수를 만나고 만다. 대관절 어디서 저런 옷을 구해 입으셨는지, 바로 옆 책장 가장 높은 곳에 나란히 줄지어선 만화 속 주인공 노진구와 꼭 닮은 코스프레를 한 노 교수에게(의도는 아니었다는데 하필 이 날 나라는 덕후가 서점에 들른 바람에 눈에 띠고 마셨다) 나는 흥미를 느꼈다. 이후 나는 니은서점의 객 중 한 명이 된다. 이때까지 듣도 보도 가도 않은 동네 연신내, 구비구비 골목을 들어가 나온 초록색 페인트칠을 한 작은 서점을 남양주에서 몇 시간을 걸려 몇 번이고 찾았다. 그런 니은서점에서 함께 찬이와 섭이의 북토크가 열린다니 빠질 수 없었다.

 

겨울의 니은서점은 다른 계절과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북텐더들은 제자리에 서서 수수한 웃음으로 객을 맞아주었고, 이런 북텐더를 놀리듯 찬이와 섭이는 귤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동갑내기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운치 넘치면서도 정다워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나왔다가도 다음 순간이면 아, 하고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책의 풍경과도 꼭 닮은 꼴이었다. 북토크가 끝난 후로도 서울 곳곳을 지나치다 문뜩 생각났다는 듯 책을 펼칠 때면 어디선가 찬이와 섭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만 해도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무심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 여긴 서울 아니고 남양준데, 서울의 골목은 한참 먼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지금까지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를 사랑해주신 <채널예스>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정명섭, 김효찬 저 | 초록비책공방
같은 길을 걸으며 두 사람이 어떤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지 들어보자. 재미와 지식이 절묘하게 균형 잡힌 역사책, 공감과 위로를 담은 잘 쓰인 그림 에세이를 함께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정명섭>,<김효찬> 저15,300원(10% + 5%)

“우리는 역사를 만나기 위해 같은 길을 걸었다” 동갑내기 작가의 색다른 동행, 서울의 길을 걷고 역사를 기록하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온 정명섭 작가와 일상의 한 순간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림으로 남기는 김효찬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일 년여..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