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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엄마
<월간 채널예스> 11월호
내가 이십 대가 된 후의 엄마는 식당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며 술로 피로를 달랬고 웃기보단 자주 울었다. (2019. 11. 08)
언스플래쉬
몇 년 전 과거에 머무는 꿈을 꿨다. 작은 방에 젊은 엄마와 어린 언니, 나와 동생이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곳이 과거의 한 장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오랜만에 보는 서로의 얼굴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한참을 웃다가 문득 주름이 없는 엄마의 모습을 찍어 두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으나 화면에 담기지 않았다.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공간에 잠시 머물러 있을 뿐 곧 사라질 테니까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엄마의 얼굴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십 대 소녀인 나?
그 애가 갑자기, 여기,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친한 벗을 대하듯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분명 낯설고, 먼 존재일 텐데.
태어난 날이 서로 같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만으로
눈물을 흘려 가며, 그 애의 이마에 입맞춤할 수 있을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충분하다』 중 「십 대 소녀」 부분
십 대의 나를 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이내 그만두고 만다. 십 대의 내가 어땠고 지금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나는 매우 잘 알고 있으니까. 나 말고 엄마의 십 대가 궁금해졌다. 사진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아닌 엄마가 기억하고 말하는 엄마만의 십 대가.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고작 24년 정도다.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인 서른에 나를 낳았으니 나는 엄마의 삼십 대와 사십 대, 오십 대를 알고 있는 셈이다(이제는 육십 대도 알게 되겠지). 그리고 그 시간 속 그녀는 아주 다채롭다.
내가 초등학생 때의 엄마는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예뻤고 학부모 달리기에서 1등을 하는 날쌘 사람이었다. 하이힐과 검정 옷을 좋아했고 특이한 글씨체로 편지를 써서 냉장고 위에 붙여 두곤 했다. 집엔 화초가 가득했고, 늘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엄마는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가 본 첫 탈브라, 탈제모 여성이기도 했다….
중고등학생 때의 엄마는 술을 자주 마셨다.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문화센터나 노래 교실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나는 친구들이랑 노느라 엄마를 방치했고 그러면서도 엄마가 우리를 방치한다고 생각했다. 다채롭다더니, 이쯤 되니 쓸 만한 기억이 별로 없다. 어쨌든 내가 이십 대가 된 후의 엄마는 식당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며 술로 피로를 달랬고 웃기보단 자주 울었다. 노래를 듣지 않고 편지도 쓰지 않았으며 화초도 키우지 않았다. 더 이상 구두도 옷도 사지 않았다.
육 남매의 장녀인 엄마. 주말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밭일을 돕느라 친구들이 너는 왜 월요일만 되면 얼굴이 더 까매지느냐고 물었다던, 그녀의 십 대는 어땠는지 아주 오랜만에 물어보았다. 하지만 물으면서도 그럴싸한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엄마의 기억력이 점점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때 이랬는데, 기억나? ‘우리 여기 왔었잖아.’ 이런 말을 했잖아.” 때때로 물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랬던 엄마의 입에서 이야기가 술술 쏟아져 나왔다. 찐빵 장사를 하던 집의 친구와 다투면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만 찐빵을 줘서 서운했던 기억, 소시지는 아주 작고 밀가루와 튀김 가루만 가득했던 핫도그를 먹으며 하교했던 기억, 배가 고프면 아무 밭에서나 오이를 따 먹었던 기억 등등(웬일인지 죄다 먹은 기억뿐…).
다들 책보를 가지고 다녔던 때, 할머니가 귀한 첫째 딸에게 사 줬던 빨간색 책가방은 만져 보지 않은 친구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둘째 동생과 분홍색 원피스를 맞춰 입고 나란히 등교했던 길가, 여름마다 집 앞에 있는 강에서 물놀이했던 기억. 엄마가 어릴 땐 그리 가난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제야 처음 알았다.
우리의 대화가 자꾸만 끊긴다.
그 애의 초라한 손목시계 위에서
시간은 여전히 싸구려인 데다 불안정하다.
내 시간은 훨씬 값비싸고, 정확한 데 반해.
작별의 인사도 없는 짧은 미소,
아무런 감흥도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충분하다』 중 「십 대 소녀」 부분
엄마가 어린 자신을 만나면 낯설 거라고만 생각했다. 엄마가 떠올리는 십 대는 이미 다른 기억으로 점철되어 사라지거나 흐려졌고 그래서 거의 타인과 같을 거라고,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아이와 어색하게 마주할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귀엽고 즐겁고 애잔한 기억들을 꺼내 주었다. 아마 지금의 엄마가 어린 엄마를 만난다면 더 많은 걸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지금과 너무 다른 그 애의 키나 피부, 머리카락, 목소리 등을 들으며 잊고 있던 기억을 잔뜩 길어 올릴 수도 있겠지.
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커다랗고 네모진 가방을 메고 핫도그나 찐빵을 먹으며 시골길을 걷는 꼬마를 상상한다. 자신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변해 갈지 까마득하게 모르는 순수하고 해맑은 그 아이를 내가 만난다면 꼭 말을 걸고 싶을 텐데.
내가 몰랐던 엄마의 시간을 잔뜩 듣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혹시 엄마가 잊어버리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 시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함께 기억하겠다고. 그래서 엄마의 이야기를 마음 한편에 꾹꾹 눌러 담는다. 내가 기억력이 아주 좋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기뻐졌다.
충분하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저/최성은 역 | 문학과지성사
시인이 생을 마감한 뒤 유고 시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어쩌면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충분하다”라는 미완성의 문장은 시인이 자신에게,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지막 한마디였으리라.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5년간 일했습니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으며 정신과를 전전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지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입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저/<최성은> 역13,500원(10% + 1%)
『끝과 시작』의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쉼보르스카의 마지막 전언 “충분하다”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존재의 본질을 향한 ‘열린 시선’을 고수하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에서 삶의 비범한 지혜를 캐내는 ‘시단(詩壇)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