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청소년 소설을 쓴다는 건, 내 10대를 기억하는 일”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 2』 펴내
어릴 때 누가 저보고 평범하다고 하면 싫었거든요. 요즘 아이들도 그럴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잖아요. (2019. 10. 24)
『시간을 파는 상점』 출간 이후, 강연회에서 만난 독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시간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나요?”, “온조는 어떻게 되나요?”. 흘려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질문을 떠올리며 답을 찾고 있었다는 김선영 작가.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들이 뚜렷해질 무렵, 그는 시간을 파는 상점 속 아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시간을 파는 상점 2』 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김선영 작가의 응답이다.
주인공 온조가 홀로 운영했던 ‘시간을 파는 상점’은 『시간을 파는 상점 2』 에서 시간을 사고팔 수 있는 ‘시간 공유 플랫폼’으로 진화한다. 전편에서 양면성을 가진 시간의 개념을 이야기한 김선영 작가는 속편에서 시간을 파는 상점을 통해 학교 지킴이 아저씨의 복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나를 위한 시간은 곧 너를 위한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시간을 사고파는 범위가 넓어지는 거라고 보면 돼. 누구는 시간을 사기도 누구는 시간을 팔기도. 우린 그걸 조율해 주면 되는 거야. 시간 중개업자. 타임 브로커, 타임 세일러 등등 부르는 거야 뭐, 정하면 되는 거고. 일테면 그런 개념이라는 거지.” 온조는 소름이 돋았다. 어깨를 문지르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을 이었다. “시간 공유 제도 개념인 거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또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내놓는 거. 이렇게 되면 말 그대로 시간이 매개가 되어 사고파는 것이 되는 거잖아.” (55쪽)
흘려 듣지 않았나 봐요
8년 만에 나온 속편입니다. 처음에는 계획이 없으셨다고요.
강연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 『시간을 파는 상점 2』 를 쓸 생각이 없냐”라는 거였어요. 1편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가 많았죠. 그럴 때마다 2권을 생각하고 쓴 게 아니라고 답하면서 넘겼는데 허투루 들은 게 아니었나 봐요. 1권 이후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더라고요. 작년 즈음부터는 이 정도로 생각이 익었다면 아이들을 불러내서 다시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8년이 지났는데 아이들은 그대로”라는 리뷰를 보고 내가 1권 속에 오래 머물러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시간을 사고파는 플랫폼으로 운영 방식이 달라졌어요. 이유가 있나요?
“시간을 어떻게 팔아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거든요. 이것도 그냥 흘리지 않았나 봐요. ‘시간을 사고팔 수 있다는 걸 한 번 증명해봐?’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2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1권에서 시간의 개념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2권에서 또 그럴 수는 없잖아요. 식상하니까요. 다른 해석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1권에서 아이들이 시간의 개념을 공부했으니까 2권에서는 아이들이 시간을 사고파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쓰고 싶었어요. 어떤 형식으로 보여줘야 할지 많이 고민했죠.
해고된 지킴이 아저씨의 복직 시위를 한 고양국제고 학생들의 사례가 모티프가 됐어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1권을 쓰고 나서 “요즘 고등학생의 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온조나 이현 같은 시각을 가진 고등학생이 어디 있냐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요. 아이들을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신문에서 고양국제고 학생들의 기사를 보고 ‘그래 이거다’ 싶었어요. “봐라, 이렇게 훌륭한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죠. 어른들은 계속 차별을 양산하는데 아이들은 이의를 제기하잖아요. 훈민정음해례본 반환 서명운동을 벌인 고등학생들 이야기도 아시죠? 이런 훌륭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도 내가 할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시간을 파는 상점을 꾸리는 아이들이 이렇게 훌륭한 아이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동화 같은 느낌도 있어요.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못된 애들도 있죠. 그런데 인간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 어렵잖아요.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요. 대체로 작가들은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이나 인물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하기보다 저 사람에게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그게 작가적 호기심이고 상상력 아닐까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어떤 인물을 특별히 선하거나 악하게 그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게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싶고요.
평범함 속 비범함에 대해
1권에서 끝내 강토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잖아요. 일종의 장치였나요?
강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현대의 익명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신원을 밝히지 않아도 서로의 삶에 개입할 수 있어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투명한 사회이기도 하죠. SNS, 휴대폰, 카드 명세서만 보면 사생활을 다 알 수 있으니까요. 현대의 익명성이 가지는 이런 특징이 흥미로웠어요. 익명이라는 게 때로는 위험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설렘의 조건이 되잖아요.
2권에서 강토의 정체가 밝혀져서 후련했어요.
1권에서 나온 인물이 2권에도 나오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원래는 강토를 계속 익명의 존재로 설정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독자들에게 욕먹을 것 같더라고요. (웃음) ‘강토라는 인물이 실재하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죠.
강토와 함께 새로운 인물이 아주 흐릿하게 등장하면서 온조가 실망하잖아요. 저도 아쉽더라고요.
글쎄요. 과연 온조가 생각하는 게 맞을까요? (웃음) 온조의 오해일 수도 있죠. 알 수 없는 거예요.
온조의 모델이 따님이셨다고요.
딸이 고3이었을 때 1권을 썼어요. 쓰기 전에 딸한테 부모님은 이혼하고, 할머니랑 둘이 사는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생각 중이라고 했더니 “그런 이야기 좀 쓰지 말라”면서 “작가들은 왜 그렇게 쉬운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조금 특별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더니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이야기할 수는 없냐”고 하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잖아요. 저도 어릴 때 누가 저보고 평범하다고 하면 싫었는데 요즘 아이들도 그럴 것 같아요.
따님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으신 거네요.
