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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필까

영화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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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기도 판타지 같기도, 신화이면서 멜로, 호러이면서 드라마, 무엇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영화 <경계선>이 묻는다.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안락한 자리에서 세상과 경계 짓도록 만들었는가. 관념인가, 실체인가. (2019.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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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포스터

 

 

스릴러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어쩌다 보게 되면 후유증이 있다. 악몽도 꾼다. 굳이 왜 영화관에서까지 공포를 맛봐야 하는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한 영화 <경계선>이 공포스러운 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볼까, 말까, 보고 싶다, 무서울 거야, 그러다가 원작의 상상력에 기대를 걸기로 했다. 아름답고 독특한 소녀 뱀파이어 영화 <렛 미 인>의 작가이기도 한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에 대한 신뢰로, 북유럽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을 보기로.
 
수치심과 분노 등의 감정을 냄새로 맡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출입국 세관 직원 ‘티나’는 외모가 눈에 띈다. 누가 봐도 눈코입이 특별하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괴물이라고 여겨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서 백수 남자친구와 산다.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티나의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잠자리도 함께하지 않는다. 외로운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동거한다.
 
티나의 재능 덕분에 불법 밀입수한 물품을 지닌 입국자는 정확하게 적발된다. 게다가 포르노 영상을 담은 메모리카드의 냄새도 티나는 기막히게 맡는다. 인간의 더러운 욕망은 티나의 코에 다 걸리게 되어 있다. 티나는 예의 바르고 정직하게 일하고 살아간다. 적어도 외모가 비슷한 ‘인간 닮은 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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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의 한 장면
 

티나는 입국 구역에 들어선 그에게서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불법 물품이나 범죄의 냄새가 아니다. 이를테면 어떤 흥분을 일으키는 독특한 냄새였다. 곤충을 먹고 사는 ‘인간 닮은 자’의 이름은 ‘보레’. 티나는 보레에게 끌려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이 인간이 아닌 트롤 종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과 어울려 살았고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 착한 딸이었던 티나에게는 충격적인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진다. 벌레도 먹을 수 있고 보레와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대자연을 천진하게 뛰어다닐 수 있다. 티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나체로 대자연을 즐기는 두 티롤의 모습은 그대로 그림이다. 기괴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이 사랑을 하는 사이여서, 더욱 자유롭고 발랄한 느낌을 자아낸다. 특수분장의 효과는 대단했다. 인간을 닮은 자연 속의 트롤은 아름다움을 가르는 판단을 넘어선다. 신화적인 자연 상태 그대로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한가를 알 수 없는 초월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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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의 한 장면

 

 

동화 같기도 판타지 같기도, 신화이면서 멜로, 호러이면서 드라마, 무엇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영화였다. 남자와 여자, 미와 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선명하게 선을 긋지 못할 경계의 모든 것을 다루는 영화 <경계선>이 묻는다.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안락한 자리에서 세상과 경계 짓도록 만들었는가. 관념인가, 실체인가.
 
이란 출신 스웨덴 감독 알리 아바시는 경계인인 자의식으로 원작의 북유럽 트롤 신화에 기대어 수작을 만들어냈다. 캐릭터와 스토리텔링, 영상, 잊지 못할 강렬함을 남겼다. 장르와 연출과 연기까지 올해의 영화로 손꼽힐 만하다. 정말 기기묘묘하다.
 
보레와 티나의 사랑은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파국을 맞는다. 보레는 자신의 종족을 의학 실험의 대상으로 삼으며 괴롭혔던 인간들에게 복수하려 든다. 복수하는 방식도 충격적이다. 역겹고 더러운 소아성애자 인간들의 배후에서 그들이 자멸하도록 추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기생충처럼 지구의 모든 걸 써먹어요. 인류 전체가 병폐예요”라고 보레는 주장한다. “모든 인간이 악마는 아니에요.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맞서는 티나는 더 이상 같은 종족의 영역에 놓이지 않는다. 진실을 꿰뚫는, 편견을 벗어던진 티나는 온전히 그 자신이다.
 
요양병원의 아버지에게 정신병원에서 죽어간 친부모 이야기를 듣고 본래 이름 ‘레바’를 찾은 티나는 혼란과 분노 속에서 방황한다. 부모의 묘를 찾아나선 티나의 상실감이 묵중하게 내려앉는다.
 
마침내 돌아온 자신의 집 앞, 티나는 트롤 종족의 갓난아기를 발견한다. 티나는 그 아기의 엄마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묻는다. 판타지를 현실로 환원하는 질문을 던지는 건, 선한 티나가 너무나 인간적이었으므로, 휴머니즘에 말을 붙여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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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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