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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유병록 시인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짊어진 당신에게”

『안간힘』 유병록 저자 인터뷰 슬픔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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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조금이나마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간힘’이 마치 ‘인간의 힘’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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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병록 시인의 첫 산문집  『안간힘』  은 슬픔을 버티고 슬픔과 함께 살아온 기록이다.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감당하기 어려운 큰 아픔 속에서도 저자는 삶을 쓴다. “불행은 전염병이 아니”라는 깨달음, 아이의 침대를 기부하고 눈물로 돌아오던 길, 아내와 다투고 화해를 결심한 밤. 저자는 일상의 기억을 차분한 문장으로 쌓아나간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앙상한 다리로 그러나 단단하게 한 걸음을 내딛는 자코메티의 조각 <걸어가는 사람>이 떠오른다. 안간힘을 다하며, 인간은 “이제 위로를 찾아서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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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0년 차 첫 산문집을 내셨습니다. 그간의 글들을 묶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그동안 시를 써왔고, 산문을 가끔 쓰기도 했지만 부지런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산문집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 가깝게 지냈던 이하나 편집자님께서 산문집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짐작건대, 산문집을 내는 일이 제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상 산문집을 내기로 하고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내보여야 하는 게 막막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산문을 쓰고 산문집을 내는 과정을 통해서 제가 얼마쯤은 회복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안간힘’이라는 제목과 버티는 인간의 스케치가 있는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슬픔, 위로 등 수많은 단어 중 왜 ‘안간힘’을 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산문집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면서, 제목들과 함께 산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불쑥 ‘안간힘’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살펴보니 제가 ‘안간힘’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는 걸 알았습니다. 노트에 써 보니, 산문의 결을 잘 담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조금이나마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간힘’이 마치 ‘인간의 힘’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으로 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이번 산문집은 작가님의 개인적이고, 깊은 슬픔의 기록입니다. ‘슬픔을 기록한다는 것’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슬픈 일을 겪으면서 ‘도대체 이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싶다가도 한편으로 ‘이 일을 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려 들기 마련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억을 기록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래서 선명하지 않은 흐릿한 상태로만 기억이 난다면, 그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기억을 분명하게 기록으로 옮겨두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작가님께 시와 산문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산문은 ‘유병록’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산문이 제 삶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가는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왜’ 그리고 ‘어떻게’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행복해하는지 보여 주는 장르이겠다 싶습니다. 시는 유병록이라는 ‘인간’에 관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는지에 관해 쓰는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로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42쪽)”이라고 하셨습니다. 위로를 받는 입장이 될 때, 우리는 어떻게 위로에 마음을 열 수 있을까요? 반대로 슬픔의 한가운데 있는 이에게 ‘위로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위로하는 것도, 위로를 받아들이는 것도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겪은 바를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위로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위로가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어쩌면 상대의 상처를 헤집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위로가 자신한테 별 의미가 없으리라는, 아무도 자신을 위로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짐작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나눈 소소한 대화가 정겹습니다. 아내분과 나누는 대화는 작가님에게 어떤 시간인가요?

 

아내와 저는 대화하는 걸 즐거워해서 함께 있을 때면 지치지도 않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오래 이야기하다 보면 아내의 말에서 힘을 얻을 때도 있고, 상처를 받을 때도 없지 않습니다. 작은 칭찬만으로도 기운이 나고, 조그만 질책도 회초리를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함께 살아가고 서로 의지하는 부부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말보다 아내의 말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오래 나누는 게 단점이 없지 않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상대의 이야기에 오래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단단해진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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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말」에서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의 목록이 재미있었습니다. 반대로 작가님이 ‘아끼지 않고, 자꾸만 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어린 시절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동네는 물론이고 옆 동네 어른들까지도 대개는 알고 지냈습니다. 제가 상대를 몰라도 그분은 제가 어디 사는 누구 아들인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습니다. 버스라도 탈라치면, 빈자리가 있는 뒤쪽으로 갈 때까지 줄곧 인사를 하면서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공간에서 살아가는 게 갑갑한 면도 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주 인사를 주고받은 까닭인지 고향을 떠나서 생활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단순히 예의로만이 아니라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혹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면 제가 작으나마 도움이 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주고받는다면 서로 마음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전하고 싶은 독자가 있나요?

 

저와 아내 모두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짊어지고 있다 보니,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도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그래서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 상황이 견디기 어려워서 주변 사람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가깝게 지내던 직장 동료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잘잘못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저더러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자신만의 힘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분들에게 제 책이 작은 용기를 건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나가고 싶으신가요? 작가님의 이후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안간힘』  이 출간되고 나서, 저와 아내를 함께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지난해에 아내의 산문집이 출간되었을 때, 글과 작가가 참 비슷해서 마치 아내가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산문집을 읽으면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저의 모습과 얼마쯤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실의 저보다 글 속의 제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살짝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니, 저는 제가 닿고자 하는 곳에 글을 먼저 가 있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정의로운 모습으로, 더 자비로운 모습으로 저를 그려서 글 속에 담아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에 그려 놓은 모습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 삶 속에서 애썼던 게 아닌가, 그게 제가 글을 쓰면 살아온 인생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렇게 글을 쓰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시, 좋은 산문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유병록


198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를 펴냈다.



 

 

안간힘유병록 저 | 미디어창비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슬픔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안간힘을 내어 써 내려간 치유의 기록이다. 참척의 고통을 겪은 젊은 시인이 “죽음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못내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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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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