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신간] 『갈등 도시』 『바이러스』외
10월 3주 신간
시민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 『갈등 도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101가지 바이러스 『바이러스』, 진정한 꿈의 의미 『할아버지와 달』 등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2019. 10. 16)
근현대 서민 문화를 중심에 둔 답사기 두 번째 이야기.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까지 답사 범위를 넓혀 재개발이 예정된 불량 가옥과 성매매 집결지, 이름 없는 마을 비석과 어디에 놓여 있는지 찾기도 힘든 머릿돌을 찾아갔다. 빈민촌이 해체되면서 도시 곳곳에 빈민들이 숨어들고, 공장과 성매매 집결지와 한센인 정착촌은 고층 아파트 단지에 떠밀려 서울의 외곽으로 쫓겨난다. 저자의 눈에 비친 서울은 내부적으로도, 경계를 맞댄 주변 도시들과 그 도시들 간에도 갈등상태에 놓여 있다. 빈민과 한센인, 혐오 시설이 쫓겨난 자리에는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서민들의 문화와 역사 대신 조선 시대 왕과 사대부의 문화가 소환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기억의 전쟁이자 계급의 전쟁”이다.
『바이러스』
메릴린 루싱크 저/강영옥 역/최강석 감수 | 더숲
책의 서문에서 과학 칼럼니스트 칼 짐머(Carl Zimmer)는 “바이러스의 다양성을 배우는 목적은 그저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드시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지구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모든 바이러스가 숙주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몇몇 바이러스는 숙주는 물론 지구에 이로운 기능을 한다. ‘시네코코커스 파지 Syn5’라는 바이러스는 바닷속에서 매일 발생하는 세균의 20~50%를 죽이며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맞춘다. 바이러스로 세균성 질병을 치료하고, 유전자 복제는 물론 진화에 관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바이러스의 세계’라고 할 법한 지구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흥미로운 바이서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달』
스테파니 라푸앙트 글/로제 그림/양혜진 역 | 찰리북
평소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던 한 소녀는 달에 가는 우주인을 뽑는 대회에 응모한다. 아내와 사별한 후 깊은 슬픔에 빠진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다. 우주인으로 뽑힌 소녀는 마침내 달을 향해 가지만, 막상 달에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마음이 텅 빈 느낌이 든다. 저자는 캐나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뮤지션이자 연기자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연기에 재능을 보이고 열아홉 살의 나이에 캐나다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아카데미’에 출연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누가 누가 달에 가나’ 대회에서 뽑혀 우주로 나가는 소녀와 오디션에서 우승해 앨범을 내고 상을 받은 저자가 겹쳐 보인다. 이야기는 어느새 지금 자신이 꾸는 꿈은 무엇인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오블리비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저/신지영 역 | 알마
46세의 나이에 자택에서 목을 매어 삶을 끝낸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세 편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소설을 남겼다. 이 책은 작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소설집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미경적인 관찰과 묘사, 소설의 오랜 관습에서 벗어난 플롯과 형식, 결말에 이르러서도 기어코 해명되지 않는 진실 등이 가득하다. 소설을 다 읽을 즈음에 독자는 길을 잃게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할 뿐이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삶을 이어가야 하는가. 한계가 명확한 질문에 죽기 직전까지 집착하기 또는 죽음과 함께 집착하기.”(정지돈 추천평 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저 | 난다
허수경 시인 유고집. 1부는 시인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글들’이라는 폴더 안에 써내려간 시작 메모를 시기별로 담아냈다. 2부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출간한 이후 타계하기 전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시를 보았고, 3부는 시인 스스로 시에 부친 작품론과 시론으로 채웠다. “간절한 한 사람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 그 시간을 공감하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곤 한다. 사람의 시간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린 수국 한 그루를 마당에 심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기 새들이 종일 지저귀던, 늙은 전나무에 있는 새집을 바라보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절한 어느 순간이 가지는 사랑을 향한 강렬한 힘. 그것이 시를 쓰는 시간일 것이다. 시를 쓰는 순간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시인을 시인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2017년 11월 12일」중에서)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수전 올리언 저/박우정 역 | 글항아리
1986년 4월 29일 아침,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서 화재경보가 울렸다. 당시 안에 있던 400여 명의 사서와 이용객들은 ‘또 시끄럽게 울리네’라며 귀찮아하는 기색으로 밖을 나섰다. 어차피 다시 들어올 거니 소지품도 그대로 둔 채 도서관은 8분 만에 비워졌다. 다들 밖에서 다시 들어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냥 하나에서 시작됐을지 모르는 화재는 소방관들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틈을 타 전력질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40만 권의 책을 한 줌의 재로 남겼으며, 70만 권의 책을 훼손시켰다. 역대 최대 공공도서관 화재 사건인 이 일은 신문과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았고, 책 애호가들조차 이런 일을 모른 채 지나갔다. 책 애호인 저자는 사건 발생으로부터 30년 뒤 이 일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도서관의 연대기와 화재, 그 여파가 기록되는 가운데 독자들은 진화하는 유기체로서의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서들과 현재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사서들, 수많은 이용객이 우리에게 책과 도서관에 얽힌 삶을 들려준다.
『유년의 섬』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저/손화수 역 | 한길사
1권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다루고, 2~3권에서는 자신의 연애와 결혼, 육아의 고충 같은 어른의 세계에 주목했다면 4권째에서는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감성을 담아낸다. 세상의 불가해함을 인식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에 의문을 품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머러스한 이야기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한 문체로 소설과 작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존재로 느껴진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지독하게 낱낱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너무 일상적이라서 피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전 세계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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