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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 PD와 김용균씨의 얼굴 : 밟고 밟힐 필요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빛이 어둠을 이기고 사람이 차별을 이기는 길
그의 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 25일, 방송국들이 밀집한 서울 상암동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행사 ‘다시는’이 열렸다. (2019. 10. 28)
“한빛이는 밟고 올라서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죽었죠.” 아들을 떠나 보내고 9개월이 지난 무렵,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이용관 씨는 이렇게 말했다. 2016년 10월 26일,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일하던 tvN 이한빛 PD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드라마 제작 중간에 계약직 하청 스태프들을 일방적으로 교체하면서, 이한빛 PD에게는 기존 스태프들에게 선지급되었던 돈을 반환할 것을 독촉하는 업무가 주어졌다. 노동 착취에 부당한 지시라고 목소리를 내보았지만, 드라마 제작현장의 관행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적응자 취급을 당했다. 드라마의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4일 뒤, 이한빛 PD는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중간관리자로서의 삶은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故 이한빛 PD 페이스북에서
그의 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 25일, 방송국들이 밀집한 서울 상암동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행사 ‘다시는’이 열렸다. 이한빛 PD의 뜻과 이름을 물려받아 출범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청년유니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함께 마련한 행사였다. 이 날 행사를 주최한 단체가 한 군데 더 있었는데, 추모제와 그 이름을 공유하는 ‘다시는’이라는 단체의 정식명칭은 다음과 같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변변한 안전장치도 없는 시설에서 초저가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다가 사망한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 생산 라인에 투입되었다가 각종 질병을 얻어 건강을 잃거나 목숨을 잃었음에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해 수 년을 싸워야 했던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 감정노동의 최전선으로 떠밀려 계약 해지를 원하는 고객들을 설득하는 업무를 부여받고는 실적의 압박을 느끼다가 세상을 떠난 전화 상담원들… 그 수많은 산업재해 피해 사례 속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나아가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세상을 바꿔 ‘다시는’ 그런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출범한 단체가 바로 ‘다시는’이다. 다 함께 연두색 바람막이를 맞춰 입고 추모제를 찾아준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넨 이들은 행사 내내 울다가 웃었다. 한번으로도 너무 많을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이룰 만큼 많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고약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추모제 다음 날, 그러니까 이한빛 PD의 기일에는 또 다른 단체가 하나 더 출범했다. 올해 2월 9일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에서 근무하다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 씨의 이름을 딴 ‘김용균재단’이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아들의 삶을 대신 살아가기로 결심한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이사장이 된 김용균재단의 목표는 간결하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군다.” 다시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밟힐 필요도,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다짐을, 우리는 오래 기억하고 연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빛이 어둠을 이기고 사람이 차별을 이기는 길일 테니까.
첫 출근을 앞두고 양복을 갖춰 입어보던 故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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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