아이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혜지도 아들 덕분에 생긴 인물이에요. 아들한테 “반에서 특별한 애 있어?”라고 물었더니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사교성도 없는 애가 있는데 메탈리카를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파는 상점에 친구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혜지의 이야기를 썼죠.
삶의 모든 순간이 과정이다
애착 가는 장면이 있나요?
이현이 숲속의 비단과 만나는 장면이요. 많은 분이 숲속의 비단을 통해 제가 안락사 문제를 이야기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그건 아니에요. 단지 ‘어느 순간 우리가 이렇게 멈춰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 내가 맞이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죠.
숲속의 비단이 꼽은 가장 빛나던 시절도 고등학교 때였어요.
친정어머니와의 일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친정어머니가 올 6월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대화하고 싶어서 질문을 자주 했거든요. “어디서 살 때 가장 행복했냐”고 물었더니 10대 때 살았던 공간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의외였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무수히 많은 공간을 거치잖아요. 그런데도 10대 때 살았던 공간을 떠올리시는 걸 보면서 ‘대체 인간에게 10대는 뭘까’하고 생각했죠.
정말 10대는 인간에게 뭘까요?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영향력이 너무 크잖아요.
사회적 잣대와 상관없이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때가 10대인 것 같아요. 스무 살부터는 사회적 잣대가 인생에 들어오잖아요. 그렇지만 10대는 내 존재가 벅차고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시기라 가정과 사회에서 역할을 많이 주지 않아요. 대신 온전히 자신으로 꽉 차는 시기죠. 그래서 인간에게 더 의미 있는 게 아닐까요? 숲속의 비단 아저씨도 10대인 이현을 보면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을 것 같아요.
작가님과 닮은 캐릭터를 꼽는다면요?
온조 엄마나 온조에 가까워요. 평범했거든요. 나서는 거 안 좋아하고 어디 가도 항상 구석에 앉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나서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나는 너와 같지 않아’ 또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아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용히 뭔가를 하는 아이였죠. ‘어른들은 왜 나를 존중해 주지 않지?’, ‘왜 쉽게 나를 판단하지?’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요. 큰 불만이었어요. 나한테는 당신 이상의 생각이 있고,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올 거라고 여겼죠. 요즘 아이들도 그럴 거예요.
그런 생각들이 청소년 소설 작가가 되게 한 걸까요?
그렇겠죠.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해요. “작가님은 청소년도 아니고, 이제 청소년을 키우는 엄마도 아닌데 어떻게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쓰냐”고요. “얘들아 나도 청소년이었어”, “나는 그때의 나를 잊지 않아”라고 답했더니 아이들이 손뼉을 치더라고요. 이런 말을 못 들어 본 거예요. 누구나 청소년이었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청소년 시절을 잊어버리거나 청소년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굴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하고 부딪히는 거죠.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만 청소년 시기를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 과정 아닌 시기가 있나요? 노인으로 사는 시간도 과정이에요. 완성도 미완성도 없죠. 10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이때의 시간을 함부로 쓰는 청소년들이 많거든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인데 그렇게 여기지 않죠. 이런 마음을 먹는 순간 함부로 대하게 되고요. 다른 인식이 필요해요.
소설, 세상을 더 사랑하게 하는 것
꾸준히 청소년들을 만나셨잖아요. 8년 전과 지금 다른 게 있을까요?
일단 언어가 달라요. 신조어가 출현하고 사라지는 속도가 정말 빠르고요. 현장에서 느끼는 선생님의 정서가 가장 다른데요. 많은 선생님이 ‘아이들이 무섭다’라고 하세요.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한 반에 학생이 67명이었거든요?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이 미미했죠. 요즘은 한 반에 20명 정도인데 선생님들은 200명 가르치는 것 같대요. 요즘 아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고 불공정한 일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하니까 67명 중 한 명이었던 선생님은 200명 가르치는 것처럼 힘든 거죠.
아이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건 좋은 현상 아닌가요?
좋은 일이죠. 그런데 선생님 입장에서는 어렵죠. 선생님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거든요. 실수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부딪히는 게 당연해요. 아이들은 변했는데 어른들은 여전히 “나 때는 말이야”로 대화를 시작하니까요. 아이와 부모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도 이런 태도 때문이고요. 아이들의 눈높이로 봐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새로운 세대가 출몰했으니 공부해야 해요. 아이들이 무얼 좋아하고 분노하는지 알아야죠.
청소년 시기에 읽은 인상적인 책이 있다면요?
일단 제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단행본이 많지 않았어요. 청소년 소설은 전무하다시피 했죠.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세계 문학을 많이 읽었고 『제인 에어』 를 특히 좋아했어요. 제 멘토였죠. 당차고 멋진 태도가 좋았거든요.
살아내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로 호기심을 말씀하셨어요. 호기심이 강한 편인가요?
굉장히 강해요. 지역, 공간, 사람, 자연에도 관심이 많고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고요. 가끔 ‘내가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세상을 이렇게 사랑했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보고 느끼는 게 모두 저의 자양분이 되어서 글을 쓰니까 더 관심이 커지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주제들을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요즘 화두는 뭔가요?
관계를 많이 생각해요.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은 관계, 제도로 이뤄진 관계는 어떻게 잘 만들어 가야 하나 하고요. 딸이 내년에 결혼하거든요. 새로운 친구를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어요. ‘사랑만이 남는다’라는 문장이 맴돌더라고요. 결국에는 사랑만 남겠다는 생각이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지만, 사랑은 가져갈 수 있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뻔한 얘기죠.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주제이기도 하고요.
시간을 파는 상점 2김선영 저 | 자음과모음
멤버들은 시간을 매개로 움직이며 협업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시간을 사고파는 것일까, 끝없이 질문하며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또 남은 시간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기꺼이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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